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오늘이 마지막 국가대표” 고우석 “콜드게임 패배 반성” 안현민 “생각 바뀌는 계기 됐다”
[일요신문] WBC 8강전에서 충격의 콜드패를 당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경기 후 일부 선수들만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응한 채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선수단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경기에서 진 선수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요청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한국 취재진이 KBO를 통해 미리 인터뷰를 부탁한 선수들은 취재진 앞에서 대회를 마친 소감을 전했다.
극적인 1라운드 통과로 관심을 모았던 야구 국가대표팀의 WBC 일정이 마무리됐다. 사진=연합뉴스대표팀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 선수들이 오가는 복도에는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을 응원했던 팬들이 가득 모여 북과 트럼펫을 크게 울리며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기쁨과 슬픔이, 행복과 아픔이 공존하는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의 1층 복도였다.
3월 14일(한국시간)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 이날 저녁 6시 30분(현지시간)에 열리는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을 앞두고 오후 1시경 론디포 파크의 1층 복도에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 선수들이 나타났다. 경기 전 한국대표팀보다 일찍 훈련 일정이 잡힌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의 출근 시간이었던 것. 매니 마차도를 선두로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후안 소토 등 메이저리그(MLB)에서 가장 몸값 비싼 선수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껏 치장한 그들의 걸음걸이는 마치 런웨이를 방불케 했다.
오후 3시 15분부터 시작한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의 훈련 때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WBC 8강전을 앞두고 마이애미에 합류한 박찬호 KBS 특별 해설위원이었다. 박찬호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뛰면서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매니 마차도 등과 포옹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박찬호에게 MLB 올스타 선수들이 모여 있는 도미니카공화국을 상대로 한국 대표팀이 어떤 전략으로 임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물었다.
“도미니카공화국이 강팀이란 건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강팀을 상대로 긴장하기보다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우리만의 야구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상대가 잘하는 걸 떠올리지 말고 우리가 잘하는 걸 내세워 맞붙었으면 좋겠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도 일찌감치 론디포 파크를 찾아 한국 대표팀 훈련을 살펴봤다. 이 위원에게 도미니카공화국과의 8강전 예상을 묻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야구공은 둥글다. 그 둥근 공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도쿄 1라운드 때는 꼭 8강에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보니 부담을 많이 가진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부담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조금 더 우리 야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흔히 한국 야구를 ‘비빔밥 야구’라고 하지 않나. 기동력를 바탕으로 도미니카공화국을 압박하는 야구를 펼친다면 조금씩 틈이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해 예상 외의 좋은 결과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이순철 위원은 도쿄 1라운드에서 한국 대표팀의 마운드가 어려운 모습을 보인 점도 언급했다. 한국 대표팀의 투수진은 홈런을 9개 내주면서 전체 피홈런 공동 1위에 올랐다. 전체 팀 홈런 1위에 오른 도미니카공화국과는 상반된 내용이다.
“WBC 1라운드에서 한국 투수들이 너무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속은 빠른데 국제 대회 경험이 없는 젊은 투수들이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 8강전에서는 그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의 야구를 보여준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순철 위원은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1라운드를 치른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과 달리 한국 대표팀은 도쿄에서의 경기를 마치고 13시간을 날아와 이틀 후 8강전을 치르는 환경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2009년 WBC에서 내가 대표팀 코치로 함께 했는데 그때도 일본에서 전세기를 타고 미국으로 넘어왔다. 시차 때문에 연습 경기하는 날 앉아서 졸았다. 그만큼 짧은 시간 안에 시차를 극복하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런 환경적인 요인이 불리한 건 사실인데 그걸 받아들이고 극복해낼 수밖에 없다.”
