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현재 중국에 진출해 있는 조선업체는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STX조선 등이다. 삼성중공업은 1995년에 설립된 저장성 닝보에 블록공장을 가동 중이며 12만 톤에서 20만 톤 규모로 증설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3월부터는 산둥성 롱청에 연산 50만 톤 규모의 블록공장을 건설 중(내년 말 완공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도 2005년 9월부터 산둥성 옌타이에 연산 30만 톤 규모의 블록공장을 건설 중인데 올 연말 완공 예정이다.
STX는 지난 3월부터 랴오닝성 다롄에 조선해양 생산기지를 짓기 시작했다. 100만 평 규모로 10억 달러를 투자해 내년 하반기 생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기술유출 논란에 불을 당긴 것은 STX의 조선소 건설이었다. 그동안 진출한 삼성과 대우는 블록 생산기지로 논란이 일었지만 파장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 전 과정이 이뤄지는 ‘신조(新造)’ 조선소는 얘기가 달랐다. STX 측도 여론의 역풍을 가장 걱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려의 목소리는 곧바로 터져 나왔다. 지난 4월 조선 경쟁력 강화를 위해 김영주 산자부 장관과 조선업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신경전이 벌어진 것. 당시 최길선 현대중공업 사장은 “우리 조선업체가 중국에 진출하면 우리 기술이 알게 모르게 유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강덕수 STX조선 회장은 발끈했다. 강 회장은 “조선공업만 해외로 나간다고 기술이 유출되지 않는다. 더구나 기술을 유출하려는 기업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고 맞받아쳤다.
이후 지난달 “옥포조선소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중국에서 선박을 생산할 것”이라는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발언, 이달 초 발표된 산은경제연구소의 ‘국내 조선업계의 해외진출현황 및 대응과제’에서 기술유출 위험성 지적, 현대삼호조선 부사장 출신 인사의 중국 합작사행 등 잇따른 언론 보도가 맞물리며 기술유출 논란은 증폭됐다.
게다가 중국의 조선업은 지난해는 수주량에서, 올 3월엔 수주잔량에서 일본을 추월했고 10위권 내에 두 업체가 진입하는 등 조선 강대국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기술유출을 우려해 중국조선업계의 견학요청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히며 중국 진출 업체를 자극했다.
이에 대해 중국 진출 업체들은 먼저 중국 진출의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우선 국내에 생산기지를 증설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땅 매입에 엄청난 자금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이조차도 주변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록 생산 업체들도 조선업 호황을 타고 속속 신조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물류비용과 기후조건(조선사업은 비가 많이 오거나 더운 기후에는 작업이 어렵다), 노동력의 질 등을 따져보면 답은 중국밖에 없다는 얘기다.
▲ 정몽준 의원 | ||
중국 진출 업체 측은 오히려 “중국 투자보다는 현대중공업 등 대형 업체 출신의 인력 유출이 더 타격이 크다”고 역공한다. 업계에서는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 갈 수 없는 현대중공업이 딴죽을 거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현대중공업 오너인 정몽준 의원을 겨냥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울산은 5선 의원인 정몽준 회장의 절대적인 정치적 기반이다. 만약 현대중공업이 일부라도 생산라인을 옮긴다면 울산 지역의 여론이 불리해질 것은 뻔한 일. 생산라인 이전은 지난 2002년 대권에 도전했었고 늘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꼽히는 정 의원의 정치 생명엔 치명적일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대형조선소를 지을 경우 ‘합작사 경영권(지분 51%)’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같은 대형 조선업체가 진출할 수 없는 상황. 대우조선해양 측도 “남 사장의 중국 선박 생산 가능성 발언은 중국의 끊임없는 요청에 대해 제도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외교적 수사”라고 밝힐 정도다.
이런 지적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정치적인 이유 같은 건 없다. 못 가는 게 아니라 갈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안 가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조선업만큼은 국가경제를 위해서라도 국내에서만 하겠다는 게 현대중공업의 방침이라는 것. 현대중공업은 “기술유출 우려는 기우”라는 중국 진출 업체들의 반론에 대해서 “그렇게 되면 더 바랄 게 없다”면서도 “기술유출 문제를 먼저 지적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언론이다. 외부의 경고음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진출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 기술진이 중국 안으로 들어가는 건 큰 문제”라고 밝혔다.
양측의 논쟁은 팽팽하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의 견해는 어떨까. 산업연구원의 홍성인 박사는 “양쪽 말이 다 맞다”고 운을 뗐다. 홍 박사는 “벌크선의 경우 보편화된 기술로 유출 문제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중국이 떨어지는 물류 등 시스템 기술(관리기술) 유출 우려는 있다. 블록생산도 작은 단위라면 쇳덩이에 불과하지만 최근 메가블록 등 블록이 커지면서 선체구성 노하우가 함축돼 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핵심기술은 아니지만 조심은 해야 한다는 견해다.
김영훈 목포대 교수(선박해양학부)는 인력을 통한 기술유출을 걱정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설계도면 등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이 더 중요하다. 기술 인력이 국내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경우 타격이 크다. 또 중국 생산기지에서도 양국 기술자가 함께 일을 하다보면 그들이 배워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싼 임금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판명됐다. 지난 10년 간 언론에서 보도해온 ‘중국의 싼 임금’에 혹해 중국으로 간 기업 중 상당수가 제 3세계로 이전하는 게 이를 보여준다. 현대중공업의 선택이 옳았는지 후발 주자들의 선택이 옳았는지 5년 뒤면 판가름날 것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