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면수 국과수 유전자분석센터장은 화성연쇄살인사건도 지금의 기술이라면 단서를 찾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언론을 통해 강력 범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너무 많이 나가서 범죄가 점점 잔혹해지는 것 같다.”
한면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유전자분석센터장(53)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센터장은 한국에 DNA 유전자 분석을 처음 도입한 주인공이다.
1985년 국과수에 들어온 그가 처음 맡은 업무는 혈액형만을 판단해 범인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네이처(Nature)>에서 1984년 영국 레스터대학의 알렉 제프리 교수에 의해 최초 개발된 DNA 감식법을 접하게 됐고, 1986년 DNA 감식법을 도입하자는 보고서를 국과수에 제출했다. 이후 치안본부에서 국과수로 DNA 감식법을 개발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고 한 센터장은 보고서를 가장 먼저 낸 공로를 인정받아 유전자분석팀의 책임자로 임명돼 유전자분석센터를 20년 동안 이끌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DNA 유전자 분석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한 센터장은 “사람의 세포가 있는 건 모두 가능하다”고 밝혔다. 범죄현장에 침 속 구강상피세포나 비듬, 피부각질 등이 1ng(나노그램·1g의 10억분의 1)만 있어도 범인의 유전자 정보를 밝혀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한 센터장은 사건 현장에서 그 정도의 미세한 양의 DNA 정보를 찾아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성폭행 사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이 혈흔이나 정액”이라며 “그런데 유전자 감식 방법이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자세히 알려지다 보니 범인들이 성폭력을 하면서 정액을 남기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에서는 유전자분석팀이 국과수를 비롯해, 대검찰청과 경찰청에서도 운용되고 있다. 이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 센터장은 “대검찰청의 유전자분석팀은 교도소 수용자에 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관리하고, 검찰의 인지수사 사건을 주로 다룬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초동수사를 진행하고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를 국과수에 의뢰한다. 그럼 이러한 증거물을 국과수의 유전자분석팀이 정밀 분석한다. 또한 국과수는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에 따라 주요 강력범죄 등 11개 범죄에 대한 구속 피의자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검찰청과 국과수의 유전자 데이터 이원화 관리가 제대로 연동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 2009년 1월 군포연쇄살인사건 현장에서 국과수 요원들이 피살자의 유골과 사건 단서를 수집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ee@ilyo.co.kr |
지난 8월 서울 중곡동에서 발생한 30대 주부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 센터장은 “그 사건을 겪으면서 ‘범인은 언제라도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범인을 빨리 잡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반성을 했다”며 “현재는 국과수와 대검찰청의 유전자 데이터 공조 관리가 많이 개선됐다”고 전했다.
또한 국과수는 지난 10월 늘어나는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 결과를 통상 15일에서 5일로 단축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유전자 분석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수사 비용과 인력을 절감할 수 있고 범인도 빨리 추적할 수 있어 효율적이긴 하지만 절차를 갖춰 현장 감식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기한 단축은 능사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유전자분석팀을 20년 넘게 이끌어오면서 한 센터장은 어떤 사건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는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해 사건과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이라고 밝혔다. “2007년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에 안양에서 초등학생 2명이 집 앞에서 실종됐다 석 달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피해자 학생들의 집 근처에 혼자 살고 있는 정성현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는 두 학생이 실종된 당일에 렌터카를 빌렸었는데 그 차량을 조사한 결과 머리카락과 혈흔이 나왔다. 국과수 유전자분석팀에서 분석해보니 살해된 피해자 학생의 DNA와 일치했다. 이 증거를 통해 정성현의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어 한 센터장은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 역시 강호순이 몰고 다니던 차에서 옷이 나왔는데, 그 옷소매에 강호순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혈흔이 묻어있었다. 실종된 중국인 여성의 혈흔이었다. 혈흔 증거를 시작으로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고 기억했다.
이렇게 크고 작은 많은 강력 범죄 사건을 해결한 한 센터장이지만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아쉬운 사건이 하나 있다고 했다. 바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 1980년대 말은 DNA 분석법이 이제 막 개발되고 있던 시기였고 국과수에서도 유전자분석팀을 만들려고 준비하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의 유전자 분석 기술은 많이 떨어져 있어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모든 증거물을 보내 의뢰를 맡겨야 했다. 하지만 결국 일본의 유전자분석으로도 사건 해결을 위한 DNA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 그 당시 증거물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오늘날의 기술로 다시 수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1990년 5명으로 시작한 국과수 유전자분석팀은 2012년 현재 70명으로 늘어났다. 20년여 만에 14배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 최근 국회 행안위 발표를 보면 인구 대비로 유전자분석 인력은 영국이 10만 명 중 1명, 미국이 20만 명 중 1명, 일본이 50만 명 중 1명인데 비해 한국은 160만 명 중 1명으로 영국과 비교하면 16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한 센터장은 “나라마다 유전자분석 시스템이 다르니까 그런 수치는 비교할 사항이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유전자분석팀은 우리의 현실에 맞게 운용되고 있어 인력이나 장비에 대해선 문제가 없다. 오히려 빠르게 발전해 나가는 DNA 기술을 어떻게 제도권 법률 안에 수용할 것인가를 더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유전자 분석 기술이 개발됐어도 법으로 정해지지 않으면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과학자와 법률가들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