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마트 인수전에서 우리투자증권이 GS와 경쟁관계인 유진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폭풍이 불고 있다. | ||
우리투자증권은 2005년 4월 LG투자증권과 우리증권이 합병해 탄생한 회사다. LG카드의 대주주였던 LG투자증권은 2003년 말 ‘카드대란’이 발발하면서 LG그룹에서 계열분리 됐고 1년 뒤 우리금융그룹에 인수·합병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합병됐다고는 하지만 LG투자증권은 당시 업계 2위를 달리던 대형 증권사여서 우리투자증권=옛 LG투자증권이라는 등식에 무리가 없다. GS도 지난 2004년 LG에서 허 씨 가를 중심으로 계열분리된 기업군.
인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국적 기업정서와 영업 관행상 LG GS LS그룹은 이후에도 우리투자증권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런데 이번 하이마트 인수전에서 우리투자증권은 GS와 경쟁관계인 유진을 도왔다. 유진의 하이마트 인수 대금 1조 9500억 원 중 2000억 원 안팎을 ‘전환상환우선주’ 형태로 지원한다고 알려진 것. 기업 M&A에 있어서 증권사가 단순 투자만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 ‘옛 식구’ GS로선 뼈아플 수 있었다.
우리투자증권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LG·GS가와 우리투자증권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증권업계 인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우리투자증권 측은 “기업 M&A는 비밀유지조항이 따르기 때문에 얼마를 어떻게 투자하는지를 포함, 하이마트 인수와 관련한 어떤 코멘트도 할 수 없다”고만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박종수 사장 연임을 반대하며 경영진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우리투자증권 노동조합(노조·위원장 구희득)이 자체조사를 통해 ‘경영진의 소탐대실’을 비난하고 나서며 그 인수전 내막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 관심을 끌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당초 우리투자증권은 하이마트 인수전에서 GS 측에 참여, 함께 협의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내부사정 때문에 하이마트 인수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는 말만 남기고 협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는 것. 그리고 뚜껑을 열어보니 유진에 2000억 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노조 관계자는 “GS와 협의하다 말 한마디 없이 유진에 붙었다. 마지막까지 몰랐다는 실무자로부터 뒷얘기를 들어보니 ‘매각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GS 쪽에선 고용승계 조건 등 정보만 살짝 줬어도 우리가 될 수 있었다’며 허탈해 하더라. 자금투자도 문제지만 정보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우리투자증권 경영진은 GS를 배신, 간첩 노릇을 한 셈”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왼쪽은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 오른쪽은 허창수 GS 회장. | ||
노조는 12월 18일 발행한 <노조통신>에서 ‘이 일의 영향으로 GS와 거래가 끊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GS의 모든 자금이 인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현장에 짙게 깔리고 있다’고 밝히고 ‘이미 금융상품의 경우 만기가 도래하면 즉시 자금인출을 해가기 시작했다고 하며 가뜩이나 명분을 찾고 있던 LG 측도 이번 기회에 모든 거래를 중단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걱정대로 10조 원에 달한다는 GS LG 등 범 LG 계열사의 우리투자증권 예치 자금 빠져나간다면 회사의 근간을 흔드는 큰일이 아닐 수 없다. 40억 원 정도라는 유진 투자 추가이익과 비교가 안 된다.
노조 관계자는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뒤늦게 담당자들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GS 쪽에선 ‘사장이 와도 안 된다’고 하더라”면서 “자금이탈의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박 사장과 담당임원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노조의 이런 주장에 우리투자증권 측은 역시 “노코멘트”였다. GS 측도 “하이마트 인수 건은 하이마트 쪽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우리가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일 뿐”이라며 “우리투자증권 때문이 아닌데 자금을 빼가거나 그럴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GS 측의 부인처럼 자금이탈 우려가 ‘우려’로 끝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듯하다.
한편 노조는 지금껏 경영능력 등을 문제 삼아 1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박종수 사장의 연임을 반대해왔다. 그럼에도 우리투자증권 이사회는 지난 12월 24일 박 사장의 연임을 결의했다. 이에 노조 관계자는 “너무나 당혹스럽다. 향후 어떻게 할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측은 “노조가 사장 인사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일축했다. 박 사장은 오는 1월 15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연임이 확정될 예정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