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이라도 간암, 위암은 통증이 비교적 적지만 췌장암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프다. 일요신문 DB |
그럼 죽음으로 이어지는 질병에는 고통은 어떨까? 3대 사인에 해당하는 심장 질환, 혈관 질환, 암에 따른 통증에 대해 일본의 <주간현대>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병의 통증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갑자기 발병하는 것과 서서히 통증이 심화 돼 장기간 계속되는 것이다. 극심한 통증이 수반되는 병 가운데 돌연 발생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지주막하 출혈(SAH, subarachnoid hemorrhage),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 급성심근경색이 있다. 이런 병들은 처치가 늦어지면 여지없이 사망하게 되는데 아픔을 느끼는 시간은 짧을지언정 정도는 가장 크다 고 할 수 있다.
지주막하 출혈은 뇌졸중의 일종으로 뇌 표면의 동맥이 손상되어 발생하는 뇌 혈관 질환인데 특히 통증이 심하다. 지주막하 출혈을 일으켜 쓰러졌다가 다행히 회복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쓰러지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고 한다. 머리 뒷부분을 망치로 한대 힘껏 얻어맞은 듯 느낌이 들어 혹시 누가 자기를 때린건가 싶어서 고개를 돌린 것이다. 지주막하 출혈은 발병 2~3 주 전에 가벼운 두통, 어지럼증과 함께 사물이 2개로 보이는 현상 등의 전조증상이 나타난다.
대동맥 박리는 심장에서 나와 온몸으로 혈액을 보내는 굵은 혈관인 대동맥의 벽이 파열되면서 발생한다. 순환기 질환 중 심근경색 다음으로 사망률이 높은 병이다. 대동맥 박리가 나타나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흡사 등에 무거운 철판을 얹은 듯한 압박감을 맛본다. 너무 아파서 기절하는 경우도 많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들은 모두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진저리를 친다.
급성심근경색은 심장이 있는 가슴 왼 쪽 주변이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구토를 한다. 호흡곤란을 수반하는 경우도 잦다. 단 급성심근경색은 응급처치나 치료를 잘 받으면 90% 이상이 회복된다. 그렇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 한번 심근경색이 있던 이는 두 번, 세 번 재발하기 쉽다. 그때마다 상태는 한층 나빠지고 죽을 확률도 높아진다. 발작이 일어나기 전에 배꼽으로부터 윗배가 아프고 식은땀을 흘리면 심근경색을 의심해보는 게 좋다.
그런데 같은 심장질환이라도 심장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못하는 심부전, 심장이 규칙적으로 수축하지 않는 부정맥은 급성심근경색보다는 아프지 않다. 돌연사하게 되는 치사성 부정맥이라 할지라도 발병하면 몇 초 만에 의식불명에 빠지므로 통증을 느끼지는 못한다.
위와 같은 질환과는 대조적으로 통증이 서서히 더해져 오래 지속되는 병으로 대표적인 게 암이다. 죽음을 두 달여 앞두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전체 암환자의 절반 정도이며, 죽기 2주 전이 되면 약 70%의 암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즉 암의 최대 특징이 통증인 셈이며 암은 가장 아프고 괴로운 죽음을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암은 대체 왜 아픈 걸까? 암세포가 증식하며 퍼져서 몸의 수용체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기본적으로는 소염진통제를 쓰는데,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스테로이드와 같은 진통 보조제, 몰핀(morphine)과 같은 의료용 마약물질을 쓴다. 암이 상당히 진행되 면 몰핀도 듣지 않는데 통증을 완화하고 자 투여량을 늘리면 자칫 혼수상태에 빠져 그대로 죽기도 한다. 게다가 암은 항암제의 부작용에 따른 고통이 뒤따르기도 한다. 대표적인게 말초신경장애. 손발이 저리고 얼굴이 따끔거리는 현상이 보인다. 이 때문에 찬물이 든 컵을 제대로 들 수 없고, 차가운 물에 손도 씻지 못 할 지경이다. 심지어 더운 날에도 맨발로 잘 수 없을 정도로 발이 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암이라 할지라도 암이 생긴 부위에 따라 통증의 정도가 다르다. 통증이 비교적 적은 암은 병에 대한 자각증상이 늦어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 발견돼 소위 ‘침묵의 장기’라 일컬어지는 간암, 위암 등이다.
또 폐암도 초기에는 통증이 덜하다. 신경이 적어 통증을 덜 느끼기 때문. 어느정도 폐암이 진행되어도 기침이나 혈담이 나올 뿐이다. 폐암의 경우 폐의 통증은 폐포를 얇게 감싼 흉막이 염증을 일으킬 때 느껴지는데 이런 증상은 폐암이 상당히 진행되었을 때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흉막염이 발생하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호흡이 힘들뿐더러 폐 속에 흉수가 차 서서히 고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산소를 흡입하는 양도 줄어들어 숨을 쉬어도 폐에 산소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괴로운 모양새다.
안타깝게도 폐암 말기 때는 이런 증상이 죽는 날까지 계속된다고 보면 된다. 누워서 몸을 돌리기조차 힘이 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 상태가 되면 입술을 깨물고 참는 수밖에 없는데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는 환자가 속출한다.
대장암을 앓다가 장폐색이 일어난 경우도 괴롭다. 대장에 생긴 종양이 장관을 막아서 생기는 장폐색이 나타나면 배가 팽팽해지고 구토를 한 다. 그런데 이때는 평상시 구토와 달리 위액이 나오지 않고 변과 같은 게 입에서 나온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통 그 자체다.
암 중에서 통증이 비교적 빨리 나타나는 암은 췌장암과 간에서 쓸개즙이 배출되는 통로인 담관에서 생긴 담관암이다. 이런 암은 신경에 침윤하기 쉬운 성질이 있어서 척추로 전이된다. 그러면 허리나 등에 통증이 생긴다.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아픔을 느끼는 게 바로 말기암이 되어 뼈로 전이가 일어났을 때다. 제일 처음 암이 나타난 부위가 어디건 상관없이 강한 통증을 느끼는데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절규할 정도로 아프다. 뼈도 약해져 골절이 일어나기 쉽다. 암 환자가 의사에게 차라리 죽여 달라고 울부짖을 때가 바로 이때다.
한편 꼭 암이 아니더라도 노화에 따라 체력이 저하되어 스스로 식사를 하지 못할 때 하는 연명치료가 괴로운 죽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력이 쇠한 노인에게 영양을 공급하려 링거를 맞힐 때 몸에서 흡수하지 못하면 심혈관에 무리를 주어 심부전,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 등을 일으킨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