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 검찰은 그가 론스타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재경부에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
지난 10월 1일 오전 10시 서울지방법원 511호 법정. 이른바 ‘론스타 게이트’ 관련 사건 중 하나인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공판이 열리고 있었다.
이날의 핵심 피고는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였다. 유 대표는 2003년 11월 외환카드 감자설을 유포해 주가를 하락시킨 뒤 226억 원 상당의 주식매수 청구권 대금 지급을 회피하고 177억 원 상당의 지분율을 높인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 검찰은 법무법인 김&장 측의 인사를 증인석에 앉히고 다섯 명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문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장은 외환은행이 론스타 펀드와의 인수계약이 외자유치라고 사실을 호도하는 홍보를 하였는가” “그 홍보는 외환카드 합병과 관련이 있는 ㅂ 변호사(변양호 재경부 국장 고교동창), ㄱ 변호사, ㅊ 변호사가 주도했는가” 등 검사의 특별할 것 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증인은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심문이 지루해져 갈 때쯤, 검찰 측에서 ‘선수교체’를 단행했다. 두 번째로 나온 검사는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핵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서류는 2003년 6월 23일 론스타가 스티븐 리에게 이메일로 보낸 별도의 계약서 사본입니다. 이것을 아십니까. 이 이메일의 형식은 김&장의 서류양식이 아닌가요?”
증인은 자료를 들여다본 뒤 “서류형식은 맞는데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검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외환은행 인수 같은 큰 계약에는 70~80명의 변호사를 동원하여 일을 하고도 200만 달러 정도를 수임료로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김&장이 론스타에 요구한 금액은 350만 달러에 이릅니다. 어떤 법률 서비스 때문에 이렇게 고가입니까. 이것은 시간당 수당이 아니라 성공보수를 요구한 것이 아닌가요? 그것은 은행법상 금지하는 사모펀드가 은행인수를 하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요구한 금액이 아닙니까.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 등 행정당국에 론스타의 인수자격 허가를 얻기 위한 대가가 아닙니까. 즉, 로비….”
증인이 황급히 검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의 목소리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닙니다. 로비가 아닙니다. 행정당국이 요구하는 여러 가지 법률자문에 응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인수자격에 대한 의견서 작성 작업은 까다롭습니다.”
검사는 개의치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이 건은 김&장이 먼저 요구한 계약이 아닙니까.”
증인은 다시 “모른다”고 대답했다.
곧이어 검사의 입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발언이 나왔다. 검사는 증인에게 서류를 들이밀며 “론스타의 스티븐 리가 제프리 존스에게 그 금액을 낮추어 200만 달러로 역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서류를 아십니까. 또, 다시 ‘제프리 존스’가 250만 달러로 수정한 금액을 요구한 답변을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이것도 김&장 서류가 아닙니까.”
순간 법정이 술렁거렸다. 제프리 존스라니, 설마 ‘그 제프리 존스?’방청객들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검사가 확인 심문을 했다.
“여기서 제프리 존스란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입니까.”
“그렇습니다.”
검사가 “제프리 존스는 한국에서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묻자 김&장 관계자는 “변호가 업무가 아니라 김&장 파트너의 보조업무였다”면서 “문제될 게 없다”고 답변했다. 검사가 다시 “파트너가 누구냐”고 묻자 증인은 “전 주미대사 ㅎ 씨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검사는 이어 “이메일에는 ‘재경부가 타깃이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고 2003년 7월 8일자로 피고 유회원이 증인과 제프리 존스, 스티븐 리에게 보낸 메일에는 정확히 ‘로비’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재경부를 상대로 로비를 한 것에 대한 대가가 250만 달러 아닙니까”라고 다그쳤다. 물론 증인은 이를 부인했다.
이날의 검사의 심문은 재경부와 김&장의 ‘커넥션’ 의혹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작심한 듯 ‘로비’와 ‘청탁’ 등의 강도 높은 단어를 꺼냈다. 그리고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 2003년 론스타 펀드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의혹을 검찰 스스로가 제기했다.
검찰이 제기한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은 “2003년 6월 15일, 골프장에서 당시 김진표 경제부총리에게 제프리 존스가 론스타의 스티븐 리를 위해 청탁을 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했다. 그리고 “재경부를 상대로 한 로비의 한 축이 김&장이고, 제프리 존스가 아닌가”라고도 했다. 이에 관해 제프리 존스 측은 “노 코멘트”라는 입장이다.
론스타는 ‘제프리 존스 장학회’의 공식 후원사다. 제프리 존스는 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김&장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사실관계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이런 정황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론스타 재판은 물론이고 외환은행 매각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