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부인이 사망한 뒤 서울에서 홀로 지내고 있던 이근안은 2024년 연이은 민사소송 판결로 화제가 됐지만 재산이 없다며 끝내 배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8월 법원은 1960년대 납북됐다 귀환한 어부의 가족 박 아무개 씨 유가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와 이근안이 함께 66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박 씨는 2021년 7월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2024년 7월에는 ‘김제 가족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에게 국가가 배상한 돈을 이근안이 가해자로서 책임져야 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2018년 유족은 114억 원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고, 2023년 정부는 이근안을 상대로 배상금 중 일부를 부담하라는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국가가 구상금으로 청구한 33억 6000만 원 전액을 인정했다.
2024년 6월에는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어부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국가가 유족에게 총 7억 1000만여 원을 지급하고 이 가운데 2억 1000만여 원은 국가와 이근안이 공동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허름한 다세대 주택 지하 월세 단칸방
이근안은 오랜 기간 경찰로 근무했지만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이근안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퇴직금 지급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2021년 8월 법원이 청구를 기각했다. 그만큼 노년의 이근안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012년에도 이근안의 근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여성조선은 이근안이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한 보증금 100만 원, 월세 2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근안의 부인이 폐지와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빌딩 파출부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목사가 됐지만 결국 면직 당해
2012년 1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총회는 긴급 징계위원회를 열고 이근안에 대해 목사직 면직 판결을 내렸다. 목사로서 품위와 교단의 위상을 떨어뜨렸고 겸손하게 선교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는 게 징계 이유였다.

당시 이근안은 한 언론 인터뷰로 화제가 된 상태였다. 2010년 1월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다”라며 “애국을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한 것을 지금 잣대로 죄인 취급을 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도망 다닐 때에는 간첩처럼…
2006년 11월 7일 이근안이 수감 7년 만에 만기 출소했다. 무려 10년 10개월 동안 도피 생활을 해온 이근안은 1999년 10월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 자수했고, 2000년 9월 대법원이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확정했다.


#반달곰, 불곰, 박중령, 그리고 고문 기술자
1970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직해 대공 분야에서 일해 온 이근안은 특진을 거듭해 1984년 경감이 됐다. 순경에서 경감까지 걸린 시간은 단 14년에 불과했을 만큼 ‘탁월(?)한’ 경찰이었다. 본인이 ‘애국’이라고 포장한 ‘고문 기술’ 덕분이었다. 당시 경찰에선 “이근안이 없으면 대공 수사가 안 된다”는 말이 있었다는데 이근안의 고문으로 간첩 누명을 쓴 억울한 이들이 많았고 이들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가 됐다.

90㎏이 넘는 거구에 구릿빛 피부, 굵은 목, 쩍 벌어진 어깨, 솥뚜껑 같이 큰 손….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당시의 이근안이다. 반달곰, 불곰, 박중령 등의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가장 유명한 별명은 ‘고문 기술자’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