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전사고가 났던 반도체라인의 정상화를 알리며 삼성전자에서 공개한 사진. | ||
“3분기(7~9월) 실적으로 보여 주겠다.”
지난 6일 정전사고가 났던 기흥 반도체 공장,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작업복 차림으로 내외신 기자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메모리 생산라인을 책임지고 있는 최창식 부사장도 “생산수율은 이미 사고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며 “이번 사고의 손실액은 모두 400억 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7일에는 사고수습을 끝내고 휴가 중이던 윤종용 부회장이 현장에 들렀다. 삼성전자 측은 윤 부회장이 반도체 생산수율이 완전 정상화된 것을 직접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윤 부회장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으로 그 빚을 갚겠다”고 강조했다. 완전정상화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밝히는 피해액은 최 부사장의 말대로 ‘400억 원 미만’이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이번 정전사고 피해규모를 놓고 300억 원부터 2000억 원대까지 큰 시각차를 보였다. 피해 규모가 관심을 받는 이유는 삼성전자가 삼성화재에 든 거액의 보험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13일 삼성화재에 최고 보험금 5조 5000억 원에 이르는 손해보험에 가입했다고 공시했다. 보험료는 일시불로 856억여 원. 개시일은 8월 1일부터였는데 3일 만에 사고가 터진 것이다. 그 전까지 삼성전자는 역시 삼성화재에 보험금 3조 5000억 원, 보험료 752억 원짜리 보험을 들고 있었다. 선견지명이었을까. 삼성전자는 재계약을 하면서 보장 범위를 늘리고 사업장을 추가해 보험금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거나 이 보험으로 삼성전자는 원한다면 피해액 상당부분을 보험금으로 받을 수 있을 듯하다. 딜레마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사람이나 기업이나 피해규모를 최대한 크게 산정해 보험금을 많이 타내려 하고 보험사는 적게 주려고 줄다리기를 한다. 사실 피해액이라는 게 누가 어떻게 산정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계열 보험사라 삼성전자가 원하는 만큼 보험금을 타내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보험소비자연맹의 한 관계자는 “일반인이나 일반 기업이 원하는 만큼 보험금을 타내려면 소송까지 가는 등 오래 걸리고 쉽지 않지만 계열 보험사에 보험을 든 피보험사는 피해액을 후하게 쳐서 신속하게 보험금을 지급받는 게 관행”이라고 밝힌다.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지분 1.26%를 쥐고 있는 ‘주요주주’이기도 하다.
▲ 기흥공장 전경. | ||
이처럼 삼성전자가 보험금을 많이 타내려면 피해액을 늘려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된다면 지금껏 조기 정상화를 위해 애써 피해를 줄여온 노력이 허사가 된다는 것.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의 신뢰에도 금이 가게 된다. 보험금 액수가 상식적 수준을 넘는다면 앞의 LG전자 사건처럼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조기정상화와 위기 해소를 강조하기 위해 최소한의 보험금을 신청할 수 있다고 본다. 피해규모가 작을 경우 아예 보험금을 신청하지 않고 손실로 처리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보험금을 타면 내년에 요율이 오를 것까지 염두에 두고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가뜩이나 실적도 안 좋은데 거액의 보험에 들어놓고도 보험금을 타지 않는 꼴이 된다. ‘그럴 거면 보험은 왜 들었느냐’는 국내외 삼성전자 주주들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관측들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모든 것은 조사가 끝나고 나서 결정될 것이다. 현재로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화재도 “사고원인과 피해규모를 면밀하고 철저하게 조사하고 난 뒤에 피보험사(삼성전자)의 청구가 제기되면 적절하게 보험금 지급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공식 입장이다.
삼성화재의 한 관계자는 “지급이 마무리되기까지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 “외부에서는 계열사라는 점 때문에 더 관심을 갖는 듯하다. 그러나 계열사라지만 보험사와 피보험사 관계일 뿐이다”고 잘라 말했다.
보험금 산정은 삼성화재의 실적과 관련해서도 관심을 끈다. 삼성화재는 삼성전자의 ‘패키지보험’을 유치했을 당시 언론을 통해 “이 상품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점차 늘고 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사고가 나자 실적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삼성화재 측은 “재보험을 통해 위험을 분산시켜놨기 때문에 회사 손익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고에 대해 삼성전자 안팎에선 ‘삼성답지 않은 사고, 삼성다운 복구’라고 평가한다. 사후처리만큼은 확실했다는 것이다. 과연 남은 문제들까지도 ‘역시 삼성’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