1라운드에서 활발함을 보였던 대표팀 타선은 도미니카공화국 선발 크리스토퍼 산체스를 상대로 고전했다. 사진=이영미 기자도쿄라운드 호주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극적인 승리를 거뒀을 때 방송 중계 후 엄청난 눈물을 흘려 화제를 모았던 박용택 해설위원은 “오늘 우리가 이기면 또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면서 강팀 도미니카공화국을 상대로 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WBC를 중계하면서 젊은 선수들 중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번 대회를 통해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기회를 엿볼 수 있었다. (도미니카공화국의) 푸홀스 감독이 한국은 야구를 깔끔하게 한다고 말했는데 그 내용처럼 실책 없이 수비를 잘해줘야 할 것 같고 투수들도 볼넷 없이 승부해야 우리에게 기회가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3월 14일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2026 WBC 8강전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 0 대 10의 스코어를 기록하며 7회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바늘구멍으로 비유되는 경우의 수를 뚫고 기적적으로 8강에 진출한 한국은 도미니카공화국을 상대로 시종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다 0 대 7로 뒤진 7회말 소형준이 끝내기 3점 홈런을 내주는 바람에 콜드게임으로 경기를 마쳤다.
박용택 위원이 “실책 없이 수비를 잘해줘야 하고 투수들도 볼넷 없이 승부해야 찬스가 생길 것”이라는 예상은 현실에서 정반대의 결과를 나타냈다.
한국의 선발 투수 류현진은 1⅔이닝 3피안타 2볼넷 3실점에 그치며 패전의 멍에를 떠안았다. 이후 8명의 투수들이 마운드에 올랐지만 7실점으로 흔들렸다. 3회 만에 7실점을 내줬고, 구원 등판한 곽빈이 볼넷만 3개를 허용하며 앞서 등판한 투수의 자책점을 추가했다.
타선 역시 힘을 내지 못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선발로 나선 크리스토퍼 산체스를 상대로 5이닝 동안 2안타, 1볼넷에 그쳤고 삼진 8개를 기록했다.
수비에서도 아쉬운 장면이 나왔다. 류현진은 0 대 0이던 2회말 1사 1루에서 주니오르 카미네로에게 좌전 2루타를 허용했다. 이때 1루 주자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가 홈으로 쇄도했고, 유격수 김주원의 홈 송구가 왼쪽으로 빗나가는 바람에 포수 박동원이 태그를 못 해 선취점을 내줬다.
3회말에도 아쉬운 장면이 나왔다. 선두 타자 후안 소토가 노경은을 상대로 우중간 안타를,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가 2루타를 터뜨렸다. 이때 후안 소토가 베이스를 돌며 질주했고, 홈을 향했다. 이정후가 공을 잡은 뒤 김주원에게 정확히 연결했고, 김주원이 박동원에게 제대로 송구했는데 소토보다 공이 빠르게 도착했음에도 소토가 박동원의 태그를 절묘하게 피해 오른손으로 홈을 터치하는 바람에 득점에 성공했다.
한마디로 한국만의 ‘비빔밥 야구’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한 8강전이었다. 경기 후 류지현 감독은 한국 대표팀의 완패를 인정했다. 그리고 선발로 나선 류현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류현진은 이날 경기 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오늘이 마지막 국가대표일 것 같다”면서 “국가대표로 뛸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끝맺음이 아쉽지만 지금까지 국가대표를 할 수 있어서 기뻤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16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게 된 류현진은 국가대표 합류 전부터 2026 WBC가 마지막 국가대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시즌 동안 일주일도 채 쉬지 못하고 개인 훈련을 시작했고, WBC 개막 일정에 맞춰 몸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류현진의 ‘라스트 댄스’는 2026 WBC 8강전에서 아쉽게 마무리됐다.
이번 대회는 류현진이 국가대표로서 활약하는 마지막 대회가 됐다. 사진=이영미 기자8강전 마운드에 오른 9명의 투수들 중 호투를 펼친 선수들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고우석이다. 고우석은 이번 WBC에서 3⅔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현재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산하 마이너리그 소속인 고우석에게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는 회한의 야구장이다. 2024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트레이드를 통해 마이애미 말린스 마이너리그로 이적 후 빅리그에 콜업되지 못하고 줄곧 마이너리그에 머물렀다. 그러다 마이애미에서 방출된 후 올 시즌을 앞두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계약을 맺게 됐는데 고우석은 도미니카공화국 강타자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를 파울 플라이로, 케텔 마르테를 내야 땅볼로, 그리고 후안 소토를 뜬공 처리하는 등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들을 삼자범퇴로 잡고 이닝을 끝냈다.
