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체인 메가박스(사진)의 매각에 대해 증권가에선 오리온그룹의 건설업 진출을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
지난 7월 18일 오리온그룹 계열사인 미디어플렉스가 극장체인인 메가박스 지분 1455억 원어치를 전량 매도했다는 소식이 증권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인수 주체는 호주계 투자은행인 맥쿼리의 한국계열펀드인 ‘코리아 멀티플렉스 인베스트먼트(KMIC)’. 여기에는 한국의 행정공제회 자금도 700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메가박스의 매각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매각설은 오래전부터 충무로에 떠돌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만 메가박스가 지난해 매출 1091억 원과 순이익 87억 4084만 원을 거두는 등 미디어플렉스 투자 배급사업의 노른자위였기에 매각 배경에 대해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디어플렉스 측은 “산업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 역량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극장의 운영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신 안정적인 콘텐츠 생산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얘기. 미디어플렉스 측은 “지난해 11월 설립한 제작사 ‘모션101’을 통해 제작기능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영화계는 매각자금을 콘텐츠 제작자금으로 쓰겠다는 미디어플렉스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그보다는 국내 영화산업의 침체로 어려움에 시달리는 회사의 속사정 때문이 아니냐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미디어플렉스는 지난해와 달리 올 1분기에만 30억 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고 메가박스는 업계 라이벌 CGV·롯데시네마와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런 상황 때문에 재계와 영화계는 이번 메가박스의 매각이 미디어플렉스가 영화산업에서 손을 떼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다.
이에 관해 미디어플렉스 측은 한마디로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그 증거로 <적벽대전>의 투자 및 판권·배급계약 체결, 20세기폭스코리아와 투자 의향서 교환, <디 워>의 국내배급 등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든다.
미디어플렉스는 “국내 시장의 파이가 적고 부가판권이 죽은 상황에서 수익구조가 유리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글로벌 콘텐츠 투자를 위해서도 메가박스 매각은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메가박스를 인수한 KMIC의 목적이 베일에 싸여 있어 향후 국내 영화산업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와 생면부지인 호주계 은행자본이 국내에 별도 법인을 설립하면서까지 극장업에 진출한 목적을 알 수 없다는 것. 결국엔 영화산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회사에 되팔 것이라는 게 영화계의 중론이다. 특히 SKT, KT와 같은 통신자본이나 할리우드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해외자본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영화산업에 진출해 있는 다른 대기업들은 통신자본에 주목한다. 이들은 “가입자 늘리기 경쟁이 한계에 달하면서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아내야 하는 통신업체들에게 영화는 매력적인 콘텐츠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한마디로 통신업체에게는 영화가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잖아도 통신자본은 그 전부터 영화산업에 뛰어들 태세를 갖추면서 질서개편을 예고해 왔다. 올 초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사로 평가받는 IHQ를 인수한 SKT는 내년 상반기쯤 배급업에 진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KT 역시 계열사인 영화제작사 싸이더스FNH를 통해 배급업 진출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 ||
영화계는 폭스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메가박스 매각설이 등장할 때마다 당사자로 언급이 됐고 곧 <상사부일체>로 배급업에도 뛰어드는 등 폭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현재 폭스는 메가박스 매입설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한국시장에 직배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 메가박스 매입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요지다. 최근 중국에 진출한 메가박스를 이용,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추측에 대해서도 ‘마케팅 노하우가 출중한 할리우드 직배사가 굳이 한국을 우회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입장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폭스의 국내 진출이 영화관 확보 차원이 아닌 방송 미디어 쪽으로도 확대되고 오리온과 더 큰 딜이 남아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성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력 유선방송SO 매각전에 맥쿼리가 낀 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메가박스 매각이 미디어플렉스의 건설업 진출을 위한 포석이라는 독특한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대신증권은 최근 “미디어플렉스가 전망이 불투명한 영화상영 사업을 접고 새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자금 마련 목적으로 메가박스를 매각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정기 대신증권 연구원은 “오리온은 지난해 건설사 메가마크를 설립하고 건설업 확대를 모색 중”이라며 “메가박스 매각은 오리온그룹의 본격적인 건설업 진출을 위한 자금 확보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메가마크는 그룹 내 건설 물량을 전담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레저, 부동산 개발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미 서울 용산 오리온그룹 본사와 계열사인 롸이즈온의 서울 도곡동 부지개발에 착수했다.
이 연구원은 건설 자회사 메가마크가 미디어플렉스에 흡수합병돼 우회상장하는 과정을 거친 뒤 그룹의 건설업과 투자업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메가박스 매각으로 미디어플렉스는 오리온의 자회사 중 유일하게 대규모 현금을 확보해 메가마크 직상장에 따른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 미디어플렉스의 영화콘텐츠 사업은 온미디어로 양도될 것으로 예상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메가박스 매각을 오리온그룹의 지배체제 변화 가능성과도 연결 짓는다. 담철곤 회장·이화경 사장 부부의 쌍두마차 체제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 이화경 사장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아예 담 회장 일인체제로 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현재 담 회장은 그룹 총괄, 이 사장은 외식·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한다. 그러나 이번 메가박스 매각을 계기로 엔터테인먼트 사업 비중이 축소되면서 담 회장 쪽으로 균형추가 기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건설업이 오리온그룹의 주력 사업 중 하나로 떠오를 경우 ‘자매그룹’인 동양그룹이 최근 한일합섬과 신일을 인수하면서 건설사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래저래 오리온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목받고 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