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대기업들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던 제2기 로또사업자로 유진그룹이 주축인 ‘나눔로또’가 선정됐다. 나눔로또는 13일 발표된 2기 로또 수탁사업자 선정 입찰에서 CJ와 코오롱을 제치고 우선 협상자로 지정됐다. 서울증권과 로젠택배 인수 등으로 활발한 인수합병을 펼쳐온 유진그룹은 이번 로또사업 진출로 재계 내에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진그룹은 사업자 선정 입찰에 유진기업, LG CNS, 농협, 그리스의 복권솔루션 전문업체인 인트라롯 등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복권업무의 핵심 역량인 시스템, 은행, 복권업무 분야 전문회사가 각각 10% 이상 지분을 보유해 책임 경영을 가능케 한 것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 것 같다고 유진 측은 설명했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풍부한 자금력을 가진 유진기업과 IT기술력을 갖춘 LG CNS, 국내 최대 점포망을 구축한 농협이 60% 이상의 지분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로또는 매주 400억 원 이상 팔리고 있다. 연간으로는 1조 5000억 원이 넘는다. 관련 매출을 모두 더하면 총 연매출은 2조 5000억 원에 이른다. 로또사업자들이 당첨자보다도 훨씬 큰 대박을 터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1기 로또사업자로 참여한 국민은행과 SK, KT, 삼성SDS 등 대기업들은 로또 광풍이 몰아친 2003년 한 해에만 수수료로 4200억 원을 벌어들이는 등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다.
그럼에도 1기 사업자인 국민은행은 로또사업 순익규모에 대해 “생각보다 이익이 많이 나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국민은행은 이대로는 남는 게 없다면서 일찌감치 2기 사업 참여를 포기했다. 게다가 1기 시스템사업자였던 코리아로터리서비스(KLS)는 수수료 비율이 약속과 달리 지나치게 낮다며 현재 정부를 대상으로 거액의 소송마저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유진기업은 물론, CJ와 코오롱 등의 대기업들이 로또 사업에 목을 매고 입찰에 뛰어들었던 이유는 뭘까.
업계의 시각은 우선 아무리 수익이 줄어든다한들 적어도 몇백억 원대의 수익은 거뜬히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로또 시스템사업자 수수료율은 현재 3% 전후며, 따라서 수백억 원은 번다는 계산이 나온다.
A 은행 관계자는 “순익도 순익이지만 로또를 팔면서 각종 자금을 취급하는 데 따른 부수익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로또사업의 메리트는 또 있다. 엄청난 브랜드 노출효과와 이미지 제고효과다. 복권위 관계자는 “로또사업을 하는 것 자체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효과가 있다”며 “특히 은행 등 금융회사의 경우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B 은행 관계자도 “웬만한 기업이미지 광고보다 로또로 인한 효과가 클 수 있다”며 “공신력 제고효과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수십억~수백억 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년부터 5년 동안 새로 로또사업을 담당할 사업자 선정 작업에 대기업들이 체면불구하고 대거 뛰어들었던 것.
▲ 유진그룹 홈페이지 | ||
‘로또와함께’ 컨소시엄을 주도한 CJ는 사업자 선정을 위해 엠넷미디어 박광원 대표를 필두로 20명의 핵심 인재가 포진한 일명 ‘로또팀’을 운영했다. CJ 내에서도 이 조직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극소수만 알 정도로 비밀리에 운영됐다. 탈락한 지금은 각자 조용히 자기 자리로 복귀한 것으로 전해진다.
CJ 측은 레저 및 오락 문화사업에 진출,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를 아우르는 종합생활문화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로또사업에 도전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외부의 시선은 다르다. 비록 큰돈은 아니어도 100% 현금장사인 데다 자체 유통 및 영업망을 활용해 비용 절감이 가능하고 안정적 수익이 기대된다는 점을 노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로또 판매상이나 거액 당첨자 등을 새로운 고객으로 흡수하는 부수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향후 중국 인도 베트남 등 해외에 관련 사업을 진출시키는 기회도 생길 수 있었다.
여기에 숨겨진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2기 사업자는 로또사업으로 인해서 기업 이미지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법규정상 복권위원회는 로또사업을 통해 거둬들인 수익의 4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취약 계층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이번 2기 사업부터는 사업자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으로 집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업자가 되는 대기업은 로또를 통해 거액의 사회공헌 활동에 동참하거나 이를 대외 사회공헌활동 홍보 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드림로또’ 컨소시엄의 코오롱도 마찬가지였다. 코오롱은 온라인복권사업추진단이라는 비교적 공개적인 조직을 꾸렸지만, 이 조직에 관해서는 누가 질문을 하더라도 답을 하지 않고 ‘알아서’ 묻지도 않는, 사실상의 ‘함구령’이 내려져 있었다.
송문수 온라인복권사업추진단장은 조직을 출범시킬 당시 “사업자 선정부터 2기 복권 사업 시행까지는 4개월 정도의 시간적 여유밖에 없다”며 “주어진 시간 내에 사업자 전환을 차질없이 이뤄 내는 동시에, 안정적인 사업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역량이 있는 관련분야 최고의 업체들이 힘을 모아 추진해야 한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코오롱그룹은 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1기 온라인복권 운영경험이 있는 KT와 삼성SDS, 그리고 선두권 은행인 하나은행과 손을 잡았지만 유진그룹에 밀려 꿈을 접게 됐다.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이제 로또사업으로 큰돈을 버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입찰경쟁을 벌였던 대기업들도 로또사업보다는 로또사업을 통해 얻어지는 부수적 효과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