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 사드SC에서 왕성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정수. AP/연합뉴스 |
‘끝났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요즘 축구계가 그렇다. 공식 경기가 없을 뿐, 비시즌도 계속 후끈하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선수 이적이다. 축구 팬들의 ‘보는 재미’를 채워줄 수는 없어도, ‘기다림의 미학’ ‘기대의 흥미’를 주기에는 충분하다. 해외 진출이 흔하디흔한 세상이 도래했지만 한국 선수들의 유럽행은 아직 드물다. 그런데 중동과 중국 등지로의 이적설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물론 ‘설’에서 그치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 이적이 전격적으로 확정되는 상황도 종종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많고 많은 지역 중 왜 하필 중동일까? 과연 그곳은 어떨까?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 중동 붐은 왜?
어느 순간부터 중동이 매력적인(?)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국제 축구계에서도 중동은 이제 어엿한 한 축으로 성장한 분위기다.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 선수들도 자신의 현역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중동을 종종 택하곤 한다. 여기에 2011 아시안컵을 개최했고,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권까지 카타르가 가져가면서 중동은 한층 전세계 팬들에게 가까워졌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K리그 클럽들이 정상을 향한 주요 길목에서 마주하는 팀들도 대개 중동 팀들이다.
역시 돈이다. ‘뭐니뭐니해도 역시 머니(Money)’라는 일각에서의 표현처럼 ‘오일(Oil) 달러’로 무장한 중동 클럽들은 엄청난 재력을 자랑한다. 대개 현지 국가 왕족들이 부업 삼아, 혹은 취미 삼아 축구팀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기에 비롯된 일들이다. 역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적도 극히 드문데, 중동권의 단합으로 월드컵 개최권까지 얻은 걸 보면 분명 중동과 FIFA 간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으리라는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한국 축구도 중동과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거 이곳에 진입하면서 결코 장벽이 높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
한국 근로자들이 대거 진출했던 사우디가 사실상 축구계 중동 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알 힐랄에서 이영표(현 캐나다 밴쿠버 화이트캡스)가 활약했고, 설기현도 역시 이곳에 몸담았다. 무적 신분이지만 한때 ‘축구 천재’ 소리까지 들었던 이천수가 알 나스르에서 뛰었고, K리그 인천에서 뛰던 유병수가 승부조작이 한창 불거진 시점에 알 힐랄로 떠나 지금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후 숱한 선수들의 이적 러시가 이어졌다. 카타르에도 큰 시장이 형성됐다. 중앙수비수가 특히 각광을 받았다. 이정수가 알 사드SC로, 조용형이 알 라이안에 둥지를 틀고 지금까지 왕성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측면 공격수 남태희가 레퀴야SC에서 뛴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이적은 런던올림픽 남자축구에서 4분을 뛰고 병역 면제 혜택을 입은 김기희가 알 사일리아로 떠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승부조작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선수들이 대한축구협회와 FIFA로부터 ‘어떠한 경우에도 축구계에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판결을 받기 전까지 제2의 인생 개척을 노린 곳이 바로 중동이었다.
당연히 공통된 인식은 ‘돈을 많이 준다’였다. ‘달러 지폐를 X 닦는 데 쓴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돈을 물 쓰듯 하는 곳이기에 각 구단과 선수들이 사인한 계약서에 명시된 연봉은 대개 엄청나다. 그리고 이게 확실히 지켜지면 아무 문제가 없다.
#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알 라이안으로 이적한 조용형. 제주UTD 시절 모습. |
그렇다고 전혀 지급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냥 늦어질 뿐(?)이란다. 여러 달 동안 돈이 들어오지 않다가 갑자기 어느 날, 한꺼번에 몇 달 치 급여가 입금된다. 선수가 더 이상 팀에 남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때 즈음, 목돈을 직접 확인하게 되니 과감하게 떠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천수가 비슷한 낭패를 경험했다. 울산 주장 곽태휘가 최근까지 알 힐랄 등 여러 중동 클럽들의 러브 콜을 받는 와중에 쉽게 행선지를 중동으로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점이다.
사실 중동에는 예상할 수 없는 그네들만의 문화가 또 있다. ‘쉬운 포기’다. 그저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또 일찌감치 탈락했다는 이유로 왕족들이 운영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다른 왕족이 와서 구단주 행세를 한다. 주인이 쉽게 물갈이되니 안정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들이 스폰서 등 관여하는 유럽 클럽에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중동에 끌어오는 경우다. 이로 인해 조용형이 큰 피해를 입었다. 알 라이안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구단 말라가와 연계된 매력적이고 인기 많은 팀이었지만 이제 알 라이안과 말라가 커넥션은 사실상 ‘없는 일’이 돼 버렸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일부 구단과 몰지각한 몇몇 에이전트들의 행태도 중동이 꼭 좋은 진입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통상적인 임대 계약은 구단이 임대료를 덜 받는 대신, 연봉을 많이 받도록 해주는 게 축구계 관례였으나 모 선수의 경우는 연봉보다 구단이 임대료를 훨씬 많이 챙겨 빈축을 샀다. 에이전트들도 중동 클럽으로의 이적에는 공식 계약 및 비공식 계약이 따로 있다는 점을 악용, 선수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안겨주고 자신은 훨씬 많은 수수료를 챙기는 경우가 많다. 여러 명의 에이전트들이 동시에 달려들어 이적 문제를 작업하기에 ‘재주는 곰(선수)이 넘고, 돈은 왕서방(에이전트)이 챙기는’ 상황도 허다하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