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12월 28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 후보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정책과 실무에 능통한 분”이라며 “기획처의 국가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 미래 성장동력을 회복시킬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이 대통령의 파격적인 장관 지명 발표는 청와대 내부에서도 극히 소수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들도 인사 발표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인사 검토가 대통령과 실장급에서만 은밀히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여권 내부에선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핵심부처에 정책 지향점이 다른 보수 정당 출신 정치인을 어떻게 임명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내란에 대해서 사과를 하지 않은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혜훈 후보자는 장관 임명 때까지도 국민의힘 중·성동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집회 연단에 올라 발언을 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번 인사를 두고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이규연 수석은 “이 대통령 인사 철학에는 기본적으로 통합과 실용 인사라는 두 축이 있다. 이러한 인사 원칙을 이번에도 지켰다고 볼 수 있다”며 “(이 후보자는) 경제·예산 분야에서 전문가로 꼽히고 실무 능력을 갖춘 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12월 30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특정 세력을 대표하지만, 대통령이 되는 순간 모두를 대표해야 한다”며 “파란색 좋아하는 사람이 권한을 가졌다고 사회 통째를 다 파랗게 만들 수 없다. 그러면 빨간색은 우리 공동체 자격을 상실하는 거냐. 그렇지 않다. 여전히 국민이고 주권자”라고 강조했다. 인사권자로서 이혜훈 장관 후보자 지명 논란에 대해 공개 발언 한 것으로 해석됐다.
다만 이 대통령은 탄핵 반대를 주장한 점 등에 대해서는 이 후보자에 본인이 직접 충분히 소명하고, 단절 의사와 관련해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혜훈 후보자 지명을 두고 원소속 정당이었던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임명 소식이 전해진 지 3시간 만에 서면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혜훈 전 의원을 제명했다. 이후 입장문을 통해 “이혜훈 전 의원은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며 “이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의 협잡은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태로 결코 묵과할 수 없으며,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국민의힘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후보자 지명으로 보수 진영이 분열할 것이란 분석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이 후보자 지명 발표 후 국민의힘 내부는 물론,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간에도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인사들이 떠날 경우 당이 극우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뒤를 잇는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12월 30일 일요신문 유튜브채널 ‘신용산객잔’에 출연,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국민의힘을 더욱 오른쪽으로 밀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전재수 전 장관 사퇴로 공석이 된 해양수산부 장관에 ‘부산 출신’을 발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후보자 지명 후 정치권에서는 부산 출신의 조경태 의원, 김세연 전 의원 등의 입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보수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인 홍준표 전 대구시장,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요직에 임명될 것이란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최근 국민의힘 내부 인사들이 아침에 만나면 제일 먼저 ‘청와대 전화 받았냐’를 묻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만큼 이 후보자 발탁이 예민한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힘이 극우와 절연하지 못하고 지금의 방향을 유지하면 전국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낮다. 당내에서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집단 탈출로 인한 국민의힘 분열이 시간문제일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와중에 이 후보자는 보좌진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이 후보자가 의원 시절 인턴직원을 상대로 소리를 지르고 폭언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가 공개됐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바른정당 소속 의원이던 2017년, 인턴 직원 A 씨에게 본인 이름이 언급된 언론 기사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대체 몇 번을 더 해야 알아듣니. 너 대한민국 말 못 알아들어” “네 머리에는 그게 이해가 되니. 너 뭐 아이큐 한 자리야”라고 질책했다. A 씨가 해명을 하자 이 후보자는 “야”라고 소리치며 “내가 정말 널 죽였으면 좋겠다. 입이라고 그렇게 터졌다고 네 마음대로 지껄이고 떠들어”라고 3분 가까이 폭언했다. A 씨는 이 일을 겪은 지 보름 만에 의원실을 그만뒀다고 한다.
이혜훈 후보자 측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이 후보자가 업무 과정에서 해당 직원이 그런 발언으로 큰 상처를 받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어떤 변명의 여지없이 사죄하고 깊이 반성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 이 후보자가 다른 보좌진에게 자택 프린트 수리를 지시하고 유학 중인 아들의 공항 픽업을 시켰다는 등 사적 심부름을 시켰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윤석열 내란에 대한 입장은 이 후보자가 사과를 계속하면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면서도 “이 후보자 관련 논란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보좌진 갑질은 김병기 전 원내대표로 인해 민주당이 현재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안이다. 민주당이 이 후보자를 옹호하려 섣불리 덤벼들었다가는 같이 엮어 들어갈 수 있다. 논란이 이어지면 청와대에서 결단해야 한다”고 전했다.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한 진성준 의원도 1월 2일 YTN라디오 ‘김영수의 더인터뷰’에 출연해 “대통령의 뜻이 있을 테고 인사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솔직히 잘한 인사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든다”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꼼꼼하게 점검해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최종적으로 임명 여부를 대통령이 판단해 주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1월 2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대통령도 (이 후보자 지명이)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청문회에서) 검증이 돼 도전이 잘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 이전에 지명 철회는 없을 것이란 취지다. 그럼에도 청와대 역시 이 후보자의 갑질 문제에 따른 지명 철회 여부를 두고 고심이 깊다는 전언이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이혜훈 후보자는 보수진영 재편 및 민주당의 외연확장에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후보자가 상처만 입고 낙마하면 국민의힘에서 다음에 누가 또 진영을 넘어오려 하겠느냐”며 “국민의힘은 자기들끼리 더욱 똘똘 뭉쳐 극단의 대립 정치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