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회장은 LG그룹으로부터 분리해 GS그룹을 창립한 2004년 이후 ‘이미지 메이킹’에 많은 공을 들였다. LG에서 구본무 회장의 그림자 역할로 인해 허 회장은 오랜 기간 ‘은둔의 경영자’로 통했고 이를 탈바꿈해보고 싶었던 것. 과거와는 달리 그는 적극적으로 기자간담회를 갖는 한편, “M&A로 성장하겠다”는 등 공격적인 발언을 즐겨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허 회장의 M&A 발언은 구두선(口頭禪)에 그친 듯하다. GS그룹은 2005년 GS리테일이 코오롱마트로부터 10개점을 500억 원에, GS홈쇼핑이 강남케이블TV(현 GS강남방송) 지분 51%를 1600억 원에 인수한 두 건이 전부다. 규모로 따지면 2100억 원에 불과하다. 2004년 이후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 까르푸(현 홈에버), 월마트, 인천정유(현 SK인천정유), 한국통운, 대우건설 등 굵직한 매물이 나왔지만 속절없이 쳐다보기만 한 것.
더욱이 허 회장은 최근 나온 대형매물인 대우인터내셔날, 대우조선해양 등은 아예 “비싸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도 한편으로 허 회장은 “M&A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고 계속 부르짖었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허 회장의 이러한 이야기를 동화책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늑대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기도 했다.
재계에 이런 지적에 GS 측은 발끈했다. “적정한 가격의 매물이나 그룹에 필요한 매물이 없어서 그런 것인데 왜 폄하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재계 인사들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철저하게 재무제표를 보고 사업을 결정하는 것이 허 회장을 비롯한 GS 일가의 경영방식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허 씨 일가가 구 씨 일가와 공동경영을 하면서 재무나 경리 쪽을 맡은 데다 공동오너로 있었다고는 하나 역할은 전문경영인에 가까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규사업 진출 등 굵직한 그룹 내 결정은 구 씨 일가가 했고 허 회장 등 허 씨 일가는 이를 뒷받침해 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말로는 계속 M&A를 통해 성장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행동에 들어가서는 워낙 신중하다보니 엇박자가 나온다는 얘기다.
그런 허 회장이 이번 하이마트 인수전에서는 그동안 소극적인 자세에 대한 시선을 의식한 듯 최고가 2조 원(추정)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유진그룹보다 500억 원을 더 써낸 것이라고 한다. 허 회장은 이렇게 변모된 모습을 보였음에도 결국 유진에 밀려 하이마트 인수에 실패했다. 재계서열에서 한참이나 밀리는 유진과의 싸움에서, 그것도 최고금액으로 응찰한 허 회장으로서는 ‘굴욕적인 사건’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굴욕’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대형 매물은 물론이거니와 중소형 매물도 상당히 많이 나올 것이고 성장동력을 M&A에서 찾고 있는 허 회장으로서는 입질을 계속할 것임이 자명하다.
그런데 허 회장을 둘러싸고 있는 핵심브레인은 대부분 비슷한 성향의 경리·재무통들이다. 최측근인 서경석 GS홀딩스 사장은 재무부 조세정책과장, LG투자증권 사장을 역임했다. 재무통이더라도 신규사업을 추진할 역량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상대적으로 취약할 것이란 분석이다. 허 회장이 번듯한 대형 매물을 M&A해 ‘굴욕’에서 벗어날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선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