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엔 대선 패배 보름 만에 전당대회 일정을 확정하면서 신속한 보수 재건 작업에 들어갔지만 지금 국민의힘은 거북이 행보만 지속 중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국민의힘 내부에선 “몇 평 남지도 않은 골목 땅 지키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강한 비판이 쏟아진다.

계엄, 탄핵과 파면, 대선 패배…. 이 기간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속수무책 두들겨 맞기만 했다. 최근 복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은 지난 6·3 대선 때 김문수 후보 득표율(41%)보다 훨씬 낮다. 심지어 김문수 후보 지지율의 반 토막이 났다는 수치까지 도출되고 있는데, 이것만 봐도 헤매는 국민의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국민의힘 많은 인사들은 여전히 계엄과 탄핵 등을 핑계로 댄다. 느닷없는 악재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면 낮은 정당 지지율의 핑계로 삼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8년 전 박근혜 탄핵 국면과는 완전히 다르다. 국민의힘이 운동장 탓을 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가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당시 여당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쪼개졌다. 2017년 1월 5일 가칭 개혁보수신당이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발기인대회를 열고 창당을 공식화했다.
신당은 발기인대회에서 ‘개혁보수신당’을 창당 전까지 사용할 임시 당명으로 채택하고 정병국 의원을 창당준비위원으로 공식 선출했다. 창당 발기인만 1185명에 달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을 이탈한 현역 국회의원 29명,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광역지자체장 2명까지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새누리당 원외당협위원장 32명도 합류했다.
신당 세력은 여세를 몰아 바른정당을 정식으로 창당하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2017년 대선 후보로 출마시켰다. 거대 정당 후보들에 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유승민 대선 후보는 6%대 득표율에 그쳤지만 집나간 바른정당은 이름을 바꾼 친정(자유한국당)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친정에서 나와 대선을 치른 바른정당은 2018년 지방선거 때도 귀가하지 않았다. 바른정당은 그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 통합, 바른미래당으로 변신했고 그해 지방선거를 치렀다. 당시 바른미래당을 안철수 대표와 함께 이끌었던 유승민 대표는 2018년 1월 25일 자신의 고향이자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를 찾아 “현재 자유한국당이 겪고 있는 무기력증이 지방선거 이후 당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의 소멸을 호기롭게 말했다.
그리고는 보수 지지층이 많은 TK(대구·경북)에서의 지방선거 전망과 관련, “대구·경북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지금처럼 낮은 적이 없다”며 “우리 당과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간 3파전을 하기에 충분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또 “자유한국당이 문을 빨리 닫는 것이 한국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니까 되도록 빨리 닫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유 대표 희망과 달리 분열된 보수는 ‘폭망’했다. 큰집 자유한국당은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만 가까스로 건친 채 2018년 여름 지방선거에 참패했다. 바른미래당 역시 광역단체장은커녕 기초단체장도 전혀 차지하지 못했다. 보수 세력의 몰락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수의 재통합은 3년이나 걸렸다. 총선을 코앞에 둔 2020년 2월 17일, 미래통합당이라는 이름으로 보수는 뭉쳤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살림을 합쳤지만 2020년 봄 총선에서 거대 여당을 만들어주는 참패를 기록한 뒤 소수 야당으로 전락했다. 지금처럼 여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 장악하는 일당 권력 독주 구도를 만들어줬다.
이런 과거를 돌아볼 때 지금 국민의힘은 분열을 전혀 겪지 않고 있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평평한 구장에서 뛰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한목소리다. 더욱이 국민의힘이 분열됐을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달리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서는 ‘콘크리트 비호감층’이 많다는 평이다.

#속터지는 거북이 행보 지속
국민의힘은 대선 패배 한 달이 넘도록 세월만 보내고 있다. 그동안 새 원내대표로 송언석 의원을 뽑고 “전당대회를 조기에 개최한다” 정도의 일정만 확정했을 뿐, 속도감 있는 보수 재건 방안은 내놓지 못 하는 모습이다.
이 역시 8년 전을 떠올려 봤을 때 지극히 굼뜬 행보다. 2017년 5·9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인 5월 22일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일정을 확정지었다. 대선 패배 두 달 만인 7월 3일 전당대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패장이었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전당대회 출사표를 던져 새 당대표가 됐고, 국민의힘은 대선 패배 두 달 만에 보수 재건을 위한 새 지도부 진용을 갖췄다.
