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살았던 서울 중구 신당동의 가옥 일대를 ‘박정희 기념공간’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지난 15일 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박 전 대통령의 생가에는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이 문을 열었고 높이 5m의 전신 동상이 세워졌다. 이처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박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시설과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사업은 박 전 대통령을 기리는 법인재단의 돈으로 추진되기도 하지만 국민의 세금인 국가와 지자체의 예산으로 집행되는 경우도 있다. 전국적으로 계획되고 세워진 박 전 대통령 관련 기념관들을 찾아가봤다.
서울 중구 신당동 62-43번지 가옥. 이곳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쿠데타 전후로 살았던 집이다. 올해 1월부터 서울시 중구청은 박 전 대통령의 신당동 가옥과 그 일대를 ‘박정희 기념공간’으로 조성하려는 사업의 타당성 검토를 시작했다.
박정희 기념공간 사업은 박 전 대통령 가옥 및 인접한 다가구주택건물 3, 4채를 매입 후 철거한 뒤 기존 공영주차장 부지(3664㎡)와 합쳐 지상에는 기념공원을, 지하에는 박 전 대통령의 기념관을 만들어 관광명소로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중구는 이에 대한 타당성 검토 결과가 상반기에 나오면 구비와 시비, 국비지원 비율 등 구체적 계획과 예산을 세울 방침이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유적을 찾는 관광객들이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구미로만 갈 게 아니라 가까운 서울에서도 둘러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의견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흔적(?)은 이미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은 여전히 현재진형형이었다.
중구청 관계자의 설명과는 달리 이미 서울에는 박 전 대통령 관련 기념관이 존재한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그것이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220억 원을 들여 9200㎡ 부지 위에 전시관과 도서관의 연건평 5262㎡ 규모의 건물로 지어졌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사업은 1999년 8월 ‘사단법인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가 설립되면서 추진됐지만 국고 보조금 문제로 기념사업이 엎어질 위기도 있었다. 사업 시작 당시 국고보조금 200억 원과 국민기부금 500억 원을 조달하기로 계획했으나 국민기부금 모금이 부진하자(모금 금액 100억 원) 지난 2005년 3월 국가에서 국고보조금 지원 전액 취소를 결정했던 것이다. 기념사업회와 국가 간의 행정소송이 이어졌고 결국 지난 2009년 4월 정부의 보조금 지원 취소가 부당하다는 것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다시 사업이 진행됐다. 그런 진통 끝에 사업 시작 13년 만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완공됐다.
현재 기념 전시관은 운영하고 있지만 도서관은 아직 시민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서울시와 박정희기념사업회 측은 도서관의 운영과 성격 때문에 대립했다. 서울시는 “다양한 책을 구비한, 시민들을 위한 공공 도서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기념사업회에서는 “박정희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므로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과 자료들만 구비할 계획”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
서울을 벗어나도 박 전 대통령 관련 기념사업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난 구미시와 경북도청이 가장 앞장서서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5일 박 전 대통령의 생가에 ‘박정희대통령 민족중흥관’이 들어섰다. 58억 5000만 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민족중흥관은 부지 2328㎡, 연면적 1207㎡ 규모로 전시실 3개소와 돔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었다. 58억 원은 구미시에서 3년 동안 예산을 투입했다.
박정희대통령 민족중흥관은 박 전 대통령 구미 생가 옆에 지난 2011년 11월 세워진 높이 5m의 박 전 대통령 전신 동상과 함께 ‘박정희 생가 추모관, 공원화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전신 동상은 성금 모금 6억 원과 지자체 예산 6억 원, 총 12억 원을 들여 만들어졌다).
박정희대통령 민족중흥관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생가와 전신 동상 인근 7만 7000㎡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추모관을 건립할 예정이다”라며 “박정희 생가 공원화가 최초 계획된 1995년에 구미시 예산이 286억 원 정도 책정됐는데 지금은 3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경북도에서는 오는 2015년까지 박 전 대통령의 생가 뒤편 부지 24만 6000㎡에 792억 원(국비 396억 원, 도비 119억 원, 시비 227억 원)을 투자한 ‘새마을운동테마공원’을 건립하겠다고 계획했다.
박 전 대통령이 1937년 4월부터 1940년 3월까지 경북 문경시의 문경 서부심상소학교(현 문경초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하숙했던 청운각. 이곳도 기존 부지 1079㎡를 2892㎡로 확장하고 사당과 기념관을 새로 건립하는 등 공원을 조성해 지난해 6월 13일 준공식을 가졌다.
새로 만들어진 사당(31.5㎡)에는 전국 최초로 그린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과 분향소가 있고, 기념관(87.5㎡)에는 박 전 대통령 제자들의 육성 녹음 영상과 관련 서적 및 자료가 전시돼 있다. 청운각을 관리하는 한 관계자는 “청운각 옆 문경초교 선생 사택을 허물고 사당과 기념관을 만들었다”며 “문경시에서 예산 17억 원을 들였다”고 전했다.
지난해 4월에는 울릉군이 ‘박정희 기념관’을 세운다는 계획을 밝혀 논란이 됐다. 1962년 박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울릉도를 방문해 섬 일주도로 개설과 항만시설 확충 등 울릉도 발전의 초석을 다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게 울릉군의 설명이었다.
