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측이 최근 재판에서 "김건희 씨에 과거 수표로 3억 원을 줬다"고 증언해 파문이 확산했다. 이 전 대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관련된 김 씨 계좌를 관리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이 전 대표가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명현 특검) 수사 과정에서 "김건희 씨한테 받기로 약속된 돈이 있었다"며 "김건희 씨 쪽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 상황도 확인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이 전 대표 측은 이른바 '플리바게닝'(유죄협상) 일환으로 이같이 진술했다. 본인 형량을 낮추는 대가로 수사에 협조했다는 뜻이다. 다만 전략은 실패했다. 특검은 이 전 대표에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이 전 대표 측은 "특검이 플리바게닝을 기만적으로 활용했다"고 토로한다. 일요신문이 전말을 들여다봤다.
김건희 씨가 2025년 8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김건희의 15억 투자
이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지난 12월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오세용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변호사법 위반 혐의 결심공판에서 "김건희 씨한테 수표로 3억 원을 준 적 있다"며 "김건희 특검팀에 다 얘기했다"고 밝혔다. 누구도 예상 못한 돌발 주장이었다. 이 전 대표에게 불리할 수 있는 진술이라 발언 배경에 의구심도 뒤따랐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대표는 2011년 6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통해 100만 원짜리 수표로 총 3억 원을 김건희 씨에 전달하려 했다. 김건희 씨가 IT기업 '엔스퍼트'에 전환사채(CB)로 투자한 데 따른 수익금이었다. 그 무렵 김건희 씨는 이 회사에 15억 6000만 원을 투자했다.
엔스퍼트는 2001년 9월 설립됐다. 한때는 대통령상도 수상한 유망 벤처기업이었다. 그러나 2012년 3월 최대주주가 악재를 예상하고 사전에 대거 지분을 팔아치우다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결국 2012년 7월 코스닥 상장 폐지됐다.
이 전 대표 측은 이런 내용을 2025년 8월 순직해병 특검팀에서 먼저 진술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관이 '우리 소관 아니다'며 수사를 거부했다. 이에 이 전 대표 측은 8월 21일 김건희 특검팀(민중기 특검)에 도이치 주가조작 사건 참고인으로 출석해 해당 3억 원 수표 관련 진술을 남겼다.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2025년 7월 21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에 마련된 김건희 씨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이종현 기자#"주가조작 '공범' 김건희 비서로부터 연락 와"
이 진술은 의미가 크다. 그동안 이 전 대표는 김건희 씨 도이치모터스 주식 계좌 관리인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 외 연결고리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 전 대표는 순직해병 사건에서도 이른바 '임성근 구명로비 의혹'에 휩싸인 만큼, 그와 김건희 씨 관계성은 윤석열 정부 비리 의혹의 주요 단서였다. 이번 발언은 이 전 대표와 김건희 씨의 깊은 인연을 드러낸 또 다른 방증이다.
이런 가운데 이 전 대표와 김건희 씨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정황이 더 파악됐다. 이 전 대표가 "김건희 씨한테 돈을 받기로 했다" "김건희 씨가 검찰의 도이치 수사 상황도 챙겼다" 등을 진술한 사실이 일요신문 취재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이 전 대표는 2025년 10월 순직해병 특검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당시 순직해병 특검팀은 '출소 후 김건희로부터 약속된 돈을 받았는지'를 물었다. 이 전 대표는 "권오수와 통화가 안 됐고, 김건희도 연락이 없었다"고 답했다.
순직해병 특검팀은 이어 '그럼 약속을 지키지 않은 김건희와 어떤 방법으로 연락을 나눴는지'를 물었다. 이 전 대표는 "2021년 3~4월경 윤석열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시기에 김건희 비서 역할을 하는 심○○이 저한테 연락했다"며 "심 씨가 제게 도이치 관련 어떤 조사를 받았는지, 어떻게 대답했는지' 등을 물었고, 그와 약 40회 통화를 나눴다"고 진술했다.
