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90이 넘은 한 노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6·25 전쟁 때 장교로 근무하다가 살아남아서 미국으로 갔었죠. 가서 보니까 미국으로 도망을 와서 좋은 집에 살면서 대학을 다니는 한국인들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장관이나 부자였어요. 자기 아들만 미국으로 빼돌린 거죠. 그 집 풀장을 청소해 주고 몇 달러 받으면서 굴욕감을 느꼈었죠.”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의 대통령이 되려면 미국의 면접을 통과해야 하는 것일까. 여러 대통령을 지켜본 통일부 장관 출신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군인 출신 대통령은 미국한테 더 꼼짝 못해요. 정통성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니까요. 박정희가 케네디를 만나고 전두환이 레이건을 만난 게 그런 것이었죠. 미국 대통령을 만나면 국민들이 인정해 주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전두환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가 내게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레이건이 따로 불러 지시하더라고요. 핵을 만들지 말 것. 대통령을 한 번만 할 것. 그러면 정권을 인정해 주겠다고 했어요.”
오늘날에도 ‘삼전도의 치욕’은 있는 것일까.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메이저 신문의 주필을 지낸 논객이 칼럼을 썼다. 트럼프는 제국주의자이고 미국 제일주의의 수령이라고 했다. 거만하고 무례하다고 했다. 그의 눈에는 반미운동 경력자를 여당 대표로 선출한 한국이 거슬릴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안보는 한번 길을 잘못 들면 되돌아 나올 수 없으니 대통령이 잘해야 한다는 취지의 권고를 했다. 미국 대통령 앞에서 ‘을 노릇’을 잘하라는 것 같았다. 내가 존경하는 원로 언론인이 있다. 그는 반대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노예근성을 없애야 해요. 무슨 일만 터지면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게 노예근성이 아니고 뭐겠어요. 이제 우리도 경제대국이고 군사대국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동해에 항공모함을 가져다 놨으면 하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그게 노예근성이죠. 북한은 소련이나 중국의 도움 없이 잘 버텨 왔어요. 미국과 맞짱을 뜨고 말이죠. 그런데 남한은 아직도 노예근성에 빠져 있어요. 이제 항공모함도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핵개발을 해서라도 맞서야 합니다.”
그의 말은 새벽닭의 울음같이 잠든 내 영혼을 깨우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게 아닐까. 당연한 건데 왜 미국이 어떻게 해주길 바랐을까. 나는 그가 말하는 것같이 노예근성에 젖어있던 건 아닐까. 6·25 전쟁 시 우리는 휴전협정에 끼지도 못했다. 평택 이남으로 남북의 경계를 삼자고 해도 그것도 몰랐다. 워싱턴에서 미국이 망신당하지 않고 빠져나갈 방법을 강구했을 때도 몰랐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던 우리 세대는 미국의 원조 밀가루를 먹고 생명을 유지했다. 미국 아이들이 입던 헌 옷을 얻어 입었다. 미국의 삼류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숭배했다. 외국군 사령부가 서울의 한복판에 있어도 의문을 가진 적이 없다. 그런 의식들이 노예근성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생각일까. 아니면 노예들은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것일까.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