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마’ 했던 한동훈 전 대표 징계는 제명이라는 충격파로 다가왔다. 장동혁 대표 체제에서 새로 구성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1월 13일 한밤중에 한 전 대표를 ‘당원게시판(당게) 여론 조작’을 이유로 제명했다. 최고 수위 징계다. 초·재선 의원들부터 당 원로까지 한 전 대표 징계에 우려를 표했지만 장 대표는 결국 강공 모드를 택했다.
장 대표가 12·3 비상계엄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잘못된 과거와의 절연’을 약속하며 쇄신안을 발표한 지 일주일 만에 나온 극약 처방이었다. 장 대표가 사과를 내놓자 한 전 대표 징계가 유야무야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화해할 것이란 얘기도 뒤를 이었다.
그러나 윤리위원회는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내놨다. 1월 12일 ‘6인 체제’를 갖춰 공식 출범한 윤리위는 1월 13일 오후부터 비공개로 마라톤 회의를 진행해 속전속결로 최고 수위 징계를 내렸다. 윤리위원회의 이러한 행보엔 장 대표 의중이 반영됐다는 게 국민의힘 많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당초 장 대표와 한 전 대표 측은 윤리위 구성, 윤리위원장 임명 등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친한계 인사들은 ‘친장동혁’ 성향으로 윤리위가 꾸려졌다고 우려를 표했고, 이는 현실이 됐다. 장 대표 최측근 인사들 얘기를 종합해 들어봐도 한 전 대표에 대한 중징계는 ‘예정된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다른 사람과는 다 손을 잡아도 한동훈이랑은 절대 안 된다라는 게 장 대표와 그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했다. 장 대표와 한 전 대표 간 ‘악연’이 이번 징계에 작용했을 것이란 취지다. 이 의원은 “장 대표를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면 제법 말이 잘 통한다. 또 다른 사람 말도 잘 들어준다”면서도 “그런데 한 전 대표 이름만 나오면 사람이 달라지더라”고 귀띔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드라마에 나올 법한 극적 변화를 겪었다. 한 전 대표는 2023년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한 뒤 장 대표를 당 사무총장으로 발탁했다. 선거 공천을 이끄는 사무총장직은 일반적으로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맡는 자리이지만 한 전 대표는 ‘0.5선’이던 장 대표를 발탁했다. 장 대표는 ‘친한 핵심’으로 꼽혔다.
한 전 대표는 2024년 7·23 전당대회 당시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승리했고, 이 과정에서 장 의원과 더 가까워졌다. 장 의원은 최고위원 후보자 중 최다 득표자로서 수석 최고위원 자리에 올랐다. 당시 ‘한동훈 열풍’ 덕을 봤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었다. 장 대표는 ‘한동훈 지도부’의 기둥 역할을 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반을 둘러싸고 둘은 갈라섰다. 한 전 대표는 탄핵 찬성, 장 대표는 탄핵 반대로 길이 엇갈렸다. 그 후 둘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정적이 됐다. 윤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장 대표를 포함한 당시 최고위원 전원이 사퇴하면서 한동훈 체제는 붕괴됐다. 둘의 관계는 파탄에 접어들었다.
장 대표 한 측근은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겉과 속을 너무나 잘 관찰했기에 함께 갈 수 없다는 결심을 이미 오래 전에 한 것으로 안다”며 “검사 출신으로 포용력 등 보수 정당 정치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또 사사건건 충돌하는 등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정당 대표에 대한 거친 태도를 볼 때 의회 정치에 대한 이해도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장 대표가 징계 결정 시점을 맞췄다는 얘기도 나온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1월 13일 구형됐는데 그로부터 3시간 30분 후 윤리위는 한 전 대표 제명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우선 실패한 검사 정치 전형으로 윤석열·한동훈 모델을 소환, 두 사람의 동반 퇴진을 보수 화두로 올렸다는 견해가 나온다. 일각에선 사형 구형을 계기로 분출할 수 있는 ‘윤 어게인 절연’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찬탄파’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전 대표를 쳐냈다는 말도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1월 14일 채널A 유튜브에서 “윤리위 결정은 ‘윤석열 시대’가 당에서 정리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김 최고위원은 또 “이번 일을 말끔하게 부작용까지 정리해서 윤 전 대통령 입당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당에 있었던 여러 정치적 일이 역사의 뒤안길로 가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윤 전 대통령은 물론, 윤 전 대통령 때 법무부 장관이 돼 당 대표 자리에 올랐던 한 전 대표까지, 현 지도부가 결별할 과거 세력으로 바라본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같은 해석을 내놨다. 그는 1월 14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지난 4년간 나라를 혼란케 하고 한국 보수진영을 나락으로 몰았던 정치 검사 두 명이 동시에 단죄를 받는 날이었다”며 “제명 처분이 끝이 아니라 그 잔당들도 같이 쓸어내고 다시 시작하라. 정치 검사가 다시는 얼쩡거리지 못하게 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장 대표가 1월 15일 당헌·당규상 재심 청구 기간인 열흘간 소명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로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확정을 일단 보류했는데 이 조치 역시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며 “징계 조치에 대한 완급 조절을 해 한동훈 쳐내기에 대한 명분을 더 쌓는 한편 징계를 받아들이고 사과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한 전 대표를 협량의 정치인으로 낙인 찍으려는 의도”라고 했다.

