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리그 진출 후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하다 16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대만전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3이닝 동안 50개를 던져 3피안타 3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1회는 깔끔한 투구로 대만 타선을 잠재웠지만 2회 선두타자 장위에게 솔로포를 허용했고, 3회에는 라일 린과 장군위를 범타로 처리한 뒤 정쭝저와 전전웨이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했다. 류지현 감독은 0-1로 끌려가던 4회초 류현진 대신 곽빈을 마운드에 올렸고, 이후 또 다른 선발 자원인 데인 더닝까지 모두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다.
한국 타순은 전날 일본전과 달리 시종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다 6회말 김도영이 역전 투런포를 터트렸고, 8회말 동점 2루타를 터트리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그럼에도 타선 전체가 대만 투수 6명을 상대로 10회까지 4안타에 그치며 좀처럼 힘을 내지 못했다.
이날 도쿄돔 현장에서 ‘티빙’ 중계를 맡았던 송재우 해설위원은 마운드의 떨어진 무게감이 대만전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제기됐던 마운드의 문제가 대만전에 나타났다. 선발로 나온 류현진은 최선을 다해 마운드를 이끌어 갔지만 투구수 제한 65구 중 3회 투구수가 확 올라가면서 4회까지 마운드를 이어갈 수 없었다. 다음 투수로 곽빈을 올린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류현진과 완전 반대되는 유형이라 대만 타자들이 처음에는 곽빈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하지만 데인 더닝까지 3명의 선발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음에도 경기를 오래 끌고 가지 못했다는 게 내일(9일) 호주전을 치르는데 부담이 될 것 같다.”
송재우 위원은 도쿄돔에서 터지는 홈런을 보며 “펜스 앞에서 잡힐 것 같은 타구가 계속 뻗어나가 관중석으로 향하는 걸 보고 왜 도쿄돔을 ‘돔런’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데인 더닝이 3-2로 앞서던 7회초 1사, 1, 2루 상황에 구원 등판해 병살타를 유도한 후 8회 대만계 미국인 스튜어드 페어차일드에게 역전 2점 홈런을 맞았다. 더닝이 오릭스와의 연습 경기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주무기인 싱커를 내려놓고 자꾸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으로 승부를 보려 했다는 사실이다. 페어차일드에게 허용한 투런포도 바깥쪽 슬라이더였다. 구속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싱커에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타자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데인 더닝의 카드는 7회초 1사 1, 2루 상황에 구원 등판해 병살타 유도했던 것까지였다. 고우석이 8회 등판해 구위로 대만 타선을 압도했다면 8회 2사 2루에서 스튜어트 페어차일드에게 역전 2점 홈런을 얻어맞지 않았을 것이다. 대만 타선은 일본과 달리 느린 볼이나 변화구 대처 능력이 좋아 보였다. 대신 빠른 볼 대응이 미흡해 보였는데 데인 더닝은 힘으로 압도하는 투수는 아니지 않나. 고우석을 조금 더 빨리 올렸다면 어떠했을까 싶다.”
장성호 KBSN 해설위원은 대만전에서의 대표팀 타선이 김도영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부진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일본전은 말 그대로 졌지만 잘 싸운 경기였다. 그래도 패한 건 패한 거다. 더욱이 상대가 일본 아니었나. 우리가 패배의 힘든 감정을 잘 털어내고 대만전에 임했어야 했는데 일본전 이후 대만전까지 너무 짧은 시간에 두 경기를 치르다 보니 선수들이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일본전 패배의 느낌을 안고 대만전을 치르는 듯했다. WBC처럼 국제대회는 심리적인 게 많이 작용한다. 단순히 치고 받고 달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대만전에 임하는 대표팀 선수들의 모습이 일본전과 달리 많이 쫓기는 것처럼 보였다. 꼭 잡아야 하는 경기라는 절실함 때문에 경기를 어렵게 풀어갔다. 반면에 대만 선수들은 여유 있어 보였다. 그 차이가 경기 결과로 나타났다.”
장성호 위원은 4-4로 맞선 대만전의 연장 10회초 무사 2루 승부치기에서 1루수 셰이 위트컴이 선두타자 장사오훙의 번트 타구를 빠르게 잡은 뒤 1루가 아닌 3루로 송구한 게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위트컴은 전문 1루수가 아니다. 당시 안전하게 1루로 던져 아웃카운트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선행주자를 잡는 쪽을 선택했다가 주자가 3루에서 세이프가 됐다. 결국 계속된 무사 1, 3루 위기에서 대만의 스퀴즈 번트로 결승점을 허용하지 않았나. 이 순간의 판단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셰이 위트컴과 저마이 존스는 대만전에서 무안타로 침묵했다. 위트컴은 6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고, 존스는 2번타자 좌익수로 나서 4타수 무안타 1삼진을 올렸다. 두 선수들은 지난 5일 체코전서 나란히 홈런포를 가동하며 한국의 대회 첫 승을 이끌었고, 7일 일본전서 존스는 5타수 2안타로 맹활약을 펼쳤지만 대만전에서는 좀처럼 방망이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장성호 위원은 위트컴과 존스의 대만전 모습에 대해 “당일 컨디션이 중요한 국제 대회에서 두 선수들은 경기가 주는 압박감을 많이 느낀 듯했다”면서 “야구 잘하는 선수들도 부담을 느끼면 제 기량을 펼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정근우는 대만전을 보며 대표팀의 류지현 감독이 위트컴과 존스를 너무 믿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평가전 때부터 함께 호흡을 맞췄던 컨디션 좋은 선수들을 교체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도 괜찮은 방법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제 WBC 한국 야구 대표팀은 3월 9일 저녁 7시 도쿄돔에서 열리는 C조 1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다. ‘경우의 수’를 포함해 호주전의 경기 결과에 따라 우리 대표팀의 8강행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이다.
송재우 위원은 방망이, 즉 타선의 공격력을 믿는 건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7일 일본전에서 화끈한 방망이를 선보였던 중심 타선이 다음날 대만전에서 침묵을 이어가는 것만 봐도 국제 대회에서 방망이에 의지하는 경기 운영은 위험한 선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류지현 감독이 선발로 손주영을 예고했지만 마운드는 총력전으로 운영될 것이다. 문제는 마운드에 오르는 여러 투수들 중 일본전의 김영규처럼 한두 명이 연결 고리 역할을 하다 삐끗하면 대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호주전에서는 그런 일들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1라운드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원태인, 문동주의 공백이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벤치의 조급함이 눈에 띄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장성호 위원은 호주가 8일 저녁 일본을 상대하고 다음 날 한국을 만나는 터라 일본전 경기 내용과 결과가 아주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아무리 호주가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고 해도 일본한테 대패를 하거나 어이없는 점수 차로 승부를 내준다면 한국을 상대하는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호주를 만나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보다 호주가 일본전을 어떻게 치르느냐도 중요하다. 일본과의 경기를 대등하게 풀어가거나 한 점 차 승부로 패한다면 우리는 호주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수 시절 국제 대회 출전 경험이 많은 정근우는 일본과 대만을 상대로 자꾸 패하는 경험들이 쌓이는 게 선수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지고 있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데 점수를 내주고 지는데 익숙하면 다시 올라서기 힘들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늘(8일) 도쿄돔을 꽉 채운 대만 야구 팬들을 보고 느낀 게 많다. 그들은 도쿄돔이 마치 자신의 안방인 것마냥 박수와 함성으로 도쿄돔을 뒤덮었다. 그 장면이 시사하는 바가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