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닐봉투와 플라스틱 용기를 수시로 사용하는 전통시장 상인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같은 날 화곡본동시장에서 만난 과일 가게 주인 김 아무개 씨는 “과일 포장에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를 매일 쓰다 보니 가격이 조금만 올라가도 부담이 크다”며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앞으로 비닐과 플라스틱 가격이 갑자기 오를 수 있다는 불안감에 가게에 공간 여유가 있는 상인들은 미리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를 사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이른바 ‘비닐 대란’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이날 SNS에는 “○○마트에서 종량제 봉투를 구매 제한 없이 판매한다”며 ‘종량제 봉투 성지’로 특정 매장을 공유하는 글이 올라왔다. 한 이용자는 “종량제 봉투 50L짜리 100장을 구입했다”며 구매한 봉투 사진을 인증하기도 했다.
종량제 봉투를 판매하는 ‘종량제닷컴’은 수급 차질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3월 24일 해당 업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국제 정세의 영향으로 종량제 봉투 제작부터 수급 및 입고 일정이 원활하지 않다”고 공지했다. 이미 일부 마트와 편의점에서는 종량제 봉투 수요가 급증하면서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이 있다. 나프타는 플라스틱·비닐 등의 핵심 원료로, ‘중화학 공업의 쌀’로 불린다. 국내 나프타 공급은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생산하는 물량이 50~60%, 수입 물량이 40~50%를 차지한다. 수입 물량 가운데 약 51%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데 최근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서 나프타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첫 주 배럴당 56.9달러였던 나프타 국제가격은 3월 넷째 주 133.1달러로 약 134% 올랐다.
나프타 가격 급등과 수급 불안이 맞물리면서 생활물가 전반에 부담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나프타 등 원료 가격 상승이 기업의 원가 구조를 악화시키고, 플라스틱·비닐 등 기초 소재 가격 상승이 과자·빵 포장재, 의류 포장 비닐 등 생활 제품 원가를 끌어올리면서 소비자 물가의 연쇄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유사한 공급 충격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1년 기준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 비중은 22.8%에 달했는데, 전쟁 이후 수입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공급망에 차질이 생겼다. 여기에 유가 급등까지 겹치며 2022년 초 3.8% 수준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쟁 발발 이후 가파르게 올라 같은 해 7월 6.3%로 치솟았다.
포장자재 유통업체 관계자는 “포장자재 가격이 4월에는 최소 15% 이상, 5월은 추가로 10% 이상 인상될 것으로 예고된 상황”이라며 “현재 확보한 물량으로 4월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5월부터는 단가를 맞추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LG화학은 나프타 공급이 원활해질 때까지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 80만t인 전남 여수 2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여천NCC도 생산량 조정을 위해 올레핀 전환 공정 가동을 중단했고, 롯데케미칼은 생산시설 가동을 멈추는 대정비 일정을 예정보다 3주 앞당겼다.
정부와 지자체는 나프타 수급과 관련해 장기화 시 영향은 불가피하지만 당장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종량제봉투의 경우 각 지자체별로 최대 6개월치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 역시 25개 자치구 평균 약 4개월치 물량을 보유하고 있어 단기적인 수급 불안은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양기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3월 23일 정부세종청사 일일 브리핑에서 “국내 나프타 공급의 약 55%를 차지하는 정유사들과 협의해 수출 물량을 국내로 돌릴 계획”이라며 “긴급 수급 조정 명령까지 발동하면 가동 중단 위기 시점을 4월 말이나 5월까지 충분히 늦출 수 있어 수급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부는 기업들의 나프타 수출 제한과 매점매석 금지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나프타 수급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 각 업체들의 전반적인 생산 계획도 정부 차원에서 조율할 계획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이미 나프타를 원료로 한 제품 가격이 10~20% 인상됐고, 일부는 50%까지 오른 상황”이라며 “그 부담은 최종판매자인 자영업자에게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지 공급망과 물류·보험 등 인프라가 정상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세제 지원과 대체재 확보 등 중장기적인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