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2일 정청래 대표는 1인 1표제를 골자로 한 당헌 개정안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당무위원회는 1월 19일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무위원 79명 중 61명이 표결에 참석했고, 이 중 2명이 서면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은 1월 22~24일 권리당원 여론조사를, 2월 2~3일 중앙위원회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정 대표는 당무위 의결 직후 “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1인 1표제로 가는 것은 전체 다수에 대한 이익”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대표는 “(1인 1표제가) 누구 개인의 이익이니까 하지 말자는 것은 너무나 고답스러운(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고상하게 여김) 반대 논리”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의 1인 1표제 재추진은 최고위원 보궐선거 결과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당권파 우위 구도가 만들어지자 정 대표가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앞서 1월 11일 민주당 최고위원 보궐선거는 ‘명청 대리전’ 또는 당권파 대 비당권파 구도 속에서 치러졌다. 투표 결과 당권파에서는 이성윤 문정복 후보가 당선됐다. 비당권파에서는 강득구 후보만이 당선됐다. 민주당 최고위가 당권파 4명(서삼석 박지원 이성윤 문정복) 대 비당권파 3명(강득구 이언주 황명선) 구도로 재편된 셈이다.
정청래 지도부 1기 최고위원 중 당권파는 서삼석 박지원 최고위원 정도였다. 이언주 황명선 최고위원과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한 김병주 전현희 한준호 전 최고위원은 비당권파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다.

1월 18일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논란을 촉발해 연일 당권 투쟁 같은 기사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조금만 더 가면 해당 행위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 없는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1인 1표제에 반대한 강득구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박 대변인은 정 대표 연임 관련해서는 “직접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자리나 목표를 정해놓고 일한 적 없다’는 것이 정 대표의 일관된 답변”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강득구 최고위원이 반발했다. 강 최고위원은 같은 날 “당원주권을 말하면서 정작 당원의 눈높이에서 묻는 질문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것을 진정한 당원주권이라고 말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1월 19일에는 “최고위원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당 행위인가”라며 박 수석대변인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박 수석대변인은 사과의 뜻을 밝혔다.
#찬반 갑론을박
비당권파는 권리당원 지지세가 강한 정 대표가 1인 1표제를 도입해 연임을 노리고 있다고 본다. 앞서 정 대표는 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권리당원 투표에서 66.48%를 득표, 박찬대 의원을 압도했다. 국민여론조사에서도 60.46%를 기록했다. 반면 대의원 투표에서는 46.91%로 53.09%를 득표한 박 의원에게 밀렸다. 취임 후 정 대표는 줄곧 권리당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사실 당원권 강화는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을 장악할 때 썼던 방법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 당원주권 강화를 약속했고, 적극적으로 당원 모집에 나섰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70 대 1 수준인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비율을 20 대 1로 축소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는 권리당원 투표 50%,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를 합산해 뽑도록 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친명 단일대오를 구축했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친명계를 주축으로 하는 비당권파가 정 대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비단 1인 1표제 때문만은 아니다. 친명계 내부에선 정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부터 비토 기류가 분출했다. 정 대표가 과거 이재명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사례들이 소환됐고, 자기 정치를 할 경우 이 대통령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 순방 때마다 정 대표는 잡음을 일으키며 친명계의 불만을 샀다. 친명 의원들은 정 대표를 향해 이 대통령 국정 성과가 희석됐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APEC 정상회의 때 ‘재판중지법’ 추진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11월 3일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정 대표를 향한 대통령실의 경고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관련기사 하필 대통령 순방 중에, 노린 건가? 정청래 ‘1인 1표제’ 기습 발표 후폭풍).
연임에 도전하려는 정 대표가 당대표 선거 규칙을 만드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명선 최고위원은 1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선거룰을 개정한 당사자들이 곧바로 그 규칙에 따라 선출된다면 셀프 개정이라는 비판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황 최고위원은 “이번 1인 1표제를 도입하되 적용시점은 다음 전당대회 이후로 하는 것으로 당헌·당규를 개정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당원 의무교육 체계,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 유령 당원 및 사이비 종교 가입 방지 대책 등이 여전히 미비한 상태에서 1인 1표제를 도입할 경우 당원들이 거수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여전히 100명 200명씩 확보해서 당원을 많이 모았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1인 1표제를 해서 선거를 하면 민주주의가 되는 건가”라며 “지금 돈 100만 원을 쓰면 당비 1000원 당원 1000명을 모은다. 그런 것들이 여전히 지역에서 많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정 대표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당권파는 1인 1표제를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정복 최고위원은 1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 와서 다른 부차적인 이유로 보류하거나 문제 삼는 것은 당원들에게 이야기한 민주당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했다. ‘선수가 룰을 만든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차기 지도부부터 적용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프레임과 문제를 만드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1차 부결 때 제기됐던 영남권 소외 문제에 대한 대응책도 제시했다는 입장이다. 전략지역 당원 투표에 가중치 부여 규정과 지명직 최고위원 2명 중 1명을 전략지역 인사로 우선 지명하는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당원 참여 의무도 부과됐다. 당원들이 거수기로 전락하는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규정으로 풀이된다.

더민초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더민초는) 조용하다. (1인 1표제는) 통과됐다는 느낌이다. 의원들도 그냥 대표가 진짜 하고 싶나 보다 한다. 두세 번씩 이거 가지고 또 싸워야 하나 이런 느낌도 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그래도 자부심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대의원과 온라인 당원을 똑같이 취급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다. 달래는 카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찬성 측인 한 민주당 관계자는 1인 1표제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다. 미루다 보면 영원히 도입할 수 없다는 이유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앙위원회 통과가 유력하다고 전망했다. 지난번에는 위원들의 무관심, 시스템 문제 등으로 부결됐다고 했다. 당이 신경을 쓰고, 이슈가 큰 만큼 1인 1표제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의 갈등은 1월 19일 이 대통령 만찬을 계기로 사그라진 모습이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정 대표에게 “혹시 반명이십니까”라고 묻자 정 대표가 “우리는 모두 친명이고 친청(친청와대)입니다”라고 응수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권력 투쟁이 벌어진 것인데, 이것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화해시킨 것”이라며 “1인 1표제를 주장하는 곳과 반대하는 곳에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중재하는 상황까지 가면 되겠나’라며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최 평론가는 “이 대통령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훨씬 더 높다. 대통령 지지율 까먹는 행동을 하면 욕을 먹는다. 그래서 그런 압박이 있기 때문에 서로 부딪히는 상황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