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열린우리당 김우남 의원은 KRA 직원들의 연봉이 ‘너무 과하다’며 KRA를 질책했다. 매출액과 순이익은 갈수록 줄어들어 경영 상태는 악화되고 있는데 직원들의 급여는 큰 폭으로 인상되고 있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었다. 2005년을 기준으로 KRA 직원들의 평균연봉은 6385만 원. 같은 공기업인 한국전력(5720만 원), 석유공사(5660만 원) 등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KRA의 ‘돈 잔치’가 매년 도마에 오르자 농림부는 작년 12월 KRA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다음은 당시 감사에 참여했던 농림부 관계자의 말. “그동안 지적됐던 사항들에 대해 빠짐없이 조사했다. 하지만 밝혀낸 것은 신입사원에게 부당한 근속수당을 지급했다는 것뿐이었다.”
농림부는 이 감사에서 KRA가 입사한 지 불과 한두 달밖에 안 된 신입사원 57명에게 6개월 치의 근속수당 57만 원씩을 지급한 사실을 밝혀냈다. 총액으로 하면 3200만 원가량. 부적절하다고 여긴 농림부는 KRA에게 과다 지급한 금액을 직원들로부터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또 관련자 다섯 명에 대한 경고조치도 내렸다.
KRA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직원들에게 지급했던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면 노조의 반발이 거셀 것은 뻔하기 때문. 그렇다고 감독부서인 농림부의 감사결과를 무턱대고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KRA와 KRA노동조합이 2005년 맺은 단체협약 59조다. 이 규정에 따르면 회사는 정근을 한 조합원들에게 연간 기초급의 200% 범위 내에서 정근수당을 주도록 되어있다. 노조는 이 조항을 근거로 사측이 지급한 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주장했다. 즉, 직원들이 받은 57만 원은 기초급의 200% 내에 해당한다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었다.
사측은 노조의 의견을 받아들여 올해 2월 농림부에 ‘감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의신청을 했다. 하지만 농림부는 “감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직원들로부터 돈을 회수하라”며 KRA의 신청을 기각했다.
그 다음에 KRA가 호소한 곳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 KRA는 지난 6월 지노위에 농림부 감사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하지만 지노위도 농림부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지노위는 ‘발령일로부터 계산하여 지급하는 것이 맞다’고 판정했다. 즉, 단체협약에 기초급의 200%를 주도록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정근수당’인 만큼 발령일을 기준으로 실제 근무한 만큼 줘야 타당하다는 것이 지노위 판정의 요지였다.
KRA는 포기하지 않았다. 노조와 협의 끝에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로 이 문제를 들고 갔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 하지만 노조 측은 “지난주에 중노위에서 열린 회의에 참가했는데 분위기가 좋았다. 이번에는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결론 날 것이다”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KRA는 일단 결과를 두고 보자는 입장이다. KRA의 한 관계자는 “회사 측은 누구편도 아니다. 일단 결과를 기다리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노조가 저렇게 강하게 나오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KRA는 노조와 농림부 사이에 끼여 있는 모양새다.
결과가 나와도 KRA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먼저 중노위가 농림부의 감사가 타당하다고 판정하면 KRA는 돈을 회수하기 위해 직원들을 상대로 ‘부당 이득금 반환소송’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노조 측이 법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노조가 조합원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정근수당 지급은 단체협약에 따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노조가 중노위의 결정에 불복해 돈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KRA는 농림부에 행정소송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릴 수 있다.
반대로 중노위가 KRA의 손을 들어줘도 KRA로서는 감독부서인 농림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감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일을 끌고 있는 KRA를 보는 농림부의 심기는 불편해 보인다. 농림부 감사실의 한 관계자는 “공식적인 유권해석이 내려지면 KRA가 따를 것으로 본다”면서도 “KRA가 무슨 법 위에 있는 줄 알고 있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KRA의 또 다른 걱정은 이 싸움이 국민들에게 자칫 ‘잇속만 챙기려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측은 이번 사건을 될 수 있으면 조용히 넘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차라리 우리가 그냥 그 돈을 대신 채워 넣고 싶다”는 KRA 관계자의 말에서 그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