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 감독은 2022년 10월 당시 초대 감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총 18억 원에 두산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 이후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2024년 4위로 시즌을 마친 후 5위 KT한테 2연패로 탈락했을 때는 일부 팬들 사이에서 경질 여론이 일기도 했다. 4위 팀이 5위 팀에 덜미를 잡힌 게 KBO리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승엽 감독의 3년 계약의 마지막 해인 올 시즌에도 두산은 하위권에서 좀처럼 반등하지 못했다. 에이스 곽빈, 필승조 홍건희 등이 시즌 시작부터 부상으로 이탈했고, 김재환, 양석환 등 베테랑 타자들의 부진이 길어졌다. 아마 이승엽 감독으로선 팀 성적 부진과 일부 팬들의 사퇴 압박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2일 두산 구단 관계자는 이승엽 감독이 2일 오후 4시에 잠실야구장 구단 사무실을 찾았고, 이후 사장, 단장과 미팅 후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한다.
두산 구단은 이 감독의 중도 사퇴에 대해 아쉬움이 크다는 입장이다. 올 시즌 공격력에 어려움을 느껴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도록 디테일한 전력 분석 등을 지원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게 이 감독에게 부담을 안겨줬다고 봤다.
“무엇보다 주말 키움전 2경기에서 무기력하게 패한 점도 어려움을 느끼게 했다. 감독님을 비롯해 선수들이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3일 오전 조성환 감독대행과 전화 연결이 이뤄졌다. 이날 오후 5시 잠실 KIA전이 열리는데 조 감독대행은 이른 시간 잠실야구장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서 일찍 집을 나섰다. 어제 이승엽 감독님과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어제 야구장에 감독님이 계신 줄 알았지만 차마 찾아뵙지를 못하겠더라. 저녁에도 몇 차례 전화기를 들었다 내려놨다 하다가 결국 전화를 못 했고, 오늘은 전화로 인사드리려고 한다.”
조 감독대행은 2일 월요일 휴식일을 맞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구단으로부터 사무실로 나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사무실 도착 후 처음으로 이승엽 감독의 사퇴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것.
“전혀 예상 못했다. 키움전 패배로 많이 힘들어 하셨지만 이렇게 그만두실 줄은 진짜 몰랐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그만두셨으니 나도, 또 고토 코치님도 같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책임에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구단과 대화 끝에 감독님과 동반 퇴장하는 것만이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팀을 잘 만들어 놓는 것도 책임의 또 다른 의미라고 생각해 감독대행을 맡기로 결정했다.”
조 감독대행은 이승엽 감독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감독님이 정말 많이 힘들어하셨다. 그럼에도 절대 선수들에게 내색하지 않으셨고, 혼자 인내하고 버티셨다.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고, 타선이 조금 더 살아난다면 우리한테도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면서 기다렸다.”
조 감독대행과 이승엽 감독은 1976년생으로 나이가 같다. 서로 같은 팀에서 야구한 적은 없지만 조 감독대행은 두산에서 감독과 코치로 만나 이 감독에 대해 새로운 걸 많이 느꼈다고 설명한다.
“선수 때는 정말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로만 알았는데 같이 지내면서 감독님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코치들이나 선수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미디어를 상대할 때나 구단에도 선수나 코치를 탓하지 않았다. 정말 남 탓 안 하고 혼자 감내했다. 가끔은 코치들 사이에서도 시원하게 욕 먹을 각오하고 감독님을 찾아갔는데 그때도 싫은 소리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랑 고토 코치님이 선수들에게 악역을 자처했는데 감독님이 나가시니까 우리가 제 역할을 못 했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크게 남더라.”
조 감독대행은 3일 KIA전부터 선수단을 이끈다. 그는 라인업 변화를 설명했다.
“양석환 강승호 조수행을 2군으로 내릴 예정이다. 이런 결정을 누구라도 해야 했는데 처음부터 단호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이승엽 감독님은 세 선수들에 대한 기대가 컸고, 기회를 주면서 기다렸던 터라 이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해 도루 1위였던 조수행은 올시즌 부진을 거듭했고, 3루수와 2루수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 강승호도 최악의 시즌을 보내는 중이었다. 양석환도 최근 10경기에서 타율 0.167로 바닥을 치고 있는데 조성환 감독대행은 이들이 2군에서 타격감을 되찾은 후 다시 1군으로 올라오길 바랐다.
조 감독대행은 자신이 시즌을 끝까지 이끌지, 아니면 중간에 신임 감독이 선임될지를 신경 쓰기보단 “매일 그날 하루 경기만 보고 가겠다”라고 답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