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사가 발행어음 인가를 받으면 자사 신용으로 만기 1년 미만의 단기 금융상품 판매할 수 있다. 자기자본의 2배까지 운용이 가능해 증권사의 외연 확장에 긍정적이다. 금리가 시중 금리보다 다소 높게 책정되기 때문에 발행어음은 시장의 수요가 높다. 증권사는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기업금융, 프로젝트파이낸싱 등에 투입한다.
현재 발행어음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KB증권 등 4개사다. 한국투자증권은 상반기 말 기준 17조 9724억원 규모의 발행어음을 운용하고 있다. 같은 기간 KB증권은 발행어음 운용 규모를 10조 5222억 원이다. 한 해 전보다 8.7% 늘어난 수치다. NH투자증권은 7조 8658억 원, 미래에셋증권은 8조 306억 원을 각각 운용하고 있다.
정부는 발행어음 사업을 영위하는 증권사를 늘려 모험자본에 대한 투자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발행어음 인가 절차는 금융위의 권한이지만 심사는 금감원이 위탁받아 진행한다. 이번 발행어음 심사는 8월 금감원이 키움증권을 제외한 4개사에 대한 심사중지를 요청하면서 논란이 됐다. 심사 중지 배경은 사법 리스크와 내부 통제 이슈 때문으로 알려졌다.
신청 증권사 가운데 기업 규모가 가장 큰 삼성증권와 메리츠증권은 내부통제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금감원은 삼성증권 등 증권사를 대상으로 거점 점포 PB 영업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징계 수위를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이 지점수를 줄이면서 거점 점포를 늘리는 현상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고액 자산가의 자금이 거점 점포로 향하면서 내부통제 사각지대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삼성증권의 경우 이미 지난해 자체 조사를 통해 내부통제 기준을 어긴 PB에 대한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금감원은 조사 과정에서 메리츠증권의 거점 점포에 대한 조사도 확대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거점 점포 조사 외에도 2023년 이화전기의 주식거래가 정지되기 전 BW(신수인수권부사채)를 행사하면서 미공개 정보 이용 거래 의혹이 있다. 이 때문에 검찰 당국은 메리츠증권을 압수수색했고, 관련 임직원에 대한 수사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증권의 경우 최대주주인 하나금융지주 함영주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걸려있다. 함영주 회장은 2015~2016년 신입채용 과정에서 부당하게 개입한 채용비리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023년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햇수로 3년째 대법원에서 법리다툼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 입장에서 함영주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행어음 인가를 내주기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지난해 10월 신한투자증권의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부서 임직원들이 파생상품 거래에서 발생한 약 1300억 원의 대규모 손실을 은폐하려다 적발됐다. 이 사건으로 관련 임직원은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당시 대표이사였던 김상태 대표이사가 사임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의 징계절차는 진행 중인 상황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해 김건희 여사 집사게이트 의혹이 있는 IMS모빌리티의 상장 주관사로 선정돼 기업 가치를 2000억 원으로 평가해 고평가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IMS모빌리티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키움증권은 10억 원을 IMS모빌리티에 투자했다. 특히 금감원이 심사 제외 증권사 명단에 키움증권을 제외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 수사에 따라 기소되면 자연스럽게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금감원이 따로 심사 중단 증권사 명단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발행어음 신청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의 인가 심사에 이들 회사의 리스크가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금감원의 심사 중단 요청에 금융위는 재개를 명령했다.
발행어음 인가 신청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위가 심사 재개를 명령한 것은 회사의 리스크를 검토한 뒤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서 “정부가 모험 자본 투자 확대를 기대하는 만큼 금융당국도 이 점을 중점적으로 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금융당국 사정에 정통한 한 또 다른 인사는 “금융위가 금감원의 요청으로 심사를 중단하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면서 “일단 금감원의 평가를 전제로 최종 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금융위 입장에서는 미인가에 따른 후폭풍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 증권사가 가지고 있는 리스크가 심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위가 발행어음 심사 재개 명령을 내리면서 일단 심사는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잡음은 지속되고 있다. ‘조선비즈’ 보도에 따르면 금감원이 다시 발행어음 심사 중단 요청을 금융위 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발행어음 심사 과정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