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 자원 부상에 울었던 대표팀
대회 엔트리를 짜는 과정에서 대표팀은 역대 최다 해외파 합류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았다. 기존 김하성(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김혜성(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가운데 송성문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했다. 이들에 더해 한국계 선수들인 라일리 오브라이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저마이 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의 합류 가능성이 언급됐다. 앞서 직전 대회에서 토미 에드먼(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바 있었다.
하지만 기대감은 곧 물거품이 됐다. "다음 대회에도 오겠다"던 에드먼은 시즌 중 입은 부상으로 수술을 결정하며 일찌감치 대회 참가가 불투명해졌다. 합류 여부에 변수가 적었던 한국인 빅리거 김하성과 송성문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낙마했다. 대표팀 내야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특히 김하성은 빙판길을 걷다 넘어져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안타까움을 낳았다.
국내파 선수들에게도 부상 악령이 이어졌다. 에이스 역할을 맡아야 할 문동주가 소속팀 한화 이글스 스프링캠프 도중 어깨 통증을 느껴 훈련을 중단했다. 또 다른 에이스 원태인(삼성 라이온즈)은 팔꿈치 통증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들 모두 국가대표 원투펀치로 거론되던 자원이었다. 대표팀으로선 큰 전력 공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외에도 베테랑 포수 최재훈(한화 이글스)은 훈련 중 공에 맞아 손가락이 골절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후 대표팀에는 또 다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이어졌다. 대표팀의 유력한 마무리 투수였던 라일리 오브라이언이 종아리에 이상을 느껴 소속팀 훈련을 중단했다는 것이었다. 대표팀은 이튿날 김택연을 대체자로 발탁했다. 대회 개막을 단 15일 앞둔 시점이었다.
오브라이언의 하차는 대표팀에 뼈아픈 공백이었다. 최근 이어진 대표팀 부진의 배경으로 투수진의 약화가 지목을 받고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대표팀이 데려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투수 자원 중 하나였다. 빅리그에서 약 한 시즌 반을 뛰며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시속 160km 내외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다. 류지현 감독이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대표팀은 핵심 전력 5~6명을 잃고 대회를 시작했다.

대표팀은 이번 2026 WBC 1라운드에서 C조에 일본, 호주, 체코, 대만과 함께 편성됐다. 전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우승 후보로 꼽히는 일본은 현실적으로 넘기 힘든 벽이었다. 일본이 조 1위 자리를 가져간다면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는 마지막 한 자리인 2위를 놓고 대만과 경쟁해야 했다. 이에 대만전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로 여겨졌다.
대표팀으로선 달갑지 않은 일정이 잡혔다. 비교적 편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상대인 체코를 가장 먼저 만나게 됐다. 이튿날이 휴식일로 잡혔고 일본, 대만, 호주와 연속으로 경기를 치러야 했다. 특히 일본전은 저녁 경기, 대만전은 낮경기로 결정됐다. 체력적인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WBC 대회 특성상 투수 운용에 어려움이 예상됐다. 대회 1라운드에서는 65구의 투구수 제한이 걸려있다. 50구를 넘긴다면 4일간 의무적으로 휴식을 해야한다. 각국 리그 시즌에 앞서 열리는 대회이기에 투수 보호를 위한 규정이다. 대표팀으로선 일본을 상대로 총력전을 펼친다면 대만전에 어려움을 겪기 십상이었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대표팀은 일본과 예상 밖 접전을 펼쳤다. 류지현 감독으로선 불펜의 주요 카드들을 총동원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튿날 대만전에서 연투에 나선 고우석은 결정적인 실점을 내줬다. 야수들의 몸 또한 무거웠다. 결국 대표팀은 대만에 패하며 대회 1라운드 탈락의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대표팀의 부진은 라운드 최종전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대만전 4안타로 부진했던 타선은 호주를 상대로 11안타를 기록하며 7점을 뽑아냈다. 마운드는 단 2점만을 내주며 극적인 8강 진출을 이뤄냈다.
#불리할 수 있었던 순위 결정 규정
대표팀은 바늘 구멍을 뚫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들이 2승 2패로 대만, 호주와 동률을 이루더라도 다음 라운드로 향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매우 적었다. 호주의 득점을 2점 이내로 막아야 했고 점수차는 5점 이상으로 벌려야 했다.
까다로운 8강 진출 조건은 WBC 특유의 순위 결정 방식 탓이다. WBC는 1라운드에서 승률이 동률일 경우 승자승, 이닝당 최소 실점, 이닝당 최소 자책점, 팀 타율, 추첨 순으로 순위를 가려낸다. 올림픽 야구, 프리미어12 등 다른 국제대회와는 기준이 다르다. 국제야구소프트볼연맹(WBSC)는 승자승 이후 TQB(Team Quality Balance, 공격 이닝당 득점-수비 이닝당 실점)를 우선 적용한다. WBSC가 공격과 수비 능력을 모두 평가한다면, WBC는 수비력에 집중한다.
WBC가 처음부터 WBSC와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대회까지 TQB를 승자승 원칙 다음으로 적용하고 있었으나 당시 대회 중 열린 캐나다-멕시코 전에서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며 새로운 순위 결정 방식에 대한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캐나다는 멕시코에 9-3으로 크게 앞서고 있었음에도 더 많은 득점이 필요한 순위 결정 방식을 의식해 경기 막판인 8회 공격에서 번트를 시도했다. '점수차가 큰 상황에서 번트를 자제'하는 야구계 불문율을 벗어나자 멕시코 선수들은 항의했고 결국 양팀 벤치에서 선수들이 달려나와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후 이 같은 부작용을 막고자 WBC에서는 득점을 제쳐두고 실점 억제력을 우선 순위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을 두고 일각에서는 의문이 제기됐다. 팀마다 가진 특성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투수의 능력, 수비력에 강점이 있는 팀이 있는가 하면 공격력이 특출난 팀이 있을 수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우 투수진의 힘보다는 타선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표팀으로선 WBC의 순위 결정 방식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표팀은 호주를 상대로 2점만을 내주는 '짠물 피칭'으로 2라운드 진출권을 손에 넣었다. 대표팀에도 위기는 있었다. 선발로 나선 손주영이 1회를 무실점으로 끝낸 이후 2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것이다. 급작스럽게 노경은이 구원 투수로 2회부터 등판해야 했다.
팀내 최연장자인 그는 갑작스런 등판에도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승기를 이어갔다. 이후로도 대표팀은 5명의 투수가 나서며 팀 승리를 이끌어냈다. 분명 어려운 상황도 있었으나 병살타 2개를 유도해내며 위기를 벗어났다.
대표팀은 무더기 부상, 어려운 일정, 불리한 규정 등을 넘어 팬들에게 17년 만의 2라운드 진출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2026 WBC를 넘어 2028 LA 올림픽 역시 장기 목표로 바라보던 대표팀이 향후 어떤 성과를 낼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