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증시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1월 2일 2400.87로 장을 시작한 코스피는 첫날부터 하락세를 보이며 2398.94로 마감했다. 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소추로 이어진 헌정사상 초유의 정국 혼란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며 투자 심리를 급격히 냉각시켰다. 박스권에서 머물던 코스피 지수는 4월 9일 장중 심리적 지지선인 2300마저 내주며 연중 최저점(2293.70)까지 내려앉았다.
반등의 서막을 만든 변곡점은 ‘정치적 불확실성의 해소’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월 저점 이후 한동안 2600선 박스권에 갇혀 있던 코스피 지수는 6월 4일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정국 혼란이 수습 국면에 접어들면서 6월 20일 단숨에 3000선을 회복했다. 계엄 및 탄핵 리스크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해소됐고, 새 정부가 ‘코스피 5000’을 국정목표로 제시하고 실질적인 부양책을 가동한 것이 투자심리를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4월 저점 이후 7월까지 이어진 ‘1차 랠리’는 실적보다 정책 기대감이 시장을 주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스피는 이 기간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7월에 3200선까지 올라섰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 기간 코스피 상장사들의 EPS(주당순이익)보다 PER(주가수익비율)이 더 빠르게 상승했는데, 이는 기업 이익 증가보다 정책 기대감에 따른 밸류에이션 재평가가 지수를 견인했다는 방증”이라며 “기업 실적의 뚜렷한 변화가 없었음에도 새 정부의 강력한 자본시장 활성화 의지와 유동성 공급이 투자 심리를 자극해 시장의 기대를 끌어 올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7월 들어 상승세는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이 시장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실망감 속에 잠시 주춤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9월 중순 대주주 양도세 기준을 당초 10억 원으로 강화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현행 50억 원 유지를 확정하며 한 발 물러섰다. 또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역시 당초 거론되던 최고세율 35% 안에서 한발 물러나 시장 친화적인 방향으로 논의가 급선회하면서, 규제 완화 기대감이 되살아난 지수는 다시 우상향 궤도에 진입했다.
여기에 ‘매크로 환경 변화’도 투심에 영향을 미쳤다. 상반기 내내 시장을 위축시킨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 관세 50%’ 예고였다. 이에 대해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탄핵 심판(4월 4일) 직후인 4월 9일까지 지수가 바닥을 친 것은 트럼프발 악재의 영향이 컸다”며 “상반기 트럼프 리스크가 막연한 공포였다면, 하반기 들어서는 실제 정책 윤곽이 드러나고 한미 통상 협력이 예상보다 원만하게 이뤄지면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진단했다. 리스크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지만, 예측 가능한 범주 내로 들어왔고 우려했던 수출 실적 또한 견조한 흐름을 보이면서 시장 안정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하반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하 기조가 본격화된 점 역시 증시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긴축 종료와 함께 거시경제 여건이 개선되면서 신흥국 시장인 한국으로의 외국인 자금 유입을 가속화했다.
주가 부양책과 우호적인 매크로 환경이 증시 반등의 토대를 닦았다면, 이를 폭발적인 상승세로 이끈 올해 하반기 핵심 동력은 ‘AI·반도체’였다. 상반기 상승세가 주로 정책 변화에 따른 막연한 기대감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9월부터 시작된 ‘2차 랠리’는 기업들의 실적이 주도하는 ‘실적 장세’로의 전환이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AI 붐을 타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장주가 역대급 실적을 달성하며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9월 10일 3344였던 코스피는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10월 27일 사상 최초로 ‘4000선’을 돌파했고 이어 11월 3일에는 4221.67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새 역사를 썼다.
다만 11월 이후부터는 숨고르기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시장 일각에서 제기된 AI 버블론 등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이를 추세 전환이 아닌 기간 조정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최근 발표된 미국 마이크론의 실적이 여전히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AI 산업의 수익성에 대한 우려를 일부 불식시켰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내년도 코스피 밴드 하단을 3500~4000으로, 상단을 4500~5500으로 전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리서치부장은 “미국이 금리 인하 사이클을 이어가고 AI 반도체 업황이 강세를 유지한다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추세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진혁 연구원 역시 “내년 1분기까지는 반도체 공급 부족과 업황 호조에 힘입어 IT 섹터 중심의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하반기에는 조정 국면이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강진혁 연구원은 “올해 9월부터 시작된 금리 인하의 여파로 내년 중반 무렵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되고,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며 조정 국면을 맞을 수 있다”면서도 “선거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안도 랠리와 함께 다시금 상승 흐름을 회복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2026년 증시를 바라보는 일부 전문가들의 시선은 기대보다는 ‘우려’에 쏠려 있다. 역대급 상승 피로감에 시장 부담, AI 산업의 수익성 악화 우려, 그리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 압박과 환율 불안 등 ‘지뢰밭’이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3저 호황기 때나 IMF 때 주가가 워낙 많이 빠졌을 때를 제외하면 이 정도로 급등한 적은 없었다. 다만 과거 사례를 살펴봤을 때 주가가 폭등한 이듬해 시장은 경제 상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횡보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 고소득층이 자산 가격(주가) 상승세가 멈추면 지갑을 닫을 것이고 이미 붕괴된 서민 경제와 맞물리면 본격적인 소비 절벽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의 향방을 판가름할 1차 분수령은 글로벌 빅테크들이 4분기 실적발표와 함께 대규모 설비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내년 1월 말~2월 초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나 마이크론의 자체 실적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의 AI 인프라 투자 규모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6년도 D램과 HBM 등의 반도체 가격이 20% 이상 급등하는 만큼, 빅테크들의 투자 집행액이 전년 대비 20% 이상 증액되지 않는다면 이는 사실상 도입 물량을 줄이겠다는 ‘수요 둔화’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솟는 환율도 불안 요인이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 1500원선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외국인의 증시 투자가 둔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 증시에서 수익을 내더라도 환차손으로 인해 실질 수익은 마이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불확실성 탓에 기업들도 벌어들인 달러를 환전하지 않고 움켜쥐고 있어 환율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고환율이 고착화되면 달러 환산 GDP는 마이너스 성장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증시를 근본적으로 밀어올릴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고갈된 상태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내년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이 최소 2%는 돼야 현상 유지가 가능한데, 실제 성장률은 0%대, 높아 봐야 1% 미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경제 성장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증시만 나 홀로 독주하기는 어렵다”며 “달러 가격이나 내수 시장이나 트럼프의 청구서 등을 감안하면 내부적으로 증시를 지속적으로 견인할 만한 모멘텀은 잘 안 보인다. 빚을 내가며 ‘영끌’한 투자자들이 반도체만 바라보고 있지만 올해 폭발적인 급등으로 인해 이후 혹독한 후유증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