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기 동부 회장 | ||
특히 김 회장이 남호 씨 지배권 강화와 증여·상속세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와중에 동부하이텍의 이해할 수 없는 동부정밀화학 지분매각에 대해서는 오너 일가에 대한 ‘이익 몰아주기’라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과연 동부그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특이한 재벌 오너다. 일제 강점기 전후에 사업을 시작, 오늘날의 기업을 일군 전통적인 재벌 오너가 아니고 신흥재벌 오너이기 때문. 특히 김 회장은 대학졸업 무렵인 1969년 사업을 시작해 중동에서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그 돈으로 몸집을 키운 1세대 오너다. 기업을 상속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키운 자수성가형 오너인 셈이다.
김 회장은 독특한 ‘자율경영’ ‘시스템경영’을 도입하는 등 나름대로 능력 있는 오너로 각인되고 있다. 게다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법대로’를 외치며 세금을 다 내 깨끗한 이미지를 그려왔다. 그런 김 회장이지만 최근 행보에 대해서는 비난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동부그룹의 후계구도는 확고하다. 1남 1녀를 두고 있는 김 회장은 이미 외동아들인 남호 씨에게 계열사 대부분을 넘겼다. 특히 이번에 자신이 보유하던 동부CNI 지분 증여는 마지막 방점을 찍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후계구도의 완성판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동시에 동부CNI는 동부정밀화학 지분 21.58%를 인수했다. 이로써 김남호→동부CNI→동부정밀화학→동부제강·동부건설 순으로 지배구조가 연결돼 남호 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한 순환출자구조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몇 가지 ‘꼼수’를 썼다는 것이 재계와 증권가 일각의 지적이다. 김 회장은 아들 남호 씨에게 동부CNI 지분을 증여해 남호 씨를 최대주주로 만들어줬다. 김 회장의 동부CNI 지분 36.24% 중 11%를 남호 씨에게 증여해 지분율을 5.68%에서 16.68%로 높여준 것. 또 딸 주원 씨에게도 지분 8%를 증여해 지분율을 2.27%에서 10.27%로 높였다.
김 회장은 그동안 남호 씨 등 자녀에게 지분 증여를 짬짬이 하면서 증여세를 다 내 탈세를 일삼는 다른 재벌과의 차별화를 강조해왔다. 그런데 동부CNI 지분 변동과정을 살펴보면 김 회장도 다른 재벌을 따라가려는 듯한 모습이 엿보인다. 동부문화재단에 동부CNI 지분 4.99%를 증여한 부분이 그렇다. 이는 공익법인으로의 무상속세 상한선 5%를 아슬아슬하게 밑도는 수치다. 상속세를 피할 수 있는 최대 지분을 출연한 것이다.
김 회장이 현재 이사장으로 있는 동부문화재단은 김 회장 이후 남호 씨가 경영승계해 이사장이 될 재단이다. 이 재단에 사재를 출연함으로써 상속세 없이 자기 재산 일부를 남호 씨의 지배권 확대에 이용한 것이다. 김 회장은 실질적으로 상속세 없이 아들에게 동부CNI 지분을 물려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 하나가 동부CNI에서 인수한 동부정밀화학 지분 문제다. 동부하이텍과 동부정밀화학은 지분을 서로 교차해서 보유하고 있었다. 공정거래법 규정상 이를 10월 말까지 어느 한쪽이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서 동부하이텍이 보유하고 있던 동부정밀화학 지분 21.58%(86만 3000여 주·약 163억 원어치)를 동부CNI에 넘겼다고 동부그룹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에 대해 증권가 일각에서는 치밀한 계산을 통해 총수 일가가 이익을 더 취하려 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상호 보유 지분 중에서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넘긴 것과 동부그룹의 많은 계열사 중에서 하필이면 동부CNI에 넘겼느냐는 것이다.
우선 동부하이텍과 동부정밀화학을 비교해 보면 바이오·고분자 사업을 하는 동부정밀화학이 이익률이 높은 우량회사다. 반도체 경기 불황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동부하이텍보다는 기업이 훨씬 괜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동부정밀화학은 동부하이텍 지분을 불과 0.8%(28만 7000여 주·약 28억 원어치) 보유하고 있어 장내든 장외든 매각하기가 훨씬 쉬웠다. 그런데도 굳이 동부정밀화학이 가진 동부하이텍 지분이 아니라 동부하이텍이 가진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매각했다. 단순히 공정거래법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어려운 방법을 쓸 필요가 없었다. 동부그룹이 뭔가 다른 속셈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동부CNI가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매입한, 즉 동부하이텍이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매각한 시점도 절묘하다. 동부정밀화학은 이익이 크게 늘어나는 등 기업가치가 재평가되면서 올해 들어 주가가 급등해 연초에 1만 1000~1만 4000원 하던 주식이 8월에는 3만 4000원대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후 주가가 서서히 떨어지면서 1만 8000원으로 반토막 가까이 났다. 동부하이텍은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그 전에도 얼마든지 팔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주가가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분을 동부CNI에 팔아치웠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동부하이텍의 이러한 판단 미스는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치는 배임과도 같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동부CNI는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동부그룹의 다른 계열사보다 훨씬 높은 40%대여서,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동부CNI에 넘기면서 오너의 이익을 배려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 관계자는 “내부적인 비즈니스 판단으로 동부하이텍과 동부정밀화학 관계자가 모여서 결정했다”면서 오너인 김준기 회장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국내의 오너십 경영체제에서 계열사 지분 이동에 김 회장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좋은 이미지를 지켜왔던 동부그룹의 이 같은 최근 움직임을 보며 일부에서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완제 경향신문 기자 jw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