이 전 대표는 11월 1일에도 순직해병 특검팀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사퇴 후 대통령 출마 준비할 때, 김건희 씨 측 비서가 제게 (도이치) 사건 진행 관련 연락이 와 답한 적은 있지만 김건희 씨와 직접 보거나 통화한 적은 없었다"고 거듭 밝혔다.
김건희 씨를 '공범'으로 적시한 지점도 눈길을 끈다. 같은 날 이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순직해병 특검팀 질의에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다"라며 "저와 도이치 주가조작 사건 공범인 김건희 씨 남편이라 사람들이 제가 윤 전 대통령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답했다.
이 전 대표가 통화를 나눴다는 '김건희 씨 비서' 심 아무개 씨는 역술인이란 분석이 많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대 대선 당시 김건희 씨 회사인 코바나컨텐츠에 상주하며 '숫자를 특히 잘 맞히는 역술가'로 통했던 인물이다. 정치권과 언론계 등에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다.
2025년 7월 8일 순직해병 특검팀이 잠복하며 촬영한 이 전 대표 지인 모습. 사진=순직해병 특검팀 수사기록 갈무리#"기만적 플리바게닝" 분통 전말
이 전 대표가 이처럼 김건희 씨 관련 진술에 적극 나선 배경은 '플리바게닝' 때문이었다. 이는 피고인이 검찰에 사실을 고백하는 대가로 구형량을 줄이는 등의 협상 절차다. '유죄협상'으로도 불린다. 미국에서는 흔한 수사 기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윤석열 정부 비리 의혹 규명을 위해 가동한 3개 특검법은 플리바게닝을 보장했다. 내란특검(조은석 특별검사)은 제25조, 김건희 특검은 제24조, 순직해병 특검은 제23조에 '형벌 등의 감면'을 명시했다. "혐의자가 다른 사람 범죄를 규명하는 주요 진술이나 증언, 자료제출이나 제보를 하면 형 감경 또는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번 특검 수사에서 플리바게닝은 자주 공론화했다. 12·3 비상계엄 가담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지난 12월 8일 재판에서 "내란 특검팀에서 플리바게닝을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건진법사' 전성배 씨는 김건희 씨에게 직접 금품을 줬다고 실토하고 징역 5년을 구형받았는데, 플리바게닝으로 그나마 선처된 조치라는 분석이 따랐다.
이 전 대표 측은 김건희 특검팀이 플리바게닝을 자의적, 기만적으로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특검팀이 플리바게닝을 미끼로 '김건희 3억 원 수표' 등 주요 증언을 얻어놓고도 구형을 과도하게 했다는 불만이다.
이 전 대표 측은 최근 결심공판 직후 법원에 보석을 신청하며 낸 참고서면에서도 이를 강조했다. 해당 서면에 따르면, 이 전 대표 측은 2025년 8월 21일 김건희 특검팀에 출석해 '김건희 3억 원 수표'를 진술하며 "이게 수사에 도움이 된다면 제 사건 구형 등에 반영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담당 수사관도 "고려해보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 전 대표는 이를 믿고 구체 증언에 나섰다. 특검팀은 처음에는 "도움 안 되겠네"라며 고민했으나, 결국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며 이를 진술조서에 기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팀은 이 진술 바로 다음 날 이 전 대표를 구속기소했다. 결심공판에서는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그러면서도 언론에는 "이종호 3억 원 수표 진술은 김건희 씨가 도이치 주가조작 재판에서 권오수, 이종호 등과 주가조작 공범임을 입증하는 간접증거로 제출됐다"고 공지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표 측은 "이종호 진술이 김건희 씨 도이치 주가조작 사건 핵심 증거로 활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피고인(이 전 대표)이 수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음을 특검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 측은 그러면서 "순직해병 특검팀은 줄곧 피고인을 미행했고, 김건희 특검팀도 별건인 변호사법으로 수사를 벌였다"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수사에 적극 협조했는데, 특검은 계속 피고인 망신주기만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순직해병 특검팀은 공식 출범 후 나흘 지난 2025년 7월 6일부터 잠복하며 약 한 달 동안 이 전 대표를 쫓은 바 있다. 이 전 대표가 참고인도 피의자도 아닌 때였다. 그러다 이 전 대표 지인 차 아무개 씨를 대상으로도 잠복 수사에 돌입했다. 차 씨는 12월 29일 순직해병 수사팀 이명현 특검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다(관련기사 [단독] "민간인 사찰 도 넘어"…'김건희 측근' 이종호의 지인, 이명현 특검 고발).
