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원님 저 좀 살려주세요.”
MBC가 보도한 녹취에 따르면 2022년 4월 21일 오전 민주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였던 김병기 의원과 서울 강서갑에 지역구를 둔 강선우 의원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김 의원은 “선뜻 믿기 어려운 행동”이라면서 “바로 돌려주든지 사무국장한테 맡겨 두든지, 공천 배제 ‘컷오프’ 해야되겠다 그러면 돌려줬어야 하지만, 그런 것 전혀 없이 이렇게 됐다”고 했다. 김 의원은 “1억. 이렇게 돈을 받은 걸 지역 보좌관이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 아니냐”면서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라고 했다. 강 의원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라고 답했다.
2022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은 ‘투기 목적 다주택자 배제’를 공천 심사 기준 중 하나로 강조했다. 서울 강서구 제1선거구에 출사표를 던졌던 김경 시의원은 서울 다주택자였다. 그가 공천 적격자인지를 두고 공관위 내부에서도 논의가 오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김 시의원은 2025년 9월 30일 특정 종교단체 신도 3000명을 동원, 김민석 국무총리 서울시장 선거를 지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김 시의원은 2025년 10월 2일 민주당을 탈당하며 “진실을 밝히고 떳떳하게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 후 김 시의원은 정치권을 강타한 또 다른 의혹 중심에 섰다.
강선우 의원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공천을 약속하고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해명했다. 강 의원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해당 사안을 인지하고 공관위 간사에게 바로 보고했다”면서 “다음날 아침에도 재차 보고했고, 즉시 반환을 지시했다”고 했다.
강 의원은 “당시 공관위 간사였던 김병기 원내대표와의 대화는 사안을 알게 된 후 너무 놀라고 당황한 상태에서 경황없이 상황을 보고하며 억울함을 호소한 과정의 일부였고, 해당 내용이 제가 모르는 상태에서 그대로 녹취된 것”이라면서 “논란을 일으킨 점 송구하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강 의원이 탈당 의사를 밝힌 지 13분 만에 긴급최고위원회의 소집에 나섰다. 새해 첫날 오후 8시에 최고위원들이 모였다. 70분가량 논의 끝에 민주당 지도부는 강 의원에 대한 제명을 의결했다. 민주당 윤리감찰단 보고 내용이 제명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민주당 지도부는 김병기 의원에 대한 중앙당 윤리심판원의 신속한 징계심판 결정을 요청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강선우 의원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성역일 수 없다”면서 “끊어낼 것은 끊어내고 이어갈 것은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 따르면 강 의원은 김병기 의원과 대화를 나눈 이튿날 공관위 회의에서 김경 서울시의원 단수공천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지도부는 회의록을 통해 강 의원 발언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된다.
강 의원은 ‘공천헌금’ 의혹 해명 과정서 “특정 공관위원 지역구에 관해 논의할 때는 해당 공관위원은 논의에서 배제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저 역시 공관위 업무 수행 당시 그 원칙에 철저히 따랐다”고 한 바 있다. 김경 시의원 단수공천에 본인이 발언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취지 해명이었다. 하지만 회의록에 따르면 이 해명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고, 민주당 지도부 역시 비슷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민주당 지도부가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해 강 의원에 대한 제명을 빠르게 결단했다”면서 “긴가민가한 상황일 때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여성가족부 장관 청문회 때의 낙마보다 훨씬 더 큰 쓰나미가 강 의원을 향하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민주당에서도 강 의원에 대한 손절 의사를 확실히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공천 헌금’ 의혹엔 여러 쟁점들이 존재한다. 우선, 강 의원 측에 돈을 건넸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김경 시의원이 공천을 받은 부분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병기 의원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강 의원의 도움 요청을 사실상 거절하는 대목도 나온다. 그런데 다음 날 김 시의원은 공천을 받았다. 이는 김 시의원 공천 과정에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또한 강 의원이 받았다는 1억 원의 흐름도 수사 대상이다.
김 의원과 강 의원 대화를 누가 녹취했고, 또 지금 왜 공개됐는지도 짚어봐야 한다. 정치권 일각에선 각종 논란으로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김병기 의원을 둘러싸고 여러 얘기가 나돈다. 위기에 몰려 있는 김 의원이 여권의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여권 관계자들은 강 의원이 재선을 거쳐, 정부 출범 후 장관 후보자로까지 지명된 배경에 주목하기도 한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강 의원을 둘러싼 보좌관 갑질, 공천 논란 등은 그리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도 공천을 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심지어 장관이 될 뻔도 했다. 이는 강 의원 개인의 힘으론 불가능하다. 특정 라인이 강 의원을 비호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총공세에 나섰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와 강선우 의원의 1억 공천 헌금 녹취가 공개됐다”면서 “단수공천장은 1억 원에 대한 현금영수증”이라고 했다.
‘공천 헌금’ 의혹에 대해 박용찬 전 국민의힘 공보메시지단장은 일요신문에 “민주당이 자부하던 시스템 공천, 그 시스템에 심각한 구멍이 뚫린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면서 “후진국형 공천시스템이 여전히 민주당에서 작동하고 있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박 전 단장은 “깨끗한 선진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면서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와 공천관리위원이 공천 헌금 비리에 연루돼 있다는 점, 1억 원 수수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단수공천을 한 점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