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 현대증권지부(위원장 민경윤)는 지난 19일 현대증권 고문으로 있는 현정은 회장에게 월 3000만 원의 고문료를 지급하게 한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는 60만 주를 보유한 현대증권의 ‘주요주주’이기도 해 파장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에야 외부로 불거졌지만 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3년 9월부터 시작된다.
노조에 따르면 정몽헌 회장이 사망한 뒤 현대증권 경영진은 노조에 찾아와 ‘미망인의 사정이 어려우니 우선 고문으로 올리고 고문료를 지급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노사합의에 따라 현대증권은 고문을 둘 수 없게 돼 있었다. 노조 측은 경영진의 제안에 공감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현 회장은 그해 10월 회장에 취임하고 이후 현대상선 등 각 계열사의 등기이사에 올랐지만 고문직은 유지했다.
현 회장이 2003년부터 월 3000만 원씩 받은 고문료는 현재까지 13억 8000만원. 보통 고문이 6개월가량 재직하며 월 500만 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많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노조는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다. 하지만 현대증권 이사회는 2005년 9월 26일 고문 계약을 결의하는 등 이를 공식화했다. 당시 김지완 현 사장 등 8명의 이사 중 노조 측 사외이사 하승수 교수 1명만 빼고 7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후 지난 5월 주총에서 하 이사마저 재선임에 실패하자 노조는 현 회장의 고문료 문제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했다.
노조는 결국 지난 19일 찬성표를 던진 2005년 9월 당시 7명의 이사와 최근 고문료 지급을 중단하라는 청구를 거부한 현 이사 3명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는 소장에서 “증권업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현정은 회장에게 대표이사보다 많은 고문료를 지급하는 것은 대주주에게 이익을 얻게 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따라서 피고들에게 이사회 결의가 있던 2005년 9월부터 2007년 7월까지 부당하게 지급된 6억 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이에 대해 현대증권 관계자는 “현 회장이 맡고 있는 고문직은 퇴임 임원의 예우 차원의 고문과 다르다. 현 회장은 증권거래법상 증권사의 최대주주 회사 이사는 증권사의 이사가 될 수 없어 고문으로 있는 것이고 그룹 총수로서 계열사 발전을 위해 일하고 계열사는 혜택을 받아 그 대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때문에 고문료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관계자도 “노조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 현정은 회장은 현대증권에 많은 도움을 주며 고문 역할을 하고 있다. 고문료는 합법적인 것으로 아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현정은 회장은 ‘정씨 현대’의 경영권 공격에 맞서기 위해 현대건설 인수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현대건설은 사실상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좌우할 현대상선 지분 8.3%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증권시장에는 현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에 현대증권을 ‘활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하나는 ‘현대증권을 매각해 현대건설 인수 자금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관측.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있어 매각에 좋은 여건도 조성됐다. 7월 1일로 예정됐던 ‘비전선포식’도 20일로 연기됐다가 취소된 것이 정황증거라는 주장도 있는 형편이다.
현대증권 측은 김중웅 회장까지 나서 “M&A는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현대증권 관계자도 “크지도 않은 그룹의 주력 기업인데 팔아서 뭘 하겠느냐”고 힘을 보탰다. 그는 또 “비전선포식은 자본시장통합법 이후를 대비한 것으로 내부적으로 검토하다 행사만 취소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어쨌거나 현대증권 주가는 M&A 호재로 한동안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현대증권을 팔아 현대건설을 산다는 시나리오는 현재로선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시가총액만으로 따져 봐도 19일 현재 현대건설은 8조 5369억 원인데 반해 현대증권은 3조 8392억 원에 불과해 ‘덩치’가 한참이나 차이나기 때문이다.
현대증권을 활용하는 또 다른 방안은 현대증권을 중심으로 하는 컨소시엄 구성.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도 증권사가 기업을 인수할 경우 의결권이 제한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현 회장 측으로선 현대증권을 직접적으로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자문 중개 등 ‘지렛대’로 활용,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증권 노조의 이번 소송은 현정은 회장이 현대증권을 활용하는 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현 회장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노조가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민경윤 위원장은 “조사 중인 사안이 더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노조는 현재 이번 손해배상 소송을 포함해 회사와 전·현직 경영진을 상대로 7건의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정은 회장이 어떤 방법으로 여러 장애물을 넘어 경영권을 지켜낼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