특검-이종호 '독수독과' 공방…김건희 의혹과 관련성 여부 쟁점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1차 주포 이정필 씨한테 "VIP한테 말해 집행유예 나오게 해주겠다"며 금품을 수수한 혐의다. 다만 이정필 씨는 이와 관련한 진술을 김건희 특검팀 출범 전에 남겼다. 이 전 대표 측은 "수사 준비 기간에는 수사를 할 수 없게 돼 있다"며 위법한 증거수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김건희 특검팀 수사기록 갈무리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 선고는 2026년 2월 13일 내려진다. 결심공판 후 약 두 달 지난 시점이다. 통상적인 재판은 결심공판 후 약 한 달 지나 선고가 내려진다. 이번 사건은 재판부 숙고 기간이 비교적 긴 편이다.
이는 이 전 대표 측이 '독수독과(毒樹毒果)'를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수독과는 독이 있는 나무에서 열린 열매도 독이 있다는 뜻. 즉 독이 있는 나무는 '위법으로 수집된 1차 증거'를, 열매는 '2차 증거'를 의미한다. 이는 형사소송법상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법정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이 전 대표의 변호사법 위반은 그가 2022년 '도이치 1차 주포' 이정필 씨한테 "내가 VIP한테 말해 집행유예 나오게 해주겠다"며 7590만 원을 수수한 혐의다.
여기서 독수독과 쟁점은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팀 출범 전부터 수사를 진행했다는 게 골자다. 현행 특검법은 수사팀 출범 전 '준비기간'에는 수사를 못하게 돼 있다. 김건희 특검팀은 2025년 7월 2일 출범했는데, 이정필 씨 진술은 하루 전인 7월 1일 확보했다.
김건희 특검팀은 이정필 씨가 수감된 경기 여주교도소로 직접 찾아가 이런 진술을 얻었다. 당시 이정필 씨는 "이종호가 도이치 사건 결론을 알고 있는 듯 행동했다"며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게 해준다기에 9000만~1억 원을 줬다"는 자필진술서를 남겼다.
이정필 씨는 2025년 7월 10일 김건희 특검에 직접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때도 '도이치 주가조작 사건' 집행유예를 대가로 이 전 대표에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
다만 이후에는 일부 진술을 바꿨다. 돈을 준 동기가 도이치가 아닌 본인 회사 '아리온테크놀로지' 때문이라고 했다. 이정필 씨는 그 무렵 아리온테크놀로지에서 횡령을 저질러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이 사건 무마를 위해 이 전 대표에게 돈을 줬었다는 내용이었다. 김건희 특검팀도 아리온테크놀로지를 돈 거래 배경으로 판단하고 이 전 대표를 기소했다.
이 전 대표 측은 "특검이 출범도 전에 별건 수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변호사법 위반 자체가 특검법상 수사 범위, 즉 '김건희 씨 등 비리 의혹'과 무관하다고 항변한다. 사건 증거도 일제히 특검 출범 전에 수집됐다고 강조한다.
김건희 특검팀은 법원에 "김건희 등 이른바 'VIP'(대통령)를 매개로 한 혐의이므로 별건 수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준비기간에 수사가 이뤄진 점은 인정하면서도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김건희 특검팀은 "이종호와 이정필이 사전에 접촉하면 증거 인멸 우려가 있어 준비기간이더라도 수사 착수는 불가피했다"고 강조했다.
김건희 특검법 제9조는 "증거 인멸을 막는 목적으로는 준비기간에도 '관련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전 대표와 이정필 씨의 돈 거래가 '김건희 씨 비리 의혹 관련 수사'에 해당하는지가 관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