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프'가 가장 강력해지는 순간은 액션 신이 펼쳐지면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초반부 호포항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범석의 추격 신은 이 영화가 왜 극장용 대작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단번에 납득시킨다. 좁은 마을길을 미친 듯이 내달리고, 들이받고, 부수고, 다시 튀어나오는 정체불명의 생명체와의 액션은 CG의 완성도와 별개로 엄청난 속도감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히어로형 캐릭터와는 거리가 먼 범석이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 재난의 한복판에서 보여주는 투박한 몸부림이 거대한 크리처 액션과 부딪치면서 '호프'는 설명보다 먼저 몸으로 체감되는 영화가 된다.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나홍진 감독이 어설픈 시도로 이 생명체, 즉 외계인을 숨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CG로 이뤄진 크리처의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화면의 밝기를 조절하는 등 다양한 편집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호프'는 대담하게도 이 외계인을 백주대낮의 호포항 한복판에 세워놓는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낡은 가게와 좁은 골목, 흙먼지와 주민들이 뒤엉킨 공간 속 익숙함을 전복시키는 '비일상'의 존재가 대놓고 불쑥 끼어드는 것이다.

조인성이 연기한 사냥꾼 성기의 숲속 전투 신은 '호프'가 가진 액션의 거친 물리감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동료들과 함께 '호랑이'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성기는 어느 순간부터 반대로 사냥감이 돼 미지의 생명체들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햇볕이 그대로 내리쬐던 마을과는 달리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로 더 깊은 긴장감을 자아내는 숲 속에서 나무 사이를 찢고 덮쳐드는 외계인 마베이요(마이클 패스벤더 분) 무리와의 추격전은 평지 액션과는 또 다른 압도적인 압박감을 만들어낸다. 말·총·육탄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난전의 쾌감을 온전하게 밀어붙이는 이 장면은 '호프'가 가진 극장용 액션의 체급을 가장 분명하게 증명하는 신이기도 하다.
다만 이처럼 선명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호프'의 모든 선택이 성공적으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먼저 눈에 밟히는 것은 역시 외계인의 CG다. 3D 게임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다양한 OTT 시리즈 콘텐츠를 통해 고도화된 크리처 이미지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호프' 속 외계인의 모습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해도 배경과 분리돼 '붕 떠 있는' 질감을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칸 국제영화제 공개 이후부터 국내 언론 시사회에 이르기까지 시각 효과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나왔던 만큼 예비 관객들은 이미 "CG가 약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극장을 찾을 가능성도 크다. 단점을 이미 예견하고 마주하는 '호프' 속 외계인들의 모습은 실제보다 더 아쉽게 보일 수도 있다. 다만 이 지점은 7월 7일 기준으로도 나홍진 감독의 집요한 후반 작업에 따라 추가 수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니, 개봉본에서 어느 정도 보완된 인상으로 다가올지도 지켜볼 부분이다.

그럼에도 '호프'는 올해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대작 중 하나로 여전히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단순히 국내외의 주목을 받은 대작이어서만이 아니라 최근 한국 상업영화에서 쉽게 보기 어려웠던 규모의 야심을 끝까지 밀어붙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된 사소한 사건은 외계 존재와의 충돌로 번지고, 스크린 밖으로까지 전달될 듯한 대규모 추격전은 인간과 비인간의 시선 문제로 확장된다. 이 거친 확장성은 강렬한 액션 신만큼이나 '호프'가 관객들에게 선보일 강점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투자·배급작이라는 점에서도 '호프'는 개별 영화 이상의 관심을 받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메가박스와 투자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를 보유한 메가박스중앙이 회생절차에 들어간 상황 속 '호프'의 성적은 흥행 성패를 넘어 위축된 한국영화 투자배급 시장이 다시 대작을 감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시험대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호프'는 감독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말 그대로 한국영화계의 '희망'이라는 이름을 함께 짊어진 작품이 됐다. 아쉬움과 호불호는 남더라도 극장용 영화가 줄 수 있는 물리적 쾌감만큼은 확실한, 최근 들어 보기 드물었던 대작이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를 안겨주는 나홍진 표 거대한 장르 놀이를 기대하고 있다면 반드시 극장에서, 되도록 큰 화면과 큰 사운드로 마주할 것. 156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