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억 수원지검장·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박영빈 인천지검장 등 전국 검사장 18명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항소 포기에 이른 경위와 법리적 근거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 달라”고 집단 입장문을 제기했다(관련기사 “탄핵” vs “항명” 정면충돌…‘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 어디까지 가나).
검찰의 집단 항명에 정부여당은 대응에 나섰다. 법무부는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 관련 노만석 전 대행에게 경위 설명을 요구한 검사장 18명을 평검사로 전보 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률상 검사 직급은 검찰총장과 평검사 2개뿐이기 때문에 불이익 인사 조치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일선 검찰청을 지휘하던 검사장을 평검사로 전보하는 것은 ‘강등’으로 받아들여진다. 앞서 2007년 권태호 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 로비 사건에 연루돼 평검사로 전보된 사례가 유일하다.
법무부는 11월 19일 검사장급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대장동 항소 포기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정진우 전 서울중앙지검장 후임으로 박철우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을 낙점했다. 박철우 신임 지검장은 대장동 수사팀에 항소 재검토 의견을 전달, 항소 포기 사태의 핵심 지휘라인에 있었다.
인사를 두고 법무부가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를 둘러싼 검찰 안팎에서의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항소 포기 결정에 절차적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사권으로 흔들리는 조직 기강을 다잡겠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안으로 검찰을 압박하고 나섰다. 김병기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해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과 검찰청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검사를 파면할 수 있도록 한 검사징계법을 폐지하고, 검사도 일반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징계위 심의를 통해 파면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 국회 범여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11월 19일 집단 입장문을 낸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검찰도 행정직 공무원에 불과한데 집단항명을 하며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 김용민 의원은 “검사의 집단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질서를 훼손하는 중대범죄”라며 “국회는 앞으로도 공무원의 근본 의무를 저버린 검찰의 집단행동 및 정치행위 등을 좌시하지 않고 단호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공봉숙 서울고검 검사는 이프로스에 “업무상으로 위법 또는 부당해 보이는 상황에 대해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공무원들에게 징계, 형사처벌, 강등을 시키겠다고 한다”며 “다수 정치인이 대놓고 저런 어처구니없는 겁박을 하고, 그 겁박을 현실화할 법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눈을 부라리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친윤’ 특수부 검사들의 항명으로 보고 관망하던 일반 검사들까지 대정부 투쟁에 합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기류를 읽었는지 정부여당도 숨고르기에 나섰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1월 17일 집단 성명 검사장들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도 최근 검찰 및 사법개혁 관련해 ‘강경 메시지’를 자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아프리카·중동 순방에 나선 만큼, 집권여당으로서 대통령의 외교성과를 알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대통령 순방 때마다 민주당발 논쟁 이슈가 불거지며 외교성과가 묻혔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법무부가 집단 성명을 낸 검사장들에 대해서 ‘핀셋’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법무부는 검찰 조직의 안정성을 우선해야 한다. 큰 폭의 검사장 징계는 혼란을 가져온다”며 “항명 주동자는 검찰 내 몇 명 되지 않는다. 법무부가 이들에 대해서만 인사 및 징계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귀띔했다.
또한 최근 드러난 검찰의 여러 수사 과정에서 조작 은폐 혐의를 법무부 감찰과 상설특검 조사 등을 통해 처벌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해석도 있다.
민주당 ‘정치검찰 조작기소 대응특별위원회’는 검찰의 ‘정영학 녹취록’ 발언 조작 의혹 진상조사에 나섰다. 특위는 “정영학 측 의견서와 대장동 사건 관련자들 법정증언을 통해 검찰이 대장동 사건 수사 과정에 녹취록을 자의적으로 편집·삭제·삽입해 사실상 조작된 ‘검찰 버전 정영학 녹취록’을 만들어낸 것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특위가 언급한 사례는 두 가지다. 녹취록에서 ‘재창이형’을 ‘실장님’으로 바꿔, 이재명 대통령 측근인 정진상 전 당 정무조정실장을 사건 구조에 끼워 넣었다. 이어 ‘위례신도시’를 ‘윗 어르신들’로 왜곡해 이 대통령이 대장동 사건 정점으로 보이게 했다.
특위는 “검찰이 왜곡한 단어 하나, 문장 하나까지 그 배경과 책임자를 끝까지 추적하겠다”며 “증거 조작에 관여한 검사, 지휘라인, 묵인한 책임자까지 모두 법의 심판대 위에 서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민주당은 법무부의 감찰을 촉구했다.

관봉권 띠지 폐기 의혹은 지난해 12월 서울남부지검이 건진법사 전성배 씨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발견한 현금 1억 6500만 원 중 5000만 원의 관봉권 띠지와 스티커가 증거물 보존 과정에서 사라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며 불거졌다. 검찰이 고의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쿠팡 퇴직금 불기소 외압 사건은 지난 4월 엄희준 당시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이 쿠팡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 대해 수사 책임자인 문지석 부장검사에게 압력을 넣어 불기소하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문 부장검사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해당 의혹을 폭로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상설특검이 생긴 지 11년 동안 검찰을 수사 대상으로 한 특검은 처음이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감찰과 수사 선상에 오른 검사들 중 일부가 이번 집단 항명을 주도한 이들인 것으로 전해진다”며 “항명에 보복을 하는 게 아니다. 비위가 있으면 진상을 밝히고 그에 맞는 처분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