여기서 힌트 하나. 재벌가의 딸이다. 정답은 CJ그룹의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미디어 및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과 오리온그룹의 이화경 엔터테인먼트부문 총괄 사장이다. 지난 연말 <헤럴드경제>가 선정한 2006년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이미경 부회장이 선정됐다. 2005년 1위였던 이화경 사장은 2위로 밀렸다. 말 그대로 ‘여인천하’인 셈. 이미경과 이화경, 언뜻 자매처럼 보이는 이름에 나이도 비슷한 두 사람이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다 보니 이 둘의 이야기는 늘 재계의 화제가 된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씨의 맏딸이다. 1958년 부친이 유학 중일 때 미국에서 태어났다. 이 부회장은 경기여고를 거쳐 1981년 서울대 가정교육학과를 졸업했고 86년 미국으로 유학,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지역학 석사를 받았고 90년엔 중국 상하이 푸단대에서 역사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995년. 제일제당 멀티미디어 사업부 이사 직함으로 스필버그 등이 설립한 ‘드림웍스’와 제일제당의 합작을 성공시키면서부터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할리우드 키드’라고 소개하면서 미국 유학 시절 받은 설움에 “한국은 가난한 나라라는 인식을 뒤집고 싶었다”며 콘텐츠 사업에 뛰어든 사연을 설명했다.
1998년 국내 최초로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를 도입하고 영화에 투자하는 등 CJ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의욕을 보였던 부회장은 예상을 깨고 99년부터 해외파견 상무 직함을 유지한 채 미국 LA에 머무르며 잠시 숨고르기를 했다. 그러다 2005년 말 부회장으로 화려하게 컴백, CJ의 엔터테인먼트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1956년생으로 이미경 부회장보다 두 살이 많은 이화경 사장은 서울외국인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동양제과에 평사원으로 입사하며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이 사장은 조사부장 식품관리본부장을 거쳐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까지 차근차근 밟아 2000년에야 사장에 올랐고 2001년 8월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이 분리되면서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담당 사장으로 남편 담철곤 회장과 역할을 분담했다.
이 사장은 팀장 회의까지 직접 챙기면서 오리온의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키워내 시장을 선점한 CJ의 이화경 부회장과 본격적인 경쟁구도를 만들었다. 특히 영화판의 대결은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지난 2005년부터 이미경 부회장의 CJ엔터와 이화경 사장의 미디어플렉스(쇼박스)의 경쟁은 불꽃이 튀었다. 특히 올 초에는 양사가 서로 지난해 성적이 1등이라고 주장하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먼저 CJ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집계한 통합전산망 관객 수에 근거해 지난해 총 48편을 배급, 전국 3350만여 명의 관객을 유치해 3198만여 명의 쇼박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다음날 쇼박스는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쇼박스는 “우리가 관객 수, 수익률, 편당 관객 수 등 3개 부문에서 2005년에 이어 모두 1위에 올랐다”며 자체 집계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영진위 자료가 전국 스크린 중 91%가 등록된 전산망에 의존해 불완전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영진위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CJ엔터는 18.5편을 배급해 서울지역에서 19.0%(356만여 명)의 관객 점유율을 기록, 1위를 달리고 있다. 총 12편을 제작·배급한 쇼박스는 12.9%(241만여 명)로 3위였다.
연일 경쟁적으로 확장 중인 스크린 수도 관심의 대상이다. 현재 스크린 수는 이 부회장의 CGV가 전국 47개 영화관에 378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반면 이 사장의 메가박스가 19개 영화관에 155개 스크린을 보유, 이 부회장 쪽이 더블스코어로 앞선다.
두 사람은 케이블채널에서도 CJ미디어와 온미디어로 경쟁하고 있다. 시청률에 있어서 그동안의 강자는 OCN 등을 보유한 이 사장의 온미디어였다. 하지만 지난 3월 처음으로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시청률조사에서 tvN 등 CJ미디어의 주요 8개 채널 시청점유율은 18.7%로 18.1%의 온미디어 8개 채널을 누르는 등 상승세를 탔다.
지난해 경영실적은 CJ엔터테인먼트가 매출액 1184억 원에 26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반면 미디어플렉스는 매출액은 885억 원으로 CJ에 뒤졌지만 38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전반적으로 외연은 이 부회장이, 내실은 이 사장이 챙긴 셈이다.
이 부회장과 이 사장은 모두 창업주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여성상 경영 부문 수상 후 인터뷰에서 “(이병철 창업주의) 맏손녀라서 할아버지와 비교적 많은 시간을 가졌다”면서 “CJ의 경영철학인 ‘사업보국 인재양성 합리추구’는 바로 할아버지의 경영철학”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도 최근 들어 부친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에 대한 얘기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는 저에게 늘 특별한 존재였다”면서 “지금도 사업상 난관에 부딪칠 때면 아버지로부터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다.
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두 거물은 올 여름에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른다.
지금까지 양사의 실적을 보면 배급편수 등과 해외 유명영화제 수상 경력에선 CJ가, 대박 흥행에선 쇼박스가 앞서는 편이었다. CJ가 일년 내내 ‘중박’ 정도의 흥행으로 스코어를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쇼박스는 해마다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동막골>, <괴물> 등으로 한방에 전세를 역전시키는 기싸움을 벌여왔다. 쇼박스의 대박흥행작은 대부분 CJ가 거절한 프로젝트라는 점이 관전 포인트. 올해 여름 전쟁에서 양사가 미는 카드는 CJ의 <화려한 휴가>, 쇼박스의 <디-워>. 물론 <디-워>는 CJ가 제작사의 배급과 투자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 두 여걸의 성적표가 어떨지 관심을 모은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