친한계는 강력 반발에 나섰다. 한 전 대표는 자신에 대한 징계를 ‘계엄’이라고까지 했다. 6월 지방선거 당내 간판으로 불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조차 페이스북 글에서 “국민이 실망하고 있다”며 “당이 공멸의 길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당의 원로들과 많은 의원들, 그리고 보수 언론은 당이 쪼개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다.
한 전 대표 징계를 둘러싸고 당이 극심한 내홍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고, 6월 지방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자 장 대표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장 대표는 1월 15일 여당을 향해 통일교의 정치권 로비 의혹, 더불어민주당 공천헌금 의혹 등 이른바 ‘쌍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장 대표는 이날 본회의에 앞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규탄대회를 연 자리에서 단식 시작을 공표했다.
장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의) 블랙폰을 열면 민주당 정청래 대표부터 청와대에 계신 분까지 이런저런 비리가 줄줄이 나올 것이고,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특검을 하면 통일교에서 돈 받은 정치인이 줄줄이 나올 것”이라며 “(민주당은) 정권이 끝장날 것을 알고 쫄아서(겁나서) 못 받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리고는 “민주당의 패악질을 제대로 알리고 국민과 함께 힘을 모아 싸워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와 집권당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단식의 실제 노림수는 당 내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또 다른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당 대표가 대여 투쟁한다며 단식을 한다는데 거기다 대고 누가 다른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결과적으로 한동훈 징계에 대한 반발을 희석시키게 될 것이다. 이번 단식은 장동혁의 묘수라고 본다”고 했다.
실제 친한계에서는 단식 투쟁 의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공개적인 비판은 자제하는 모습이다. 다만, 친한계로 분류되는 배현진 의원은 1월 15일 페이스북에 “한 달 전 12·3 계엄 사과와 윤석열 시대와의 절연을 선언해야 한다는 당내 요구가 커지자 장 대표는 24시간 필리버스터에 나서 위기를 잠시 넘겼다”며 “그러나 이번 한동훈 제명 사태로 촉발된 성난 여론은 장 대표가 단식한다 해서 잠재워질 것 같지는 않다”고 썼다.
그리고는 “장 대표는 모든 일의 총책임자로서 잘못 지은 매듭을 직접 풀어야 한다”며 “장 대표가 스스로를 최악의 궁지에 몰아 건강도 잃고 우리의 후보들조차 유권자들에게 결국 버림받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쏘아붙였다.

당내에선 단식 카드 효과가 일시적일 뿐,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파급력 역시 미미할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당은 물론, 보수 진영 전체로 퍼져가고 있는 비토 기류를 막아낼 만한 세와 입지가 장 대표에겐 없다. 장 대표가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하지 못하는 것도 전당대회 때 자신을 밀어준 강경 보수 지지층 때문이다. 장 대표가 단식을 동원했지만 이번 징계 국면을 무난히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치권에선 장 대표가 다음 카드로 대통합 전략을 꺼내들 것이라고 점친다. ‘보수의 작은집’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핵심 시나리오다. 장 대표는 1월 15일 단식에 들어가면서 “국민의힘은 통일교 게이트 특검과 공천뇌물 특검을 통과시키기 위해 개혁신당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국외 출장 중인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조기 귀국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함께 멕시코·과테말라에서 의원 외교를 한 뒤 1월 23일 귀국할 계획이었지만, 일정을 조정해 장 대표와 함께 공동 단식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 2차 종합특검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와 관련해서도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공동 대응에 나섰다.
장 대표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1월 13일 회동했다. 그리고 만남 직후엔 우원식 국회의장을 찾아 여당이 추진하는 2차 종합특검법안을 1월 15일 본회의에 상정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두 당의 공조가 본격화된 장면으로 꼽힌다.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밀착하고 있는 것은 한동훈이라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치권은 풀이한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에서의 ‘원톱’ 리더가 되기 위해선 한 전 대표를 넘어서야 한다. 이준석 대표 측에선 한 전 대표와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개혁신당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온건하고 중도성향 보수 지지층을 두고 이준석 대표와 한 전 대표는 결국 다퉈야 한다. 나눠먹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 한 전 대표보다는 친정인 국민의힘과 연대하는 게 낫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그는 “전제는 국민의힘이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협력 등 공조에 나선다면 두 당이 약점을 극복할 수 있고 한 전 대표만 외톨이로 남겨진 채 친한계가 원심력을 가질 여지가 아예 사라진다”면서 “정치는 머뭇거리면 경쟁자에게 결국 뒤통수를 맞는 법이다. 선제공격이 최선이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게 시간을 주는 듯하면서 제명 의결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병준 언론인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