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지대 적응에 집중
월드컵 직전, 대표팀 준비 과정의 키워드는 '고지대'였다. 대표팀은 첫 두 경기를 멕시코 중서부 할리스코주의 과달라하라에서 치른다. 경기장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가 위치한 곳은 해발 1550m의 고산지대다. 국내 태백산 정상과 비슷한 고도다.
이는 대표팀이 1차 캠프지를 미국 유타주로 잡은 이유다. 경기가 열리는 장소와 유사한 해발 1500m 내외의 고지대로 알려져 있다. 대표팀은 꾸준히 적응 훈련을 해왔다. 선수들은 "미리 적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평가전 상대팀 물색에도 영향이 있었다. 대표팀이 자리 잡은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는 미국 내에서도 대도시권에 속하는 곳이 아니다. 멕시코는 로스앤젤레스 인근, 미국은 샬럿에서 평가전을 치른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경기장 또한 대형 스타디움이 아닌 현지 대학 내 운동장이었다. '최종 모의고사'라는 취지에 맞는 강한 상대를 불러들이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대표팀의 상대는 트리니다드토바고, 엘살바도르로 결정됐다. 각각 피파랭킹 102위와 101위의 약체다. 이번 월드컵 본선 무대에도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팀이 훈련을 진행 중인 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았다. 대표팀이 체류하던 미국과 멀지 않은 북중미 지역 국가였기에 맞대결이 성사될 수 있었다. 대표팀은 별도의 지역 이동 없이 평가전을 치르게 됐다.
먼저 열린 트리니다드토바고전은 5-0 대승을 거뒀다. 엘살바도르를 상대로는 다소 답답한 경기 끝에 1-0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 홍명보 감독은 최대한 많은 자원을 골고루 기용하며 실전 이전 마지막 테스트를 진행했다.

지난 5월 16일 발표된 월드컵 명단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이름은 강원 FC 소속 유틸리티 플레이어 이기혁이었다. 이때까지 이기혁의 A매치 출전 기록은 단 1경기뿐이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 A매치 기록을 남겼고 홍 감독 체제에서는 대표팀 소집 경험만 있을 뿐이었다. 이후 다시 대표팀과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무대를 눈앞에 두고 대표팀은 다시 이기혁을 불러들였다. 기존 왼발잡이 중앙 수비수 자원인 김주성(산프레체 히로시마)이 부상을 당하면서다. 이기혁은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K리그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고 있기도 했다.
이기혁은 이번 평가전에서 곧장 경기에 나섰다. 2경기 모두 선발 자원으로 선택을 받으며 급부상했다.
리그에서 보여준 위력을 그대로 선보였다. 도드라지는 발재간으로 팀의 후방 빌드업을 이끌었다. 과감한 왼발 롱킥,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격에 가담하는 움직임 등도 선보였다. 대표팀의 공격 작업이 대부분 왼쪽에서 이뤄진 배경에는 이기혁의 활약이 있었다.
이기혁은 중앙 수비 외에 사이드백, 사이드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로도 기용이 가능한 유틸리티 자원이다. 이번 평가전에서 직접적인 포지션 교체는 없었으나 기존 왼쪽 스토퍼 자리에서 더 측면으로 치우치거나 적극적인 전진으로 공격 작업을 돕는 모습을 선보였다. 이기혁은 향후 공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경기나 상황에서 높은 활용가치를 증명했다.
이기혁 외에도 왼쪽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인 인물은 옌스 카스트로프다. 독일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카스트로프는 이전까지 독일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약하다 2025년 9월부터 태극마크를 달기 시작했다.
그는 대표팀 발탁 초기에는 미드필더 자원으로 분류됐다. 대표팀 합류 직후 자연스레 미드필더로 경기장을 밟았다.
하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데뷔 시즌인 이번 2025-2026시즌 중반부터 카스트로프는 측면 포지션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이번 평가전에서도 그는 측면 윙백으로 출전해 활발한 활약을 펼쳤다. 이기혁과 함께 선발로 나선 트리니다드토바고전에서는 좋은 시너지를 보이기도 했다. 남다른 경쟁력으로 향후 꾸준히 측면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이번 대표팀 명단에서 가장 우려를 산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드다. 월드컵 본선 진출 과정에서 중용받던 박용우가 부상으로 쓰러졌다. 대체자로 꼽히던 원두재마저 부상을 입어 월드컵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 이후 테스트를 받은 자원들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엔트리 내 전문 중앙 미드필더 자원은 김진규, 백승호, 황인범 단 3명뿐이었다. 미드필드 지역에 2명을 기용하는 대표팀 전술상 가용 자원의 절대적인 숫자 자체가 부족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비 쪽에 밸런스가 맞춰진 미드필더를 중용해왔던 홍명보 감독의 전술상 향후 대응 방안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번 평가전에서 홍명보 감독의 선택은 베테랑 미드필더 이재성의 포지션 이동이었다. 그간 이재성은 공격 2선 지역에서의 출전 빈도가 높았다. 월드컵 예선 종료를 기점으로 홍 감독의 선수 배치에 변화가 생겼음에도 이재성의 위치는 2선이었다.
반면 이번 평가전 일정에서는 2경기 연속 3선에 배치됐다. 첫 경기는 후반 교체 투입, 두 번째 경기는 선발로 선택을 받았다.
포지션상 어색함은 없었다. 공격력과 더불어 활동량, 수비력 등을 겸비한 이재성은 커리어 초기부터 3선 미드필더로 기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평소 플레이 스타일 역시 2선에서 뛰더라도 활동 반경을 넓게 가져가는 유형이다.
이재성의 중원 파트너에도 이목이 쏠린다. 대표팀에서 미드필드 핵심 자원으로는 황인범이 손에 꼽힌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황인범은 빠지지 않고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최종 엔트리 발표 이전에도 대표팀은 황인범을 별도로 소집해 컨디션을 관리할 정도였다. 그런 황인범과 이번 평가전 2연전에서 미드필더로서 가장 긴 시간 호흡을 맞춘 인물은 이재성이었다.
이재성 외에도 미드필드 지역에서 기용 가능한 자원은 즐비하다. 대표팀은 다수의 유틸리티 자원을 선발했다. 이강인, 이동경, 김민재, 박진섭, 이기혁, 카스트로프 등이 중앙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다.
선택은 홍 감독의 몫이다. 결국 이번 2연전의 경기력, 그간의 실적 등을 토대로 향후 활용할 정예 멤버를 선택할 전망이다.
남은 일정은 실전뿐이다. 홍 감독의 최종 선택은 오는 12일(한국시간) 11시 체코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