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지난해 여름부터 눈길을 끄는 여행사 전단지가 등장했다. 누가 봐도 혹할 조건이었다. 주관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1만 원 이하의 돈으로 하루 온종일을 여행하고 먹을거리까지 해결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교통비도 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최고급 한정식 제공은 기본이고 떡, 음료, 술 등 간식도 준다니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목적지는 다름 아닌 육영수 여사의 생가. 2011년 5월 충북 옥천군청이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을 끝마치고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곳으로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진 어르신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한때 대선 시즌과 맞물려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면서 자취를 감추는 듯했으나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다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육영수 여사 생가. 사진제공=옥천군청
관광객을 모집하는 형태도 다양했다. 초기엔 어르신들이 모인 공원이나 전철역을 찾아 전단지를 건네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약발이 다하자 아파트 단지를 돌며 적극적인 홍보활동도 서슴지 않았다. 일부 지역의 아파트에서는 “선착순으로 저렴한 가격에 여행을 보내주겠다”는 광고방송을 한 곳도 있었다. 이마저도 효과가 다됐음인지 최근엔 불특정다수에게 홍보문자까지 보내는 수준이 됐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행상품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점이다. 육영수 여사 생가투어만으로는 눈길을 끌 수 없게 되자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까지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최근엔 인근의 유명 관광지까지 포함시키며 모집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문제는 일부 여행사에서 관광객들에게 쇼핑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영수 여사의 생가 관광을 홍보하는 전단지. 1만 원 저렴한 가격이 눈길을 끈다.
이로 인한 피해액도 상당하다. 옥천군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육영수 여사 생가 방문객은 하루 평균 1500명에 달한다. 대선 이후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단체형식으로 방문하고 있으며 주말엔 하루 200여 대의 관광버스가 방문할 정도라고 한다. 지난달 여행을 다녀온 김 아무개 씨(여·52)는 “쇼핑센터에서 가이드끼리 말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버스 한 대당 100만 원(제품 판매액)씩은 채워야 한다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한 달에 수십억 원씩 물건을 팔아먹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육영수 여사 생가를 관리하는 옥천군청 관계자는 “관광지라기보다는 문화재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입장료도 받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개방하는 장소다. 때문에 어떠한 제지를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론 어렵다”고 밝혔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관광객 모집 꼼수 ‘성지순례’ 등 내세워 단체손님 호객행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생가 관광이 ‘약장사’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강해지자 여행사마다 돌파구를 찾아 나섰다. 기존의 전단지 돌리기로는 사람을 끌어 모으기 힘들게 되자 단체손님으로 눈을 돌린 것. 취재결과 시골 노인정은 물론이고 최근엔 각종 동호회 및 종교단체까지 손길을 뻗친 것으로 드러났다. 노인정과 연계해 떠나는 여행은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었다. 경북 성주의 한 노인정 총무는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지원금을 이용해 정기적으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여행을 떠난다”며 “가격도 저렴했기에 선착순으로 지원을 받아 여행을 다녀왔는데 다른 곳보다 쇼핑을 강요해 어르신들께 죄송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보다 젊은 나이대를 공략할 땐 치밀하게 접근했다. 가이드의 화려한 언변에 속아 지난 14일 단체여행을 떠났던 유명 산악동호회 관계자는 “단돈 6000원에 리무진 버스에 점심까지 제공한다니 누가 거절하겠는가. 계약을 하고 참석을 원하는 회원들이 입금을 시작하자 그때서야 ‘협찬사 방문이 있다’고 말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렇게 떠난 1일 일정의 여행코스는 상당히 빡빡했다. 아침 8시 서울을 출발해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둘러보고 인근에 위치한 정지용 시인 생가까지 방문해야 했던 것. 중간에 점심도 먹고 건강식품판매점 두 곳까지 들러야 했으니 마지막 특별코스였던 ‘만인산 얼음축제’는 발도장만 찍고 오는 수준이었다. 반면 종교단체와 접촉할 때는 ‘사찰순례’ ‘성지순례’라는 단어를 앞세워 호객행위를 벌였다. 지방의 한 불교신도회는 무려 17대의 차량을 동원해 박정희 전 대통령 및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방문했다. 두 차례 생가 인근의 절도 들러 사찰순례라는 타이틀에는 어긋나지 않은 관광코스였으나 어김없이 쇼핑센터 방문도 이뤄졌다. 이 역시 계약 당시에는 언급하지 않았던 코스였다. 이번 순례를 기획했던 불교신도회 관계자는 “우리뿐만 아니라 유사한 형태로 순례를 떠나는 팀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안다. 계약 당시에는 쇼핑센터에 관한 아무런 얘기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피해사례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