고우석은 WBC 대표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린 후 이번 대회가 고우석의 ‘쇼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경기 후 취재진을 만난 고우석은 그러한 시선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번 WBC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개인적인 의미는 크게 없었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여기서 조금 잘 던지고 못 던진다고 해서 (내 야구에)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후 고우석은 마이애미 말린스 산하 마이너리그 시절 빅리그에 콜업되면 오를 수 있었던 론디포 파크 마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마이애미 시절인) 작년과 재작년에는 정말 한 번은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빅리그 마운드가) 정말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이렇게 오니까 선수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와서 해보니 부족하고 못 했던 게 많아 아쉽다.”
고우석은 8강전 패배에 대해 “아무리 강한 상대였다고 해도 콜드게임으로 진 건 선수들 모두 반성해야 한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 한국은 안타 2개에 머물렀다. 그중 하나가 4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 크리스토퍼 산체스의 초구 싱커를 공략해 우중간 2루타를 날린 안현민의 안타다. 산체스는 지난해 MLB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에 오른 특급 투수다.
안현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상대 선발 투수의 공이 KBO리그에서 보기 힘든 공이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못 칠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마이애미에 와서 많은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오늘 경기를 통해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라는 말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의지를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낸 뒤에 이 말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생긴다면 답변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대표팀의 WBC 행진은 8강전에서 막을 내렸다. 한국 야구의 문제점도 눈에 띄었고,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도 짊어졌다. 그럼에도 대표팀 선수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들게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잘 알기에 이번 대회를 통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았기를, 그래서 한국 야구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기를 바란다.
오타니 삼진 잡은 KBO 경력자 헤이수스 베네수엘라 4강 진출·일본 8강 탈락에 기여
키움, KT 등 KBO리그에서 활약한 투수 헤이수스가 일본의 WBC 8강 탈락에 한 몫했다. 사진=연합뉴스한국대표팀이 WBC 8강전에서 0 대 10 콜드패로 경기를 마무리한 것도 놀라웠지만 ‘디펜딩 챔피언’ 일본이 베네수엘라와의 8강전에서 5-8로 패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일본은 도쿄에서 펼쳐진 조별리그에서 4전 전승을 거두고 8강에 올랐다. 그러나 3월 15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의 8강전에서 일본의 선발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내려간 뒤 마운드가 급격히 흔들리며 5 대 8로 경기가 종료됐다.
이날 경기에서 눈에 띄는 베네수엘라 대표팀의 투수가 있었다. 바로 KT 위즈 출신인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였다. 헤이수스는 2 대 5로 끌려가던 4회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2⅓이닝 동안 일본의 강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42개의 공을 던지는 동안 최고 구속은 95.5마일(약 154km/h)이 나왔고 1피안타 1볼넷 3탈삼진을 기록했다.
가장 압권은 1사 1, 2루에서 오타니 쇼헤이를 삼진 처리하며 위기를 넘기는 장면이었다. 이후 헤이수스는 사토 테루아키에게도 바깥쪽 컷 패스트볼을 던져 헛스윙을 유도, 삼진으로 무실점 이닝을 만들었고, 5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삼자범퇴 이닝을 이끌었다. 헤이수스는 7회 선두타자 무라카미 무네타카를 외야 뜬공으로 잡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헤이수스가 마운드를 잘 틀어막은 사이 베네수엘라 타선도 힘을 냈다. 5회 초 마이켈 가르시아의 투런포가 터지며 1점 차로 일본을 추격했고, 6회 초 윌리어 아브레유의 역전 3점포로 경기를 뒤집었다. 4회 헤이수스의 호투가 베네수엘라를 4강으로 이끈 셈이다.
헤이수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WBC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디트로이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는 기쁨을 만끽했다.
헤이수스는 3월 13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팀 훈련에 앞서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헤이수스에게 일본과의 8강전에 등판하는지를 묻자,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일본전에 출전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대답한 바 있다. 일본전에 등판할 경우 오타니 쇼헤이를 상대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헤이수스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려줬다.
“다른 타자들과 똑같이 상대할 것이다. 마운드 위에 있을 때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라고 생각해야 한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내 자신과 내 구위를 믿고 최고의 승부를 펼칠 것이다.”
이후 헤이수스는 한국 팬들에 대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모든 한국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전히 메시지를 보내 응원해주시는 분도 있다. 그들을 모두 사랑한다. 한국에서의 시간은 정말 소중했다.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