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 회장 | ||
그런데 최근 삼성카드 상장 파급효과에 따른 삼성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이 증권가에서 제기돼 관심을 끈다. 삼성카드 상장을 통해 삼성그룹이 지주회사제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삼성의 반응이 그다지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과연 삼성과 이 회장이 흉중에 품고 있는 최상의 지배구조는 어떤 것일까.
증권가에서 제기된 삼성그룹 지주회사제 전환 가능성은 삼성카드 상장특수와 삼성전자 주가 부진을 감안한 지분 변동 시나리오로 볼 수 있다. 일반 공모가 주당 4만 8000원이었던 삼성카드 주가는 상장 첫날인 6월 27일 공모가보다 30%가량 높은 6만 2200원까지 올랐다가 7월 5일 현재 5만 8800원에 이르고 있다.
증권가에선 삼성카드 상장으로 최대주주인 삼성전자가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 바 있다. 7월 4일 공시기준으로 삼성카드 지분 38.29%(4300만 주)를 보유한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을 전량 처분할 경우 2조 5000억 원 정도의 현금을 회수할 수 있다. 7월 5일 삼성전자 주가 59만 100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삼성전자 지분 1%(147만 주)를 사들이는 데 8700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 전량을 매각하면 자사주 2.87% 정도를 추가 매집할 수 있는 셈이다.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 지분 5%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산법 개정안이 예정대로 시행된다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6% 중 2.26%는 처분이 불가피하다. 삼성 측 우호지분율이 2.26% 감소하는 셈. 그러나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 매각 대금으로 자사주 2.87%를 취득한다면 지배력을 종전처럼 유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삼성카드 지분 매각으로 인한 삼성카드 지배력 상실은 우려할 필요가 없다. 삼성전자 외에도 이미 삼성생명이 삼성카드 지분 28.65%를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지분을 빼더라도 다른 계열사들 지분을 모두 합하면 우호지분이 35.62%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삼성카드 지분 매각을 전제로 그룹 내 금융지주사 설립을 가정해볼 수도 있다. 삼성생명이 아예 삼성전자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그 차익으로 삼성카드나 삼성증권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 지분들을 대거 매입해 금융지주회사로 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업과 제조업의 분리(금산 분리)도 자연스레 이뤄진다.
삼성생명 역시 생보사 상장안 확정에 따라 조만간 상장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이 상장돼 지분 가치가 오르게 되면 삼성생명을 지배해온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사로 지정될 수도 있다.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의 가치가 에버랜드 자산의 절반이 넘으면 금융지주사 선정을 피할 수 없으며 이렇게 되면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가질 수 없게 된다. 현재 삼성에버랜드가 여러 삼성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지주사 지정으로 인한 이건희 회장 부자의 그룹 지배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을 모두 처분한 뒤 발생하는 차익으로 나머지 계열사들의 지분을 추가 매집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위의 가정처럼 지분 거래가 이뤄진다면 삼성그룹은 ‘삼성전자그룹, 삼성생명그룹, 삼성에버랜드그룹’으로 나누어 3대 지주회사제로 운영될 수 있다. 이는 금산법 개정안, 금융지주사법 등에 저촉되지 않는 동시에 그동안 정부와 금융당국이 삼성에 줄기차게 요구해온 지주회사제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안에 부합한다. 삼성 입장에선 편법증여 논란으로 촉발된 삼성에버랜드 사건 대법원 재판과 관련해 우호적 여론 형성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삼성전자 주가 하락, 삼성카드 상장 특수’라는 현재 주가 상황에 기인한 가정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67만 원대를 오르내리던 삼성전자 주가는 올 들어 하락세를 타기 시작해 지난 5월 말엔 52만 원대까지 추락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주가는 최근 들어 회복기미를 보이기 시작해 다시금 60만 원대 안착을 넘보고 있으며 삼성 고위 관계자들도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삼성전자 주가가 3분기 전후로 재도약할 것’이란 전망을 밝혀왔다. 삼성카드 주가 상황 역시 장담할 수만은 없다. 삼성카드 상장 이후 주가는 공모가 4만 8000원을 상회하고 있지만 일부 주주들의 차익 실현 이후 주가가 낮아지면서 거품 논란 속에 향후 상승세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상장 특수를 통해 자사주를 많이 사들이려 해도 주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삼성그룹이 과연 삼성전자 주가의 정체를 전제로 한 지주회사제 개편안에 매력을 느끼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최근 증권업계에서 삼성카드 상장효과를 배경으로 한 삼성 지주회사제 전환 가능성을 제기한 것에 대해 삼성 측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삼성에버랜드를 제외한 다른 축, 삼성전자그룹과 삼성생명그룹의 최대주주로 누구를 세우고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86%이고 삼성생명 지분율은 4.54%에 불과하다. 삼성생명의 경우 이 회장 지분은 범 삼성가인 신세계(13.57%)와 CJ(7.99%)가 지닌 지분에도 못 미친다.
재벌들이 지주회사제로 전환하는 배경엔 총수→지주회사→나머지 계열사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용이함이 깔려있다. 지주회사가 계열사들을 지배해도 총수의 지주회사 장악력이 떨어진다면 총수 입장에선 굳이 무리해서 지주회사제로의 전환을 도모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재계 인사들은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그룹이 현재의 순환출자구조 유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가 정체를 담보로 지주회사 전환을 강행하더라도 여기서 발생하는 막대한 양도세를 감안행 한다. 만약 삼성이 기존 지배구조, 즉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삼성에버랜드만 지배하면 그룹 장악이 가능한 현 구도를 유지하려면 금산법 개정안 시행을 피해야 한다.
이를 정치일정과 결부시켜 해석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해온 현 정부세력의 재집권 대신 금산 분리 완화를 주장해온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삼성의 현 지배구조 수성이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삼성그룹 입장에선 올 12월 대선보다 내년 4월 총선에 더 큰 기대를 걸 수도 있다. 금산법 개정안과 삼성 지배구조 개편 여론을 주도해온 범여권과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비례대표라서 내년 4월 지역구 진출을 전제로 한 국회 재입성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 시행을 앞두고 있는 금산법 개정안에 대해 물갈이 된 새 국회가 전면 개정을 검토할 경우를 상정할 수도 있는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