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씨는 2월 22일 오후 8시 30분께 화성시 동탄신도시 한 아파트 15층 세대 현관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뿌리고 빨간색 래커 페인트로 낙서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위 사실이 담긴 유인물 40여 장을 주변에 뿌리고 도어록에 본드를 바른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 씨는 언론 보도를 통해 사적 보복을 대신해 주는 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2월 14일 해당 조직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에 접속해 범행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2월 25일 군포시에서도 돈을 받고 일면식 없는 피해자의 주거지 현관에 래커칠을 하고 협박성 유인물을 살포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평택시에서 사적 보복을 대행한 혐의로 40대 남성 등 3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 피의자 모두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상선으로부터 범행 대가로 50만~80만 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받기로 했다”며 “상선의 신원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텔레그램에서 한 보복 대행 채널이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MBN 보도에 따르면 이 조직은 의뢰인이 특정인에 대한 보복을 요청하면 채널 운영자가 ‘특공대원’으로 불리는 실행자를 모집해 범행을 지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실행자에게는 1건당 80만~100만 원 수준의 보수가 제시됐다.
이들은 주로 학교 폭력 가해자나 일명 ‘계좌팔이’를 보복 대상으로 삼아 인분 테러나 래커 낙서, 개인정보가 담긴 유인물 살포 등의 방식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계좌팔이는 자신의 계좌를 도박 사이트 등 범죄 조직에 판매한 뒤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을 지칭한다.
올해 1월 서울에서 이 조직의 의뢰를 받아 범행을 저지른 피의자가 검거됐고, 이후 관련 실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조직의 존재가 알려졌다. 이 조직의 운영자는 “3월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공지를 남긴 뒤 잠적했다. 경찰은 수법의 유사성 등을 고려할 때 최근 경기 지역에서 발생한 보복 대행 사건 역시 이 조직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일요신문i'는 해당 조직으로 추정되는 텔레그램 채널이 최근 활동을 재개하려는 정황을 확인됐다. 2000명 넘게 가입한 텔레그램 오픈채팅방에는 ‘월 500만 원에 추가 수당을 지급한다’며 보복 대행 직원을 모집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모집 분야는 특공대원, 온라인 홍보, 오프라인 전단지 부착, 인력 구인 실장 등이었다.
구인글을 올린 계정 프로필에 게시된 소개 포스터에는 “모든 법적 책임을 지겠다”, “원한을 해결해 드린다”는 문구와 함께 신상정보 파악, 온라인 박제, 인분 테러, 전단지 살포 등을 수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계정과 연동된 채널에는 보복 대행을 위한 제보 글이 올라와 있었다. 해당 글에는 보복 대상의 이름과 지역, 나이, 전화번호, 주소 등 신상정보와 제보 사유가 함께 적혀 있었다. 아울러 특정 의뢰를 수행할 실행자를 모집한다며 이에 대한 보수를 가상화폐로 지급한다는 내용도 확인됐다. 특공대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가상화폐로 보수를 지급한다는 점 등은 문제가 됐던 조직의 운영 방식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기자가 해당 채널 명칭을 토대로 운영진들이 들어가 있는 본 채널도 확인해 입장을 요청했지만 운영진은 “운영진 또는 지인 추천이 없으면 채널 입장이 불가능하다”며 거부했다.

텔레그램을 통한 사적 보복 대행 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실제 처벌은 실행자 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대화 기록이 사라지는 텔레그램 특성상 보복을 지시한 윗선을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복 범죄를 대행한 피의자를 검거해서 디지털 포렌식 등 역추적에 나서더라도 범행 교사 내용이 담긴 텔레그램 대화방이 없어지면 추적이 어렵다”며 “윗선까지 검거하면 보복 범죄 관련 공범으로 수사가 가능하지만 실행자만 검거할 경우 주거침입 등 개별 범죄 행위에 대한 혐의만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채널은 가입 과정에서 개인정보 제출을 요구하는데, 이 때문에 실행자들이 운영자의 협박이나 보복을 우려해 수사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적극적으로 진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텔레그램을 통한 사적 보복 대행 범죄에 대해 더 강도 높은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발생한 보복 대행 범죄는 사적 제재로 사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인 만큼 더 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텔레그램 측에 적극적인 공조를 요청하는 한편, 함정 수사 등 다양한 수사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처벌 비용보다 범죄 이익이 더 크다는 인식이 퍼지지 않도록 실행자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