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란 금융과 기술 합성어로 송금, 결제, 자산관리, 대출 등 금융 서비스를 수행하는 데 있어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네이버페이와 토스뱅크, 삼성페이 등이 그 예다.
#불법 도박 세력, 가상계좌 막히자 핀테크 업체 공략
당초 온라인 도박 시장의 자금 유통 창구는 은행이 발급하는 가상계좌였다. 거래량이 많은 인터넷 상점의 경우 계좌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주문 고객에게 각각 다른 가상계좌를 부여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통상 은행이 한 PG사(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가 만든 모계좌 1개를 통해 발급하는 가상계좌 개수는 약 1만 개다.
도박 조직은 이 구조를 악용했다. 실체가 불분명한 PG사와 결탁해 대량의 가상계좌를 발급받고 이를 악용해 불법 도박 자금을 융통해 온 것이다. 그러나 지난 4월, 원주와 대구 등 일부 지방 신협 단위조합에서 약 1년간 총 15조 원 규모의 불법 자금이 가상계좌를 통해 유통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사태가 불거지자 신협 측은 문제의 가맹점 40곳에 대해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어 금융감독원도 농협·신협·수협 등 상호금융권에 가상계좌 발급에 대한 내부통제를 대폭 강화하라고 지시하면서 은행이 발급하는 가상계좌를 이용한 도박 자금 세탁은 사실상 차단된 상태다.
문제는 기존 가상계좌가 막히자 핀테크를 표방한 변종 환전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핀테크 기업의 경우 실명 확인이나 거래 검증이 느슨한 데다 금융권보다 내부통제 시스템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앞서 신협을 도박방조죄로 고발한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는 5월 8일 핀테크 기업 A 사를 도박방조죄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경기남부경찰청에 고발했다. 해당 기업에서 발행하는 선불카드와 상품권이 불법 온라인 도박의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고발장에 따르면, 불법 도박 사이트 이용자들은 A 사가 만든 결제수단인 A 페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A 페이를 통해 선불 상품권을 구매하고, 이 상품권으로 불법 도박을 한 뒤 수익을 다시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도박 자금을 유통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불법 도박 사이트 10여 군데를 확인한 결과, 대부분의 사이트에서 도박 자금 충전 수단으로 신협 가상계좌 대신 A 페이의 선불 상품권을 안내하고 있었다. 사이트 이용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 운영자들이 모인 텔레그램 방에서도 선불 상품권에 대한 문의와 사용법이 공유되고 있었다. 일부 업자들은 선불 상품권 발급을 위한 법인 명의 임대까지 알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박없는학교에 따르면 선불 상품권을 이용해 유통되는 도박 자금 규모는 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과거 대포통장을 유통하던 조직들이 현재는 핀테크 업체의 총판(홍보책) 역할을 수행하며 불법 도박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로 인한 피해 규모도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 사의 경우 가맹점 상당수가 불법 도박 사이트라는 것이 도박없는학교 측의 주장이다.
그는 “A 사의 주된 수익원 역시 불법 도박 사이트 이용자들이 수익으로 얻은 금액을 환불해주는 과정에서 얻는 수수료로 파악된다”며 “이는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발생한 불법 자금을 합법적인 돈으로 가장하여 자금을 이동시키는 행위에 해당한다. 핀테크 기업이 불법 도박 조직의 자금 세탁과 운영을 조력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장은 “불법 도박의 핵심은 ‘충전’과 ‘환전’이다. 자금의 유입과 회수가 불가능하면 도박판은 굴러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부분은 불법적인 영역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합법을 가장한 업체들이 자금 통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라며 “금융당국의 더 엄격하고 실효성 있는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A 사 “불법 거래 인지 후 서비스 축소”
한편 A 사는 자사가 발행한 선불 상품권 일부가 불법 거래에 사용됐음을 인지하고 즉각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A 사 측 관계자는 5월 29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신협 사태 이후, 내부 모니터링과 외부 제보를 통해 일부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당사 플랫폼이 악용된 사례를 확인했다. 일부 상품권이 당초 의도와 다르게 사용되고 있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일부 PG사와 은행간 거래가 종료되면서 이와 유사한 구조의 당사 플랫폼을 대체 수단처럼 활용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전자금융거래 이용약관에 위반되는 이용자에 대해 즉시 이용정지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A 페이는 지난 4월부터 선물형 충전권 판매를 중단하고 관련 서비스를 축소한 상태다.
그럼에도 의문점은 남는다. 구글 등 포털 사이트에 A 사를 검색하면 ‘A 사 토토’와 ‘A 사 도박’ 등의 관련 검색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A 사 측 관계자는 “환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검색을 한 것 같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른바 ‘환불원정대’라 불리는 조직이 A 사와 금융기관 등을 대상으로 고의적인 허위 신고를 통해 자금을 환급 받으려고 하는데 이 같은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상당히 많은 도박 사이트에서 자사 상품을 도박 자금 충전에 쓰고 있는 사실을 몰랐느냐’는 질문엔 “당사는 가맹점과 정산 거래를 하지 않고 고객과 일대일 거래를 하기 때문에 사전에 불법 거래 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A 사는 이 문제가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카카오페이와 당근페이 등 타 선불형 플랫폼에서도 유사하게 발생하는 업계 공통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A 사의 해명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와 관련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카카오페이는 금융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전자화폐발행관리업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따라서 A 사와 같이 금융위원회에 ‘등록’하는 선불전자지급수단발행관리업과는 안전성 면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A 사 측은 “불법 사용자에 대해서는 실시간으로 계정 차단 및 이용정지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자체 조사 결과 약 1만 건 중 5건 미만의 이상 거래만이 탐지되고 있다”면서도 “본인확인 절차와 AML(자금세탁방지) 정책 등을 전면 재정비하고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