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대표는 전당원 재신임 투표, 불신임시 의원직 사퇴까지 내거는 벼랑 끝 전술로 응수했다. 24시간 필리버스터, 단식투쟁에 이은 극약 처방이었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선이 높다. 국민의힘의 반복되는 내홍을 두고 보수 진영에선 지방선거 위기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제명 결정 후 한동훈 전 대표 지지자들은 장외집회를 잇따라 열면서 장동혁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주최 측이 “1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할 만큼 적잖은 인원이 모이는 대규모 정치 행사가 됐다. 정치권에서도 한 전 대표 세에 놀라는 기류가 감지됐다. 한 전 대표 지지자들은 집회를 통해 장동혁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1월 31일 서울 여의도 집회에서는 “제명해도 소용없다, 살아난다 한동훈” “장동혁을 끌어내자” “윤어게인 꺼져라” 등의 거친 구호가 나왔다. 친한계인 함운경 서울 마포을 당협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장동혁은”을 선창하자 참석자들이 “사퇴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한동훈 지지 행사이자 장동혁 퇴진 집회였다.
한 전 대표는 집회엔 나오지 않았지만 팬 플랫폼 ‘한컷’에 “고맙다” “날씨가 덜 추워져서 다행” “좋은 정치로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댓글을 실시간으로 달았다. 자신에 대한 전폭적 지지가 시위로 분출된 것에 대해 한 전 대표가 고무됐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사실 한 전 대표와 그의 지지자들 반발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장동혁 지도부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장동혁 지도부는 오 시장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뿐 아니라 다수 국민의힘 후보들 승리까지 견인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앞서 오 시장이 장 대표의 단식 투쟁을 응원하고 나설 때만 하더라도 양측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한 전 대표 제명 후 오 시장은 스탠스를 바꿨고, 장동혁 지도부는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오 시장은 1월 29일 한 전 대표 제명 결정이 나온 직후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장동혁 대표가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며 “장 대표는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쏘아 붙였다. 오 시장은 “장 대표는 절체절명 위기 속 대한민국의 제1야당의 대표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면서 “그래야 모두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오 시장은 2월 2일 재차 장동혁 대표를 겨눴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서울시 부동산 정책협의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른바 ‘장동혁 디스카운트’가 이번 지방선거를 덮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매우 크다”고 운을 뗀 뒤 장 대표 사퇴를 요구한 입장을 유지하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달라질 게 없다. 장 대표의 입장과 노선이 변하지 않으면 제 입장도 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장동혁 리스크로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이 대패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때 가서 책임을 묻는 것보다 지금 그 노선 변화를 강력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며 “그런 입장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변화할 생각이 없으면 지금 당장 물러나라는 압박이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오세훈 시장만큼의 충격은 아니지만 이웃사촌으로 생각했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일침도 장 대표로선 뼈아픈 지점이다. 이 대표는 장 대표 단식 투쟁 과정에서 해외 일정까지 단축해가며 장 대표를 찾아 위로했다. 장 대표가 이 대표와 손을 잡고 한 전 대표를 고립시키려 한다는 시나리오까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한 전 대표 제명 파동 과정에서 이 대표는 장 대표 밀어내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이 대표는 2월 3일 친정을 찾아가 장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국민의힘 초·재선 의원 중심의 소장파 모임인 ‘대안과 미래’가 주최한 ‘위기의 한국 보수에 대한 진단과 해법’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해서였다. 그는 최근 개혁신당이 국민의힘에 거리를 두는 것 같다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장동혁 대표는 2022년 당시 총선을 앞두고 황교안 대표가 유승민을 주저앉히기 위해 한 것처럼 밖으로는 통합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를 다 빼고 통합할 것이다. 그것을 다 아는데 왜 내가 그 판에 들어가겠느냐. 저는 정치 행보마다 가설을 세우고 내 방식을 증명하는 게 좋다. 국민의힘과 같이하면 내 가설을 증명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당 안팎에서 원심력이 잇따라 만들어지면서 장 대표 리더십이 흔들리고 지도부의 권위는 추락하고 있다”며 “2월 3일 의원총회에서 원외 최고위원과 친한계 의원 간에 반말 고성이 오갔는데 이 장면만 봐도 국민의힘 혼란 상황을 단적으로 증명한다”고 했다.

