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과 8월 초 코스닥 IT기업인 한텔은 이틀 사이에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했다가 하한가 근처까지 폭락하는 널뛰기 시세를 연출했다.
이동통신 장비 생산이 주력인 한텔은 지난 2004년부터 매년 수십~수백억 원씩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회사. 과거 무선호출기(삐삐)가 한창 인기 있던 시절에는 상당한 이익을 내기도 했지만 무선통신 시장이 휴대전화 위주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사세가 위축돼 있는 상태다. 이 회사는 올해만 해도 지난 1분기까지 30억 원 가까운 적자를 내 주가는 1100~1300원선을 맴돌고 있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한텔이 처음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초. 4월4일과 5일 이틀간 상한가를 기록한 이 회사는 10일 다시 한번 상한가를 치며 1200원대이던 주가가 2600원대로 급상승했다. 그러나 한텔의 주가는 4월 중순 검찰이 코스닥기업 루보의 주가조작 의혹을 조사하기 시작한 뒤 롤러코스터를 타듯 하한가와 상한가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루보와는 별 관련이 없는 회사임에도 코스닥에서 각종 루머가 난무하면서 이에 휩쓸리기 시작한 것.
그러다 지난 7월 30일 가수 비가 이 회사를 통해 코스닥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또 다시 상한가를 기록했다. 비가 최대주주인 공연기획사 하얀세상의 김우창 대표가 한텔의 최대주주인 윤성진 대표의 보유주식 250만주(6.9%)와 경영권을 58억 원에 사들인다고 발표한 것.
하지만 ‘비 효과’는 불과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이튿날 비의 부친인 정기춘 씨가 한텔의 M&A(인수·합병)와 비는 무관하다고 해명하면서 주가가 약세로 돌아섰다.
정 씨는 “하얀세상은 자본잠식 상태로 우회상장 요건도 갖추지 못한다”며 “그럼에도 증시에서 비와 관련된 우회상장설 등 구설이 끊이지 않아 보유지분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김우창 대표의 한텔 인수 역시 계약금 3억 원만 지급된 상황으로, 오는 22일까지 나머지 잔금 55억 원이 입금될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다음날인 1일엔 주가가 13.86% 급락한 1895원으로 곤두박질 쳤다.
비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루머나 해프닝으로 인해 기업의 주가가 춤을 추는 현상은 한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 1월에는 이번 한텔건과 비슷한 ‘주연 김우창, 카메오 비’ 형식의 또 다른 주가 급등락이 세종로봇이라는 회사에서 일어났다. 세종로봇은 당시 하얀세상이 회사를 인수한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주가가 평소의 두 배 수준인 3415원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1400원대로 다시 떨어져 있다. 당시에도 김우창 씨는 세종로봇의 경영권을 인수한다는 계약을 맺었지만 잔금 등을 치르지 않아 4개월이 흐른 뒤인 지난 5월 계약이 해지됐다.
비의 미국 LA 공연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엔터테인먼트 업체 스타엠 역시 증시에서 쓴잔을 마셨다. 스타엠은 지난 4월 중순 비를 영입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2000원이 조금 안되던 주가가 최고 4300원대까지 올랐다가 현재 2000원대로 반토막이 난 상태다.
게다가 스타엠은 주가가 한창 지솟던 지난 5월 3일 구주주 유상증자 청약을 결의했지만 전체 모집 주식 810만 주 중 절반을 조금 넘는 451만 5327주(55.74%)만이 청약됐다.
비의 영입과 관련된 루머는 심지어 ‘아니면 말고’식의 황당한 주가급등락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코스닥 기계장비 업체인 이스타비는 지난 5월 비를 영입한다는 소문이 나돌자 “비 영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회사의 발표에는 “경쟁사가 많아 성공은 미지수”라는 묘한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라는 얘기인 셈이다. 당시 5000원대를 넘보던 이 회사 주가는 현재 2300원대로 떨어져 있다.
올리브나인이라는 코스닥 기업 역시 비와 전속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내용이 보도돼 주가가 10.96%나 급등했고 거래량도 평소의 8배가량으로 늘었다. 하지만 비가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경우 부정확한 정보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여전히 적지 않아 투자에 매우 유의해야 한다”며 “유명인 테마에 휩쓸리기 전에 해당 기업의 재무 상황 등을 잘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작 본인인 가수 비는 어떤 생각과 계획을 갖고 있을까. 이에 관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정통한 증시 관계자들은 그가 특정회사에 소속되거나 전속계약을 맺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비는 배용준의 경우처럼 1인기업 형태의 회사를 세울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쉽게 말해 ‘주식회사 비’가 설립될 것이란 얘기다. 이와 관련해 증권가에서는 그가 이사로 등재된 ‘레이니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주목하고 있다. 회사 이름인 레이니는 그의 예명인 비에서 따온 것으로, 이 회사는 비가 전 소속사 JYP를 떠나기 전 아버지 정기춘 씨가 세워 운영해온 회사다. 비는 이 회사의 이사로 등재돼 있다.
비는 JYP와 전속계약이 만료되고 월드투어가 끝난 뒤 따로 직원들을 선발해 매니지먼트 등의 기본업무를 맡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비 측은 이에 관해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레이니엔터테인먼트는 서울 청담동에 사무실을 임대하는 과정에서 편의를 위해 빌린 ‘간판’일 뿐이라는 것이다. 소속사가 없는 상태에서 스케줄 관리와 운전 등 각종 업무를 수행할 직원들이 쓸 공간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회사’라는 형식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증시 일각에선 유독 ‘비’와 관련된 작전설이 난무하는 이유에 대해 비 본인의 의사와 비의 부친이 서로 따로 움직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비가 아닌 ‘비의 부친’이 관련됐다는 얘기만으로도 관련 회사의 주가가 급등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엔터테인먼트 관련 업계에서는 ‘비 주식회사’나 ‘1인기업’ 설립 가능성도 나돌고 있다. 잡음이 나기 쉬운 우회상장은 안할 것이란 얘기다. 비의 사무실 관계자는 “현재로선 어떤 말씀도 드리기 어렵다”며 “현재 논의 중이며 어떤 가능성도 닫아놓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비는 현재 독일에서 영화 <스피드 레이서>의 촬영에 임하고 있으며, 8월 말 또는 9월 초에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귀국 시점을 전후해 앞으로의 행보에 관해 공식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