국민의힘은 최근 전당대회를 앞두고 내부 혼란이 극심한 상황이다. 내부에서 현재의 단일지도체제가 아닌 집단지도체제 전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8년 전 전당대회 직전 똑같이 불거진 장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부 친박 인사 등을 중심으로 “원톱 될 만한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집단지도체제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홍준표 전 경남지사 등 전당대회 출마 희망자들의 반발로 무산됐고 단일지도체제가 고수됐다.
그런데 국민의힘 내부에서 또 집단지도체제 전환 얘기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단일체제는 전대에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 경선을 따로, 집단체제는 단일 경선에서 최다 득표자가 대표최고위원, 차순위 득표자들이 최고위원이 되는 방식을 뜻한다.
집단지도체제를 내세우는 명분은 당권 독식이 이뤄질 경우, 당 내부가 분란에 휩싸이고 거친 파찰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염려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주장을 하는 이들의 속내는 따로 있다는 의심을 당 일각에서는 제기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권을 쥔 당대표의 힘을 상당 부분 빼보겠다는 의도로 보는 것이다.
당권주자로 예상되는 이들은 발끈하고 나섰다. 안철수 의원은 6월 26일 페이스북에 “우리 당의 혁신을 위해서 집단지도체제는 안 된다”며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변종 히드라에 불과하다. 당에 필요한 것은 ‘혁신 전권을 가진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적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현재 비대위 임기가 다해 새 비대위가 곧 출범하는데 위원장은 송언석 원내대표의 겸임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송 원내대표가 띄운 혁신위원회도 당내 기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집권세력인 민주당은 8월 초 전당대회를 통해 승리에 도취할 수도 있는 당 분위기를 긴장감이 흐르도록 바꿨는데 국민의힘은 의사결정 속도가 너무 늦고 8년 전보다 더 못한 상황이라는 지역구 당원들의 질타가 나온다”고 털어놨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전당대회 출마자가 다수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조기에 출마 선언을 하는 이들조차 없는 이유와 관련해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공포감을 이유로 든다. 지방선거 참패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당 지도부를 맡을 경우 거센 책임론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다. 친한계 인사들이 한동훈 전 대표의 출마를 만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이재명 정부와 집권당이 각 지역에 맞춤형 정책을 마구 쏟아낼 경우,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에 대항해 제대로 싸우는 모습은커녕 텃밭 노른자 지자체장에 대한 관심만 쏟아내는 광경이 목격되면서 비관론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24일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연내에 이행할 수 있도록 방안을 검토하라고 강도형 해수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연내에 이전을 하면 새 청사를 건설할 시간이 없는 만큼 임대 형식으로 공간을 마련해 이전을 추진하는 속도전을 벌일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가 2018년 지방선거 모델을 소환하는 것으로 본다. 당시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정부는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TK만 빼고 전 지역 석권을 목표로 했고 실제 이를 이뤄냈다. 대구시장, 경북도지사만 자유한국당에 내주고 민주당은 전국을 파란색으로 물들였다. 민주당 약세 지역인 부산·울산·경남까지 모두 차지했다.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민주당의 ‘싹쓸이 전략’이 나오고 있지만 국민의힘 대응은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텃밭인 대구시장 출마자로 거론되는 이들이 현역 국회의원 5명 등 벌써 10명을 훌쩍 넘었는데 이 모습만 봐도 느긋하기만 한 국민의힘 현주소를 보여준다. 민주당 한 현역 의원은 국민의힘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맡는 바람에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선거에 나가지 못했는데 만약 김 전 총리가 대구시장으로 나오고 경북도지사에도 거물급을 내세웠다면 전국 싹쓸이도 가능했을 것이다. 무리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 대통령 지지세가 더 올라가고 이 대통령의 고향인 TK에서 국민의힘에 대한 민심 이반이 일어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전국이 파란색 일색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중진 의원들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도부는 물론, 내년 지방선거까지 겨냥한 물갈이론으로 읽힌다. 중진들부터 텃밭 단체장 출마 등 골목 지키기에 머물지 말고, 기득권을 버린 뒤 중수청(수도권·중도·청년층)을 향해 희생정신을 갖고 맨 앞에 서서 나가라는 요구다.
국민의힘 소속 김태흠 충남지사는 6월 25일 충남도청에서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갈등으로 비치더라도 환부를 도려내고 새로운 살이 돋도록 해야 한다”며 “적어도 4선 이상 중진들은 스스로 국민에게 반성하는 모습, 뭔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데 중진이라는 사람들이 먹을 게 있으면 어디 숨어 있다가 득달같이 나타나고, 어려울 때 뒷전에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