울릉군의 관계자는 9억 6700만 원을 들여 울릉읍 도동리 옛 울릉군수 관사(지상 1층, 153㎡)를 재정비해 기념관으로 조성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 관사는 박 전 대통령이 울릉도를 방문했을 때 하룻밤 묵었던 곳이었다. 하룻밤 묵었던 것을 가지고 박정희 기념관을 짓는 게 말이 되느냐는 문제가 불거지자 울릉군청의 한 관계자는 “박정희 기념관은 가칭이고 울릉도 근대문화유산 관광자원 개발사업이라고 보면된다”며 “기념관은 해방 이후 울릉도와 독도의 발전 역사를 담을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1962년 박 전 대통령이 울릉도를 방문한 이후 울릉도 종합발전계획이 세워져 저동항 개발이나 일주도로, 통신, 전기 등이 해결됐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자료가 많이 전시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와 관련된 기념관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육 여사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군은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12월 25일부터 오는 2017년까지 140억 원을 들여 옥천읍 교동리의 육 여사 생가 주변에 ‘퍼스트레이디 역사문화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곳에는 육 여사를 비롯해 역대 대통령 부인과 신사임당 등 여성리더를 소재로 한 기념관, 교육관, 공연장, 숙박시설, 공원 등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옥천군은 기념관 사업을 위해 국·도비 40억 원을 지원받고, 군비 1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군 관계자들은 “옥천군의 재정자립도가 21%를 넘지 못하는 등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데 무리한 사업을 진행한다”고 반발했다.
이밖에도 경북 청도와 포항에는 새마을운동 발상지 공원이 세워졌고, 철원군 갈말읍에 위치한 군탄공원을 옛 이름인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 공원’으로 복원하고 동상을 세우려는 운동 또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예결위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은 “최근 5년 동안 박정희 관련 사업·시설에 국가와 지자체 예산 1270억 원이 투입됐다”며 박정희 기념사업의 지나친 예산 집행을 비판했다.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기념회 사업은 추진 과정에서 법적 하자가 없으면 제재를 가할 수 없다”며 “각 지자체별로 벌이고 있는 사업과 치적 쌓기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국민들의 아까운 세금만 낭비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 경상북도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 세운 5m 높이의 전신 동상. 박 전 대통령의 동상 중 가장 크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기념관과 시설들이 생겨나면서 박 전 대통령의 동상도 전국 곳곳에 세워졌다. 지난해 11월 파악된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은 적어도 6개, 그리고 2개의 동상이 추가로 세워질 예정이다. 현재 세워진 동상 6개 중 4개가 경북에 있고, 추가로 제작될 2개 중 하나도 경북에 만들어질 예정이다.
가장 크고 유명한 동상은 지난해 11월 경북 구미시 박 전 대통령 생가 근처에 세워진 높이 5m의 전신 동상이다. 박 전 대통령이 연설문을 들고 걸어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래된 동상은 무엇일까. 서울 영등포구 문래공원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의 흉상이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이 흉상은 지난 2000년 11월 5일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에 의해 철거됐다가 이틀 만에 재설치되기도 했다.
지난 1991년 구미초등학교에 세워진 박 전 대통령의 전신 동상 이후 한동안 동상 설립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2009년 포항시가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 소파에 앉아있는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을 만들면서 다시 동상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2011년 8월에는 경북 청도군 새마을운동 발상지 광장에 훈시하는 자세의 박 전 대통령 전신 동상이 만들어 졌고, 같은 해 11월 경기도 성남 새마을중앙연수원 새마을역사관에도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밖에도 지난해 6월 새단장을 한 경북 문경의 청운각에 박정희 동상이 세워질 계획이고,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 공원화 사업 추진위원회’는 강원도 철원 군탄공원의 명칭을 옛 이름인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 공원’으로 바꾸는 운동을 추진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처음 궁리한 곳” vs “처음 일어난 곳”
▲ 문경시에 위치한 청운각(왼쪽)과 경북 청도군에 위치한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
1969년 8월 경남지역 수해복구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대통령 전용열차를 타고 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마을 주민 스스로 지붕을 개량하고 담장을 정돈하는 등 잘 가꿔진 경북 청도군 신도1리의 모습을 보고 열차를 정차시켰다.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협동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모습을 본 박 전 대통령은 1970년 4월 한해대책지방장관회의에서 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마을운동을 제창한다. 이를 계기로 신도1리는 ‘처음으로 궁리하던 곳’, 즉 발상지(發想地)가 됐다.
또 다른 일화. 1971년 9월 17일 박 전 대통령은 전 국무위원과 전국 시장, 군수를 대동하여 경북 포항시 문성리를 방문해 비교행정회의를 주재하며 “전국 시·군수는 문성동처럼 지도해 ‘자조·자립·협동정신’ 새마을운동 정신 주입에 점화역할을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새마을 가꾸기 사업은 새마을운동으로 이름을 바꾸고 운동이 본격화됐다고 한다. 문성리가 ‘처음 일어난 곳’이란 의미의 발상지(發祥地)가 된 것.
서로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며 신경전을 벌여온 포항시와 청도군은 결국 법정 분쟁까지 가게 됐고, 법원은 지난 2009년 경북도가 ‘경상북도 새마을운동 97년사’ 연구 용역을 통해 청도군 신도1리를 ‘새마을운동 발상지’라고 인정하며 논란은 매듭 되는 듯했다. 그러나 포항시 측이 이에 반발하며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지난 2009년 9월 경북 포항시는 사업비 40억 원을 들여 포항시 문성리 일대 부지 7500㎡에 마찬가지로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을 개관했고, 청도군 역시 4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지난 2011년 8월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을 건립했다. 똑같은 이름의 기념관이 서로 다른 지자체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두 지자체 사이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경북도까지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을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2015년까지 완공 목표를 하고 있는 구미시의 새마을운동테마공원은 총 면적 24만 6000㎡에 792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대형 사업으로 한마음 공원과 역사이해공원, 창의연수공원, 그리고 글로벌공원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미 청도와 포항에 새마을운동기념관이 있는 마당에 왜 구미시에까지 테마공원이 들어서야 하는지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