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2월 꺼내든 ‘민주당 중도 보수론’의 핵심 내용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점쳐지던 탄핵 정국에서 유력 대선주자 신분이던 이 대통령의 ‘운동장 넓히기’ 행보로 풀이됐다. 민주당을 중도 보수 정당으로 규정하며 중도에 가까운 보수 인사 포섭을 위한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의미다.
2025년 6월 4일 정부 출범 후 이 대통령은 보수 진영 출신 인사를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다. 당초 권 장관 입각은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권 장관이 이재명 대선 캠프에서부터 동행했고,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던 인사였기 때문에 이질감이 덜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이혜훈 후보자 지명은 여야가 모두 깜짝 놀랐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이 후보자는 서울 서초갑에서 한나라당, 새누리당 소속으로 3선을 했다. 2018년엔 헌정 사상 첫 여성 국회 정보위원장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21, 22대 총선에서 서울 동대문을, 서울 중성동을 지역구에서 연속 고배를 마셨다. 이 후보자는 야인 시절 보수 진영 패널로 방송에 출연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윤석열 전 대통령,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 대선 때마다 보수 인사 캠프에 몸을 담아 왔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다른 진영 인재를 등용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김대중 정부에선 ‘DJP 연합’ 여파에 따라 김종필 총리, 박태준 총리 등을 기용한 바 있다. 그러나 대선 과정부터 새천년국민회의(현 민주당)와 자민련의 연합이 필승 카드로 활용됐기 때문에 자민련계 인사를 등용할 명분은 쌓여 왔던 측면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상대 진영에 권력을 나눠주는 ‘대연정’을 공식 제안했다. 그 일환으로 보수 정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정통 관료 출신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총리로 기용했다. 그러나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조차 반발이 컸고, ‘대연정’은 무산됐다.
이명박 정부도 ‘통합형 인사’에 관심을 뒀다. 이 전 대통령은 호남 출신 인사나 과거 민주당계에서 활동한 인사를 기용했다. 지역갈등 해소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이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에서 부총리를 지냈던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진보 성향 경제학자로 꼽히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발탁했다.
이 전 대통령은 여당 내 야당을 자처했던 친박계 인사를 발탁하기도 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당시 재선 의원이자 친박계로 분류되던 유정복 인천시장을 임명했다.
유 시장 인사와 관련해 보수 진영 한 관계자는 “당시 이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측에 인사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톱다운 방식 추천이라는 정치 공식에 따라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계파 간 통합을 추구했던 사례”라고 돌아봤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도 섬기겠다”면서 통합을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바른미래당 소속이던 박주선 전 의원과 김동철 전 의원 등에게 입각 의사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당 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야당 의원 입각은 불발됐다.

이처럼 한국 정치 지형에선 야권 인사를 발탁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야권 인사로선 (입각을 제안 받더라도) ‘당론과의 충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배신자 프레임이 생긴다면, 향후 정치 행보를 이어가기도 어렵다. 정부나 야권 인사 모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야권 인사 등용을 협치로 바라보지 않고 내부 교란용 카드로 인식하는 경향도 적지 않다”면서 “이혜훈 후보자는 서초갑에서만 3선을 했다. 보수 진영의 후광이 3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케이스다. 이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된다 하더라도, 보수 진영에서 할 것을 다 하고 양지를 향해 떠났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부가 야당과 협의해 인사를 추천하는 ‘정치 공식’에 따라 야권 인사를 등용한 것이 아니”라면서 “이번 파격 인사는 협치가 아니라 야합으로 비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12월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대통령의 파격 인사와 관련해 “세 가지 노림수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장 소장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서 내 편이 누구인가’를 이번 기회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면서 “국민의힘을 조금 더 오른쪽으로 몰고가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파격 인사를 통해 2026년) 서울시장 선거에 영향을 끼치고 싶어한 것 같다”면서 “강남에 있는 합리적 보수 지지층에게 이재명 정부가 보수 정책 이념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고도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