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섭 KT 대표는 지난 11월 4일 열린 이사회에서 차기 KT 대표이사 공개모집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근 불거진 서버 침해와 무단 소액결제 사고에 대한 경영책임을 지고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다. 앞서 김영섭 대표는 10월 2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경영의 총체적 책임은 CEO에게 있다. 여러 사고도 생기고 해서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공식 임기는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까지다.
KT에 따르면 이날 대표이사 후보군 구성 방안 논의를 시작으로,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공식 개시했다고 밝혔다. 사외이사 전원(8명)으로 구성된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연내 대표이사 후보 1인 선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외부 전문기관 추천 △공개 모집 △주주 추천(전체 주식의 0.5% 이상 6개월 이상 보유 주주) △관련 규정에 따른 사내 후보로 대표이사 후보군을 구성할 예정이다.
KT가 새 CEO를 물색해야 하는 상황인 가운데, 안팎에서는 정치권이나 정부의 ‘낙하산’ 대표가 더 이상 선임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KT 제1노동조합인 KT노동조합 관계자는 “국가통신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공기업 성격을 지니고 있는 KT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AI 트렌드에 맞는 CEO가 필요하다”며 “KT노조의 구체적인 입장은 추후 발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KT 제2노동조합인 KT새노조도 11월 4일 성명서를 내고 “해킹 사태에 대한 철저한 수습과, KT의 재도약을 이끌 새로운 CEO 선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며 “새로운 CEO를 뽑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ICT 전문성이며, 정권 낙하산 인사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사회가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KT는 CEO 선임 과정에서 여러 차례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석채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KT 회장으로 임명되면서 ‘정권 코드 인사’ 비판이 제기됐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황창규 전 회장은 반도체 전문가라는 평을 받았지만, 이와 무관한 통신업계의 수장으로 선임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김영섭 대표 취임 전인 2023년 6월에는 KT 정관에 명시된 대표이사 자격요건에서 ‘정보통신 전문성’을 삭제한 후 ‘산업 전문성’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로 대체된 것을 두고 낙하산 후보를 앉히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하거나 정치권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CEO 입지가 흔들린 잔혹사도 있다. 민영화 후 첫 CEO인 이용경 전 사장은 재임 기간 중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고, 2·28 전화대란 사태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돼 대내외로부터 용퇴 압박을 받다가 연임을 포기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취임한 남중수 전 사장은 민영화 이후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자회사 KTF의 납품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이석채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불법정치자금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사퇴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임명된 황창규 전 회장은 6년 연임 임기를 마쳤지만, 문재인 정부 초기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금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구현모 전 사장은 윤석열 정부 당시 연임을 시도했지만, 정치자금법 재판 등에 발목 잡혀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차기 대표이사 선임이 지연돼 공백기를 맞이한 경우도 있었다. 구현모 대표 후보직 사퇴 이후 윤경림 당시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차기 CEO로 내정됐지만, 국민연금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 대표 선임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KT는 구현모 대표가 2023년 3월 사임한 이후 김영섭 사장이 2023년 8월 선임될 때까지 약 5개월간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됐다. 앞서 2014년에도 황창규 전 회장 취임 전 약 4개월간 CEO가 공석이었으며, 2020년대 초반에도 차기 대표이사 후보 확정이 지연된 사례가 있었다.
이와 관련, 문형남 숙명여자대학교 글로벌융합대학 학장은 “김영섭 대표 선임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외이사 8명이 변동 없이 그대로인 점은 우려사항”이라며 “이번 KT CEO 선임은 공정성과 전문성이 최우선돼야 하며, 선임 과정에서 낙하산 인사나 정치적 외압이 단 한 치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용희 선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KT 대주주들이 현재 정권에 맞는 인사가 누구일지 심도 있게 고민해볼 수도 있지만, 정보 공개나 노출이 쉽게 되는 요즘 시대에 공정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로컬 통신사에서 벗어나 최고 수준의 AI 데이터센터를 갖춘 인프라 사업자로 거듭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기술 경영 능력을 갖췄거나 대형 투자에 익숙한 CEO를 찾는 데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새 CEO를 선임할 것”이라며 “KT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에도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