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3일 주식시장은 거래가 시작되자마자 폭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눈에 띄었던 점은 한국 증권가의 공룡으로 등극한 미래에셋증권이 10%가 넘는 하락세를 보이며 폭락하고 있었다는 점. 미래에셋은 오후가 되면서 상장 이후 처음으로 장중 한때 가격제한폭까지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던 것이다.
이날 미래에셋이 집중포화를 맞은 것은 아침부터 돌기 시작한 루머 때문이었다. 여의도 증권가 펀드매니저들의 메신저에는 ‘미래에셋 선행매매설’ ‘400억 원 차익설’ ‘금감원 조사설’ ‘검찰 고발설’ 등이 쉴 새 없이 전해졌다. 각각 다른 소문인 것처럼 포장됐지만 사실 이날 돌아다닌 루머의 내용은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 내용은 이렇다.
미래에셋의 임원급 인사인 A 씨가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에서 매입할 종목을 차명계좌를 통해 미리 매수해 놓은 뒤 펀드자금으로 그 종목들을 사들여 주가를 끌어올렸고 주가가 오르면 차명계좌의 주식은 팔아치워 400억 원을 벌었다는 것이다. 또 미래에셋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서는 A 씨를 해고하고 검찰에 고소할 것이며 금감원도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 조사 중이라는 루머로까지 확대됐다.
루머는 메신저와 입소문, 인터넷 증권사이트 등을 통해 급속히 퍼지면서 선행매매 대상으로 지목된 종목들의 주가도 끌어내렸다. 동양제철화학, 현대중공업, 두산, SK, 효성 등이 급락세를 보인 것. 이 종목들은 단지 ‘미래에셋 관련주’라는 이유만으로 유탄을 맞은 셈이다.
오후가 되면서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라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꽁꽁 얼어붙은 투자심리는 끝내 풀리지 않았다. 이날 미래에셋 주가는 전날보다 14.29% 하락한 13만 8000원으로 마감했다. 하한가는 가까스로 면했지만 불과 며칠 전 20만 원을 넘보던 주가가 순식간에 15만 원 아래로 주저앉고 말았다.
미래에셋은 이날 “루머의 진원지를 추적해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내며 강경대응에 나섰다. 특히 소문의 당사자인 A 임원이 직접 나서 “멀쩡히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악성루머가 시작됐는지 모르겠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구체적으로 아직 파악하진 못했지만 미래에셋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공매’ 세력들이 악성루머를 퍼뜨려 주가를 더욱 하락하게 만들어 시세 차익을 거두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것.
공매란 말 그대로 ‘없는 걸 판다’는 뜻으로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없는 주식을 팔 수 있는 것은 주식매매가 매매일자와 결제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주식은 매매계약이 체결되면 3일 후에 결제를 하게 된다. 즉, 주식을 팔기로 계약을 맺으면 3일 안에 주식을 구해서 사기로 한 사람에게 주면 되는 것이다. 주로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예상대로 주가가 하락하게 되면 많은 시세차익을 낼 수 있지만 예상과 달리 주가가 상승하게 되면 공매도한 투자자는 손해를 보게 된다. 또 주식을 확보하지 못해 결제일에 주식을 입고하지 못하면 결제불이행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위험이 큰 제도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사실상 일부 기관투자자를 제외하면 금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A 임원의 말대로라면 이날 퍼진 미래에셋 괴담의 장본인은 기관투자자 중 하나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의도대로 미래에셋과 주식시장이 폭락했으니 이 기관은 이날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자 증권가에서는 미래에셋 괴담의 실체와 함께 루머의 진원지 찾기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지목된 쪽은 B 증권사였다. 국내 굴지의 증권회사인 B 사는 최근 미래에셋이 증권가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면서 증권업계 선두주자로 뛰어오른 것에 관해 불편한 심기를 여러 차례 드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래에셋은 B 증권사의 주식도 대량으로 매집해 무시 못할 수준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증권가에서는 ‘B 증권이 미래에셋 죽이기에 나섰다’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루머의 진원지로 은행권을 지목하고 있다. 은행들은 최근 펀드 붐이 일면서 예·적금이 빠져나가 애를 먹고 있다. 은행에 돈이 마르는 기현상이 일어나면서 은행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앞 다퉈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하고 이로 인해 시중금리까지 급등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것.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은행들이 이 같은 악성 루머를 유포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 ‘은행발 미래에셋 괴담’의 내용이다.
증권가 한 소식통은 “은행권이 펀드로 몰리는 돈을 차단하고 자금 숨통을 틔우기 위해 악성 루머를 퍼뜨린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며 “또 한편에서는 은행권으로의 자금 유입을 통해 금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작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루머의 근원지에 관한 루머’가 계속 확대되면서 전혀 엉뚱한 소문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미래에셋 자작극설’과 ‘인사이트펀드 대선자금설’ 등이 그것. ‘미래에셋 자작극설’은 미래에셋이 스스로 이런 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폭락시켰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의 영향력 확대를 시기하는 ‘안티세력’이 급증하자 “우리를 건드리면 다 같이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일을 꾸몄다는 다소 어이없는 얘기다.
‘인사이트펀드 대선자금설’도 비슷한 맥락이지만 한걸음 더 나간 얘기다. 미래에셋이 주가를 폭락시킨 뒤 인사이트펀드에 몰린 수조 원의 자금을 동원해 주식을 사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렸으며 이 돈이 특정 후보의 대선자금으로 동원됐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미래에셋에 대한 12월 정기검사에서 이런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금감원 전홍렬 부원장은 11월 27일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대한 정기 종합검사에서 선행매매도 중요 항목으로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펀드매니저가 보유하던 미래에셋증권 미상장 주식이 상장 이후 막대한 차익을 올리는 과정에서 루머가 돌았을 것이라는 미래에셋 측의 주장이 맞는지 등을 모두 점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연 금감원은 ‘루머의 근원지에 관한 루머’까지 나돌고 있는 ‘미래에셋 괴담’의 배후를 파헤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