수세에 몰렸던 장동혁 대표는 2월 5일 초강수를 꺼내며 ‘반장(反張) 전선’에 대한 정면 돌파에 나섰다. ‘재신임 투표’ 카드였다. 퇴진 요구가 빗발치자 “나가라면 나간다. 의원직까지 내던진다”며 벼랑 끝 작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2월 5일 오후 제주 방문에 앞서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열어 “누구라도 내일까지 사퇴와 재신임을 요구하면 저는 전당원 투표를 통해 당원의 뜻을 묻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발 더 나아가 재신임되지 않는다면 당 대표직은 물론 의원직도 버리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재신임 투표를 요구하는 이들에게는 의원직, 시장직 등 정치생명을 걸라고도 했다.
친한계 의원 16명과 오세훈 시장은 한 전 대표 제명 후 장 대표 사퇴를 공개 요구했다. 이후에도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는 등 거취 압박을 이어왔다. 재신임 투표는 소장파이자 비상대책위원장 출신인 김용태 의원이 처음 제안했다.
재신임 투표나 의원직 사퇴 배수진은 언뜻 보면 돈키호테식 돌격으로 보이지만 치밀한 계산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당원들을 대상으로 재신임 여부를 묻는다면 당원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장 대표가 유리하다는 평가다. 게다가 “대표를 치려거든 그런 주장을 하는 당사자도 직을 걸어야 한다”는 옵션까지 내걸면서 ‘반장 세력’의 운신 폭을 좁혔다.
한국갤럽이 1월 23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국민의힘 지지자 48%는 한 전 대표 제명 결정이 적절하다고 답변, 부적절 답변(35%)보다 많았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2월 5일 공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층 37%는 한 전 대표의 제명이 향후 당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고 답변했다.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응답은 26%에 그쳤다(위 두 조사 모두 자세한 내용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장 대표의 재신임 카드엔 리더십을 공고히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지방선거 국면으로 진입, 친한계의 반발 통로를 완전히 봉쇄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한 전 대표의 고립 작전과도 맞닿아 있다. 박수영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장동혁의 정면 돌파, 지선 승리로 열매 맺자”고 지지했다. 빠른 지방선거 체제 전환을 촉구하는 당권파의 목소리를 담은 것으로 읽힌다.
장 대표는 한쪽에서 이 같은 제안을 하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포용적 리더십을 보여줬다. 장 대표가 6·3 지방선거 전 친한계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을 대거 교체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이는 보류됐다. 2월 5일엔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서 당심 반영비율을 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국민의힘 지방선거기획단은 ‘당심 70%’를 권고했었는데 지도부가 이를 수용 하지 않은 셈이다.

오세훈 시장은 장 대표 제안이 나온 직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얘기하라? 직을 걸고 하라? 참 실망스럽다”며 “국민이 국회의원직, 시장직을 줬는데 그 자리를 걸고 당의 노선 변화를 요구하라? 이건 공직에 대한 장 대표의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친한계 한지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퇴 요구에 대한 답이 아니라 사퇴하지 않기 위한 조건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 이미 결과가 보이는 판을 깔아놓고 ‘당원이 결정한다’는 건 책임 정치가 아니라 계산 정치”라며 “혼자 판 깔고 규칙 만들고 심판 보고 혼자 승리하는 정치, 이건 책임 회피의 연출”이라고 비판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최근 국민의힘 내부의 혼란 상황을 두고 “지방선거는 포기했고 이후 다가올 당권 교체에 관심이 집중된 한심한 작태”라는 자성이 쏟아진다. 장 대표는 정치적 라이벌을 없애는 데 집중하고 있고, 한 전 대표 역시 이에 맞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궁리만 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뒤를 잇는다. 오세훈 시장이 장 대표에 대해 발끈하는 것을 두고도 지방선거 패배 이후 당권을 노린 행보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는 국가 간에도 인도주의 원칙이 적용되는데 지금 국민의힘 내부 싸움은 한 치의 여유도 두지 않은 채 상대를 밀어내기 바쁘다”며 “선거 승리를 통해 정당이 지향하는 정책을 폄으로써 정당의 존립이 가능한데 지금 국민의힘은 정당 존립이 아니라 몇몇 정치인의 권력욕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이로 인해 보수정당 지지자들의 상실감이 너무 클 것”이라고 한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병준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