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을 좌절에 빠뜨린 주인공은 제주 SK FC였다. 제주는 절체절명의 강등 위기에서 1, 2차전 합계 3-0, 2승으로 K리그1에 살아남았다. 시즌 내내 무기력하던 제주가 수원을 완파한 배경에는 2개월 남짓 팀을 이끈 김정수 감독 대행의 빠른 수습이 있었다. 김 감독은 이전부터 다양한 연령별 대표팀을 지도하며 선수 잠재력을 끌어내는 능력을 지녔다는 평이 이어졌다. 다사다난했던 시즌을 마치고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대한축구협회(KFA) 전임 지도자로 연령별 대표팀을 지도하던 시절 인연으로 김학범 감독과 함께 제주로 향했던 김정수 감독이다. 수석코치로 팀에 합류했으나 2025년 9월 말 김학범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고 대행을 맡아 팀을 잔류로 이끌었다. 그는 제주 생활을 돌아보며 먼저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수석코치를 하다 감독 대행까지 하게 됐다. 그런 과정 속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어려운 시즌을 치러서 팬들에게 죄송스럽다."
제주는 극도로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시즌 초반인 3월 이후 가장 높은 순위가 8위였다. 그마저도 하루이틀 정도였다. 8월 말부터는 꾸준히 강등권인 11위에만 자리했다. 한때는 '최하위 대구에게 역전을 당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승강 플레이오프에 돌입하면서도 상대 수원의 분위기가 K리그2에서 좋았기에 전망은 어두웠다. 김 감독 역시 당시 축구계 전반적인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모두가 제주의 1부리그 생존이 어렵다고 했다. 처음 감독 대행이 됐을 때 '불가항력적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다. 팀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름의 단기, 중기, 장기 계획을 짰다고 했더니 '8경기밖에 안 남았는데요?'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나는 플레이오프까지 10경기를 내다봤다. 중간에 A매치 휴식기도 있었기에 계획적인 움직임이 필요했다. 결국엔 나름 계획대로 됐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예상을 뒤집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김정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제주는 4연패를 하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선수들이 감정 조절에 실패해 한 경기에서 경고 네 장, 레드카드 네 장이 나오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갈 길 바쁜 제주로선 징계로 인한 출장 정지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정규리그 막판 5경기에서 2승 1무 2패로 최하위 추락 위기에서 벗어났다. 플레이오프를 포함 최종 3경기에서는 무실점을 기록하며 생존에 성공했다.

국내에서 생소하던 승강제도 도입 이후 10년이 훌쩍 넘었다. 강등 혹은 강등 위기를 경험한 축구인들은 입을 모아 '분위기를 잡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꼽는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미팅을 한다 해도 처진 분위기를 끌어올리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김 감독은 "안 좋은 이야기는 절대 안 했다.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했다. 새로운 패턴을 알려주는 등 딱딱한 부분이 필요할 때는 간단명료하게 했다"며 내부 상황을 전했다.
종목을 막론하고 감독들은 때때로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코치 등 스태프, 다수의 선수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이어가지만 결국 최종 결정권은 감독에게 있다. 홀로 남는 시간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당연히 부담감이 엄청나다.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한번 가만히 앉아 생각에 빠지면 긍정적으로 시작을 해도 부정적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그럴 땐 많이 걸었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10km씩 걸었다. 제주가 산책 코스가 워낙 좋지 않나(웃음). 걸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주변 사람들과 통화도 하고 그랬다. 겉으로는 스태프나 선수들에게 내가 느끼는 불안감을 노출하지 않으려 했다. 불안감이 '전염'될 수 있다 생각했다. 경기 때는 벤치와 라커룸에서도 냉정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U-17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에 나갔을 때다. 처음으로 감독이라는 직책을 맡기도 했다. 혹독하게 준비를 해서 그때 '대표팀에 뽑히고 싶지 않다'는 선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선수들이 나를 믿고 잘 따라줬다. 피지컬 데이터가 성인 무대에서도 나오기 힘든 수치였다. 결국 대회 8강까지 갔다. 당시 함께했던 김준홍, 엄지성, 이태석, 이한범, 정상빈 등이 A대표팀에 빨리 올라가고 해외 진출도 하는 걸 보면 뿌듯하게 생각한다."
그는 U-17 대표팀을 이야기하며 세계 축구 흐름 변화를 말하기도 했다. "요즘은 17세부터 스카우트들이 관찰을 한다. 20세가 되면 몸값이 올라가기 때문이다"라며 "그래서 월드컵 성적이 중요하다고 봤다. 높은 단계까지 올라가야 선수들이 홍보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수 개인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선수 개개인 기량이 좋으면 팀은 자연스레 좋아진다. 선수를 팀에 맞추려 하면 그 팀은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맞춰진 선수가 다른 팀에 가면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 집중하면서 연령별 대표팀을 지도했다"고 덧붙였다.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는 "한 번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출국하기 전에 아이들 모르게 부모님들께 부탁해서 영상 메시지를 받았다. 내 딴에는 동기부여를 끌어올린다고 한 것이다"라며 "영상을 보여줬더니 그 어린 선수들이 감정 조절이 안돼 울고 난리가 났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결국 경기도 '죽을 쒔다'(웃음). 이겨서 목표는 달성했지만 다시는 하면 안되겠다고 느꼈다. 때로는 힘 조절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미와 보람을 느끼던 전임 지도자 생활을 정리한 이유는 '생각했던 축구를 해보고 싶어서'였다.
"나는 선수든 지도자든 서비스업을 한다고 생각한다. 서비스업의 고객은 팬이다. 고객을 흥분시키고 환호하게 할 수 있는 게 축구라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전쟁에 가까운 상황도 펼쳐진다. 환호를 이끌어내려면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결국 질 좋은 서비스는 경기력이라고 본다. 해외 축구가 보급되면서 팬들의 눈이 높아졌다. 그에 맞는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팬들의 흥미를 이끌 수 있는 축구는 무엇일까. 김 감독은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 빠르고 공격적인 축구를 보여주고 싶다. 공격적이라고 해서 수비를 등한시한다는 것이 아니다. 막아내는 장면에서도 공격적인 수비가 있을 수 있지 않나. 팬들은 격렬하고 치열하게 맞붙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축구 외적인 부분도 빼놓지 않았다. 김 감독은 "서비스에는 경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마케팅을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며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에이전트들에게 '훈련,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인터뷰 스킬, 스타일, 소셜미디어 등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프로 무대에서도 스타플레이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수 감독은 자신만의 강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 생활까지 비교적 어려운 상황을 많이 겪어봤다는 것이다. 선수 시절 대전과 용인에서는 창단 멤버였다. 광주에서의 지도자 생활도 유사했다. 최근 제주에서는 강등 위기를 극복했다.
"시작하는 팀, 끌어올려야 하는 팀을 많이 경험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팀들을 올려놓고 나왔다고 자부한다. 그런 경험들이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연스레 내 몸에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덧 감독, 코치 경력만 15년을 넘긴 그는 여전히 자신의 목표가 '축구 지도자'라고 말한다. "아내가 때때로 나를 보고 부럽다고 한다. '어릴 때의 꿈을 지금도 계속 이뤄가고 있어 좋겠다'는 의미"라면서 "어릴 때부터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축구인들에게 다양한 길이 열리고 있는데 나는 아직 현장에서 선수들과 호흡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도 나만의 축구를 통해서 팬들이 즐거워하고 환호할 수 있는 축구를 계속 보여주고 싶다. 언제나 응원해주는 아내,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