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부동산시장에 뜬금없이 ‘이회창’이라는 이름이 회자된다는 것 자체가 오는 대통령 선거에 대한 강남권 주민들의 높은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임달호 현도컨설팅 사장은 “강남권, 특히 강남구는 세입자와 집주인 비율이 반반 정도”라며 “세입자는 덜하겠지만 집주인 80% 이상은 6억 원 이상 고가 주택으로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각 당 대선후보의 부동산 공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강남권은 보수층이 많은 곳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그 어느 지역보다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자연스레 이 후보의 부동산 관련 대선공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후보가 지난 9월 중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울 도심 용적률을 높여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수도권 외곽에 신도시 몇 개 짓는 것보다 낫다”고 밝히자 강남권 대표적 재건축 아파트인 개포주공의 호가가 2000만∼3000만 원씩 뛰었다. 이는 이 후보가 ‘재건축 규제 완화’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 그만큼 이 후보 발언 하나하나에 강남권 부동산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반면 정동영 후보는 ‘개성동영’을 외치며 평화 이미지 만들기에 치중했기 때문에 부동산시장에서만큼은 이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모습이다.
강남구 대치동의 경우 지난해 고점 대비 90∼95% 수준에 가격이 형성돼 있지만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의 신경전만 있을 뿐 거래는 실종된 상태다. 매도자들은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값을 내리지 않고 있다. 간혹 급한 매물만 나올 뿐 매도자 대부분이 일단 대선이 끝나고 보자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매수자 역시 과거 매수자금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부동산 담보가 제한되면서 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43㎡(13평형)의 경우 지난해 8억 5000만 원까지 호가되던 것이 7억 8000만∼8억 원 선에 시세가 형성돼 있고 대치동 은마아파트 역시 112㎡(34평형)는 11억 8000만∼12억 8000만 원에 시세가 형성돼 지난해 고점인 14억 원보다 2억 원 가까이 하락했다.
개포주공 1단지에 위치한 우정공인 김상열 사장은 “부동산 거래가 자취를 감췄음에도 시세가 이 정도라도 유지되는 것은 대선이슈 때문”이라며 “특히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를 기대하며 일부 재건축 단지는 대선 이후로 사업을 미루자는 움직임도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대감은 일반 아파트 단지에서도 나타난다.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 및 양도세 완화에 대해 이명박·정동영 후보 모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내 성창공인 관계자는 “은마아파트를 팔아 세금 다 내고 융자 갚으면 분당 아파트 하나 못 산다”면서 “기존 매도 의사를 밝힌 사람들도 웬만큼 급하지 않고는 대선 이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초·송파·강동권 역시 고가 아파트가 많아 대선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물론 지역마다 관심사는 조금씩 다르다. 재개발이 이미 진행돼 입주가 한창인 송파구 잠실주공은 용적률 완화보다는 1가구 1주택 종부세 및 양도세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큰 반면, 지난 9월 재건축 심의를 통과한 가락시영은 용적률 완화에 적잖은 기대감을 걸고 있다. 물론 두 지역 역시 거래는 거의 없는 가운데 가격은 ‘입주’와 ‘심의통과’라는 호재에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강동지역도 마찬가지다. 둔촌주공 내 롯데부동산 김대기 사장은 “대선 이후 부동산 정책 완화를 기대는 하지만 담보대출을 워낙 세게 묶어 놓아서 매수세가 거의 없는 상태”라며 “가격이 약세를 보이면서 한두 건씩 거래될 뿐”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높지만 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가격 급등은 없을 것이라는 게 강남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강남 선경아파트 인근 한 중개업소 사장은 “만약 이 후보가 당선되면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로 단기간 급등할 수 있겠지만 이 후보가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가격이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동 고덕주공 2단지 내 한 중개업소 사장 역시 “공급만 생각하면 규제를 당장 푸는 게 맞지만 국민적 정서가 있는데 법을 쉽게 바꿀 수 있겠느냐”면서 “지역 주민 역시 대선 이후를 기대하면서도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