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조현 외교부 장관을 향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재명 대통령을) 양자 방문하고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라호텔 예약을 취소시켰다”면서 “중국이 양자 방문을 하려다 지금은 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이 바뀐 것 같다”고 질의했다.
조현 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양자 방문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면서 “양자 방문을 꼭 서울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조 장관은 “다만 공식 발표는 그 나라(중국)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양자 방문을 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또 다른 질의에서 조 장관은 “타국 정상들의 일정을 확인하는 말씀을 드릴 수는 없다”면서도 “한미 정상회담은 물론, 한중 정상회담, 미중 정상회담 모두 경주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소식통은 “신라호텔 예약 취소 해프닝은 국빈 방문을 추진하던 중국의 스탠스가 바뀌었다는 점을 시사할 수 있다”면서 “방한에 따른 외교적 무게감을 중국이 스스로 덜어낸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중국 현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장쩌민 전 국가주석 시기부터 중국 정상들이 한국에 국빈 방문을 할 때엔 신라호텔에 숙박했다”면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뿐 아니라 시진핑 주석도 2014년 한국을 찾았을 때 신라호텔에 머물렀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 패권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이 한국에서 최고 호텔로 손꼽히는 신라호텔에 머무르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차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면서 “호텔 이름이 ‘신라’이다 보니 역사적으로 ‘나당 연합’을 회자하며 한중 우호 스탠스를 취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995년 장쩌민 전 주석은 방한 당시 신라호텔을 이용했다. 그 뒤부터 중국 정상들이 한국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신라호텔에 머물렀다. 주한 중국대사관도 신라호텔 VIP고객으로 꼽힌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2005년부터 해마다 신라호텔 대연회장에서 중국 국경절(건국기념일) 행사를 개최해 왔다.
시진핑 주석 방한과 맞물린 신라호텔 ‘통대관 문의’는 사실상 국빈 방문 전조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국 측이 문의를 취소하면서 국빈 방문 대신 APEC 정상회의 참석 격 방한으로 의미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신라호텔 측이 결혼식 예약 고객 등에게 예약 취소를 통보했던 시기는 9월 24일이다. 신라호텔은 “국가 행사로 부득이 예식 일정이 조정된 고객분들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중국 측이 문의를 취소한 시점은 9월 29일경이다. 그 이면에 북한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 시점 때문이다. 통대관 문의 취소 하루 전인 9월 28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중국 베이징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했다. 신라호텔 통대관 문의 취소가 북중 외교수장 회담과 맞물려 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선희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의 한국 국빈 방문에 대한 우려를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표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중국 80주년 전승절 행사를 계기로 북중이 우호 관계를 부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외교적 무게추를 북한에 더 두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행보가 중국 측 ‘신라호텔 통대관 문의 취소’였던 셈”이라고 했다.
일련의 과정이 주목받은 배경엔 또 다른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APEC 정상회의에 앞서 서울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취재에 따르면, 서울 미중 정상회담 개최 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랜드하얏트 호텔에 머무르고, 시진핑 주석이 신라호텔에 머무르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힐튼경주호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코오롱호텔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서울과 경주에서 트럼프 대통령 투숙 가능성이 점쳐졌던 호텔은 미국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의 외교가 소식통은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엔 주로 하얏트나 힐튼 등 미국계 호텔에 투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주한 미군기지에서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미국계 호텔이나 주한미군 기지에서 투숙하는 것 자체가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2년과 2014년 방문 때 오산 미군기지에 머물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하얏트호텔에 투숙한 바 있다. 중국 측이 신라호텔 통대관 문의를 했을 시기 그랜드하얏트 호텔의 객실 예약이 전격 중단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외교가 소식통은 “APEC 정상회의에 따른 동시 방문을 계기로 물밑 ‘숙박 외교전’이 벌어졌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근 미중 관세전쟁 관련 관심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줄다리기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