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제비스코는 국내 도료 산업을 이끄는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1945년 설립돼 건축용, 공업용, 선박·중방식용, 자동차보수용 등 다양한 분야의 도료 제품을 공급해오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로 시가총액은 약 2000억 원 규모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강남제비스코는 2025년 12월 31일 황익준 전 강남제비스코 사장 대표직 사임, 전문경영인 김재현 단독 대표 선임 소식을 공시했다.
같은 날 황익수 전무의 지분 18.87%가 모친 임예정 회장에게 12월 29일 상속됐다고도 공시했다. 황 전무가 고인이 됐다는 의미다. 향년 43세였다. 그의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회사 창업자인 고 황학구 전 회장의 손주이자 고 황성호 2대 회장의 차남이다. 회사에선 2대주주였다.
통상적으로 대거 지분을 보유해온 오너일가의 유고 등이 발생하면,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 후임자의 상속재원 마련을 위한 배당 확대나 경영 지배구조 재편, 나아가 경영권 분쟁 등에 대한 전망 때문이다.
강남제비스코도 해당 공시 직후인 지난 1월 2일 주가가 크게 올랐다.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7.86% 상승한 1만 3860원이었다. 장중 최고가는 전 거래일보다 26% 높은 1만 6250원이었고, 거래량은 1900% 가까이 치솟았다.
이런 가운데 황 전무 사망일을 놓고 논란이 불거졌다. 황 전무가 공시일자인 2025년 12월경보다 훨씬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게 핵심이다. 이는 상속자인 모친 임예정 회장의 상속세 규모와 직결되는 사안이라 주목된다.
의혹은 강남제비스코의 서울 서초구 사옥에서 비롯됐다. 일요신문이 부동산등기부를 확인해보니, 이 빌딩은 황성호 전 회장이 1986년부터 소유해오다 2011년 12월 6일 '황중운' '황중호' 두 사람에 각각 절반씩 상속이 이뤄졌다. 이 날짜는 황성호 전 회장 사망일자다. '황중호'는 황익수 전무의 개명 전 이름이다.
이어 2025년 6월 19일, 돌연 황중호 지분 전부가 임예정 회장에 상속됐다. '황중운'은 그의 형인 황익준 전 강남제비스코 사장의 개명 전 이름이다.
이는 황 전무가 2025년 6월 19일 이미 유고한 상태였다는 뜻이 된다.

강남제비스코가 황 전무 사망을 늑장 공시한 이유로는 임예정 회장 등의 상속세 절세 때문 아니냐는 물음이 뒤따른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상장주식에 대한 상속세는 사망일 전후 2개월 종가 평균을 반영해 평가된다. 또 최대주주나 최대주주 측 특수관계인 보유분은 그 평가액에 20%를 가산한다.
황 전무가 2025년 6월 19일 사망했다면, 2025년 4월 20일부터 8월 18일까지 종가 평균 1만 2527원을 반영하고 20%를 가산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단순 계산하면, 해당 기간 주식 평가액은 368억 8037만 원이 된다.
반면 공시대로 12월 29일을 사망일자로 보면, 2025년 10월 30일부터 2026년 2월 27일까지 종가 평균 1만 4355원에 20%를 가산해야 한다. 이를 계산하면, 해당 기간 주식 평가액은 422억 6213만 원이 된다.
단순 계산으로도 약 54억 원 차이다. 상속세 산출기간 동안 18.87%나 되는 지분을 보유한 오너일가의 유고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주가가 형성된 덕분에, 임예정 회장은 거액의 주식 관련 상속세를 아낄 수 있던 셈이다. 강남제비스코가 2025년 6월 황 전무 사망사실을 즉시 공시했을 경우 주가가 상승, 오너일가 상속세도 높아질 수 있었다.
주요주주의 부고 사실을 즉각 공시하지 않은 행위를 불법으로 단정할 순 없다. 다만 투자자들로 하여금 사망일을 오인하게 만들었다면 적절성을 둘러싼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실제 강남제비스코의 이 같은 행보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중점 추진하는 일명 '주가누르기 방지법' 입법 배경이기도 하다.
주가누르기 방지법은 상장사가 세금을 줄이려 억지로 주가를 누르는 행위를 방지하는 게 핵심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8배에 못 미치는 상장사 주식을 상속할 때 순자산 가치의 80%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는 내용이다. 강남제비스코는 줄곧 0.3배 수준의 PBR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강남 등 비상장사를 통해 경기 여주에 4만 8000평 넘는 2개의 콘크리트 제조공장과 부산에 3만 평 넘는 조선소 등을 보유하고 있다.
강남제비스코 한 투자자는 "주요주주 부고는 투자가치 판단에 중요한 요소인 만큼 언론 등을 통해서라도 부고 소식을 알리는 게 일반적"이라며 "투자자 입장에선 19% 가까운 지분을 보유한 오너일가 2대주주 생존 여부조차 모른 채 투자를 이어온 셈"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강남제비스코의 경우 최근까지 오른 주가도 그나마 회사가 이미 지분 상속 등을 마친 이후라 상승 폭이 적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서 "대기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엄청난 파문이 일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임예정 회장이 상속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다음 관심사다. 우선 강남제비스코는 지난 2월 12일 1주당 250원씩 총 32억 5000만 원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2025년 기준 3분기까지만 37억 9000만 원 당기순손실을 누적한 점에 비춰보면 적지 않은 규모다. 강남제비스코가 서울 사옥을 사용하면서 오너일가에 지급하는 임차료는 한 해 3억 1700만 원 수준이다.
강남제비스코 관계자는 3월 12일 "황 전무가 사망한 시점 등 일체를 저희도 모르겠다"며 답을 피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