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예식장 전 사장 살인사건’의 전말이 전혀 다르다는 문서가 떠돌면서 전주시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
양심선언문일까. 단순한 괴문서일까. 문서 하나가 전주시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문서는 2012년 5월경에 발생했던 ‘전주 예식장 전 사장 살인사건’을 다시 언급하며, 사건의 전말이 이제껏 밝혀진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문서의 진위 여부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는 가운데, 문서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진 것인지 깊숙이 들여다봤다.
전주 예식장 전 사장 살인사건은 전주시에 위치한 A 예식장 사장 고 아무개 씨(45)가 조직폭력배와 아들을 동원해 채권자 정 아무개 씨(55)와 윤 아무개 씨(44)를 납치하고 살해한 사건이다. 예식장이 경매로 넘어가고 빚에 시달렸던 고 씨는 두 채권자가 숨진 뒤, 곧바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고 씨와 정 씨, 윤 씨의 시신은 전북 완주군 상관면 국도 갓길에 세워진 1톤짜리 냉동 탑차에서 발견됐다. 고 씨는 운전석에, 두 채권자는 손발이 묶인 채 화물칸에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다.
사건은 전주시에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법원은 2012년 11월 28일 최종 판결을 내렸다.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의 갈등’이 사건의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전주지법 제1형사부는 고 씨를 도운 조직폭력배 황 아무개 씨(38) 등 4명에 대해 징역 1년 6월에서 3년, 가담 정도가 덜한 김 아무개 씨(22) 등 2명에게는 집행유예와 벌금을 각각 선고했다.
법원 판결 후 한동안 잠잠했던 사건은 지난 7일 한 문서가 유포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문서가 공개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고 씨의 죽음 뒤에는 A 예식장을 운영하는 B 법인의 대표이사인 오 아무개 씨, B 법인의 대주주 홍 아무개 씨, A 예식장의 현 사장 강 아무개 씨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서는 전북지방경찰청과 전주시청, 각 관공서 출입기자들에게 메일로 발송됐다. 특이한 것은 메일을 보낸 사람이 현 대표이사인 오 씨로 적혀져 있다는 것이었다.
문서는 고 씨의 죽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오 씨가 숨겨진 사건 전말을 말하고 반성을 구하는 등의 ‘양심선언문’ 형태로 작성됐다.
문서에 적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당시 사장이었던 고 씨는 예식장의 일부 시설을 잘못 신고해 건축법 위반으로 검찰에 쫓기고 있던 신분이었다. 고 씨는 부인 민 아무개 씨에게 예식장 운영을 맡기고 도망을 다녔다고 한다. 이 와중에 오 씨는 2007년 죽마고우인 홍 씨의 요청으로 A 예식장의 대표가 됐다.
고 씨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서 오 씨와 홍 씨, 민 씨 세 사람은 매우 가까워졌고, 결국 고 씨를 제거하고 시가 400억 원에 달하는 예식장을 차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문서에서는 “지난 3년에 걸친 민 씨와 홍 씨의 치밀한 계획 속에 고 씨가 돈 10억 원 때문에 두 명의 남자를 죽이고 본인도 자살했다는 각본을 수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히고 있다.
문서의 내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서는 변호사 출신인 홍 씨가 수사를 담당했던 A 전 수사과장에게 고액을 주어 사건을 간단히 종결시켰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다. 문서에 따르면 “퇴직금보다 더 큰 액수에 매료된 수사과장은 아주 쉽게 저희들의 살해 각본대로 움직여 주었다. 수사과장과 연루된 폭력배를 매수하는 데 98억 원이 들었다”고 적혀져 있다.
또한 문서는 현 예식장 사장을 맡고 있는 강 씨의 신분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문서는 “전라북도청 공보관으로 근무했던 강 씨가 2010년 뇌물수수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직장을 잃게 되자 고 씨가 살아생전 친분이 돈독했던 A 도지사에게 청탁해 강 씨를 바지사장으로 고용했던 것뿐”이라며 “고 씨 살해 뒤 강 씨는 진짜 사장으로 군림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문서에 등장하는 인물인 오 씨와 홍 씨, 강 씨는 문서의 내용이 모두 거짓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문서의 작성자로 명시된 오 씨는 “문서를 작성한 사실도 없고 명의가 도용당했다”며 “문서의 내용은 모두 거짓이다. 이런 일을 당하니 피가 마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강 씨 또한 “문서의 팩트를 따져보면 엉터리가 많다. 오 씨 본인이 쓴 것이라면 본인이 나온 학교를 잘 못 쓸 리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문서에서는 오 씨가 “전북대 건축과를 나와 조그만 건축사무실을 운영해왔던 제가 갑자기 무슨 돈이 있어서 400억에 상당하는 그 예식장의 주인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라는 부분이 나온다. 하지만 오 씨는 원광대를 졸업했다고 한다. 강 씨는 “나는 뇌물수수죄가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이곳도 초빙돼서 온 것이지 도지사의 추천은 받아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문서를 작성하고 메일을 보낸 것일까. 강 씨와 홍 씨는 일제히 고 씨의 부친인 고 아무개 씨(77)를 지목했다. 아들을 잃은 고 씨가 이후에도 예식장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해 왔다는 것. 강 씨는 “평소 고 씨가 주장한 내용과 문서의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며 “메일이 발송되기 며칠 전 고 씨가 오 씨를 만나고 간 것으로 안다. 고 씨는 2000만 원을 요구하며 이를 주지 않는다면 이메일을 젊은 층에 보내어 다 알리겠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고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메일을 보낼 줄도 모르고 컴맹이다. 이번 사건도 기사로 접해서 알았다”고 부인하면서도 “오 씨를 지난해 12월에 만나기는 했다. 예식장과 관련해 고소고발을 하지 말라며 돈 2000만 원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이전에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현재 오 씨 등 세 명은 고 씨와 고 씨를 도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원불상자 2명을 사전자기록위작 및 동행사,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경찰 측 관계자는 “전주 예식장 살인사건은 수사가 종결된 관계로 문서의 내용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 문서를 누가 쓰고 배포했는지에 수사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정환 프리랜서 kulkin85@ilyo.co.kr
“그들은 악마” 채권자 죽이고 유서
A 예식장은 전주에서 가장 큰 예식장 중 하나로 꼽힌다. A 예식장은 고 씨가 2005년 군산의 한 저축은행에서 자금을 끌어와 만들었다고 한다. 고 씨는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지인들에게도 돈을 많이 빌렸다.
예식장을 어느 정도 성공시킨 고 씨는 전북 일대에 아파트에 투자했으나 부동산 경기 침체로 빚을 많이 졌다고 한다. 이후 전북의 한 신용금고에서 대출을 받았으나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예식장은 부도가 났고, 2007년에 경매로 넘어가게 된다. 예식장의 현 대표인 오 씨와 대주주인 홍 씨는 2010년에 예식장을 낙찰 받아서 운영을 시작했다.
한편 이 시기 고 씨는 돈을 빌린 지인들의 압박으로 도망을 다니기 시작했다. 고 씨는 채권자들에게 폭행과 납치, 감금을 당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참지 못한 고 씨는 2012년 4월, 조직 폭력배를 동원해 두 명의 채권자를 유인, 전기충격기로 쓰러뜨린 뒤 냉동 탑차에 싣고 다녔다. 사건 발생 13일 만에 채권자와 함께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고 씨의 유서에는 “죽는 마당에 무엇을 거짓말 하겠습니까. 정 씨와 윤 씨는 악마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박정환 프리랜서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