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가가 운영하는 우체국보험에 대한 계약자들의 불만이 늘고 있다. 보험소비자연맹도 “우체국보험에 대한 제3기관의 감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우체국.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최근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체국 예금·보험 이용 고객 응답자의 65.7%가 그 이유를 ‘안전성’이라고 꼽았다. 두 번째는 지리적 편의성(21.2%)이었고 수익성(9.3%)이나 서비스의 다양성(3.8%)은 한참 뒤로 밀렸다. 국가기관이 보증해 절대 떼일 염려가 없고 어디에나 있어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게 우체국 금융을 이용하는 이유인 셈.
하지만 우체국 보험의 경우 사고로 보험금을 타야 할 때 그 ‘믿음’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보험소비자연맹(보소연·회장 유비룡)은 우체국보험에 대해 “우체국은 행정기관으로 금융기관감독법이나 소비자기본법에서 제외되어 민원이 발생해도 외부기관에 민원을 제기하지 못해 많은 불만을 사고 있다”고 밝혔다. 우체국보험에 대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은 민원을 발생시킨 정통부 우정사업본부뿐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보소연은 “우체국보험 계약자 보호를 위한 제3기관 감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체국보험은 국가가 운영해 소비자들에게 국민을 위한 보험으로 인식되어 있다. 게다가 정부의 보호 아래 인건비 등에서 민영보험사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영업을 해 그 정도를 대형 민영보험사에 필적할 규모로 키웠다. 지난해 우체국보험 수입 보험료는 5조 4622억 원. 대한생명(7조 6764억 원)의 71%, 교보생명(7조 2324억 원)의 76% 수준이었다.
보험 판매는 깨알 같은 약관을 상세히 설명하고 올바르게 고지해야 한다. 때문에 민영 보험사는 전문 보험설계사를 양성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하지만 우체국보험은 대부분 전문지식이 부족한 창구직원이 부수업무로 판매하고 있어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보소연의 주장이다.
전남에 사는 정 아무개 씨(여)는 사고로 왼쪽 무릎을 다쳐 입원 중에 우체국 보험관리사로부터 보험가입 권유를 받았다. 정 씨는 “입원 중이라 가입할 수 없지 않느냐”고 문의했으나 문제의 보험관리사는 “정부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보험사보다 가입이 쉽다”면서 입원 중인 상태를 고지하지 않고 가입시켰다. 정 씨는 가입 후 사고로 다른 쪽 다리를 다쳐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고지의무 위반이라며 계약해지와 함께 보험금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정 씨로선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민원이 발생해도 우체국보험은 금융감독원에서도 소비자보호원에서도 접수하지 않는다. 결국 우정사업본부 자체에서 스스로 판단 및 처리될 수밖에 없는 구조. 지급심사 담당자가 한 번 결정하면 이의를 제기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 보소연의 주장이다.
보소연은 “우정사업본부 내에 우체국보험분쟁조정위원회가 있으나 담당자의 판단에 의해 심의조정 실익이 없다든가, 분쟁조정대상에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 분쟁조정위에 상정될 수 없어 칼자루는 여전히 심사담당자가 쥐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소송 이외에는 답이 없는 셈인데 우체국보험은 4000만 원 이하의 소액보험이라 서민들이 주로 애용하는데 소송까지 가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 씨의 경우도 가입 당시 고지상황을 심사담당자에게 설명했으나 “우체국은 책임이 없으니 보험관리사를 개별적으로 경찰서에 고발하든지 법대로 하라”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만약 정 씨가 든 보험이 민영 보험회사의 상품이었다면 보험설계사의 과실이 중대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 한다.
우체국보험은 민영 보험회사라면 당연히 지급하는 보험금 지급도 거절했다. 충남의 한 아무개 씨(여)는 음식을 먹다 음식물에 섞여있는 뼈에 의해 치아가 깨져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음식물에 섞인 것은 이물질이 아니므로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며 보험금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우체국보험의 맹점은 또 있다. 조연행 보소연 사무국장은 “우체국보험은 전문 개발인력이 부족해 민영보험사 약관을 얻어다 베낀다. 금융당국의 관리감독도 안 받다 보니 질병 변화 등 트렌드를 못 따라간다”고 말했다. 보소연 측은 실례로 부천에 사는 정 아무개 씨(남)의 경우를 들었다.
정 씨는 아기를 욕실에서 안고 나오다가 허리를 삐끗한 후 추간반탈출증이 발생하여 우체국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우체국은 “경미한 데다 추간반탈출증은 질병”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보소연은 민영 보험사에서는 추간반탈출증의 경우 의학적으로 질병으로 분류되나 외부의 충격에 의해 상태가 악화되어 표면화될 경우 그 사고 기여도를 인정하여 보험 처리해 주고 있는 질환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보소연의 주장과 사례들에 대해 우정사업본부 보험사업팀 관계자는 “사람마다 상반된 의견이 있을 수는 있다”라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보험 개발과 판매의 전문성 부족 부분은 “우편과 금융 창구 업무 영역이 따로 있고 보험 개발은 민영보험사를 바로바로 벤치마킹한다. 전문성 부족 주장은 지나치다”고 밝혔다.
다음은 민원 처리 부분. 이 관계자에 따르면 우체국보험은 보험금지급 청구→부지급→민원→본부 전담부서 재심의→본부분쟁조정위원회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민원이 발생하면 100% 올려준다. 또한 분쟁조정위원회는 보험학 전공 교수 의사 소비자단체 관계자 등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돼 판단한다”고 반박했다.
제3기관의 감독과 민영 보험사에서는 보장·지급하는 사고에 대해 부지급 결정을 내린 부분에 대해서는 “우정사업본부는 감사원 감사를 받는다. 이번에도 몇 개월간 받았다. 공무원이니까 될 수 있으면 보험금을 지급하려 하지만 자칫 감사에 걸려 담당자 신상에까지 문제가 된다. 약관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서 “오히려 민영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은 이미지 관리를 위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