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라고까지 표현해도 무방한 엄청난 기후변화, 그로 인해 영구적 동토층인 줄 알았던 히말라야의 빙하까지 녹아내리고, 그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암석들이 히말라야의 품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덮친 것이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최첨단 문명, 그 문명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과, 문명의 그늘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죄책의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이를 어찌할까. 그러나 걱정은 잠시이고 현실은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에 손이 가고, 또 별 생각 없이 무기를 만드는 업체의 주식에 투자를 한다. 우리 삶의 그런 행태를 보면 실제로는 답을 찾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대홍수의 증후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히말라야의 품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가난한 사람들이 증후를 알았다고 문명의 도시로 피난할 수 있었을까.

그중에 우리 눈에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인한 세계 질서의 붕괴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의 이익’이라는 그의 기치가 노골화될수록 그것은 미국의 이익이라기보다 트럼프의 이익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드는데, 많은 미국인들에게도 그 의심은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전쟁도 불사하는 무서운 지도자다. 그러나 모든 것은 돌고 도는 법.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져 마구 힘을 행사하게 되면 그 힘은 언젠가 자신을 친다. 트럼프가 일으킨 미국-이란전쟁, 그것이 지금 트럼프의 위기, 중간선거의 위기로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이야기를 알고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잡아들여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잘라내고, 침대보다 작으면 몸을 늘려 죽인 그 강도는 테세우스에 의해 그가 자행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는다. 그것이 어찌 신화 속의 이야기이기만 하겠는가.
평화롭던 호르무즈 해협을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길목으로 만든 것은 누가 뭐래도 트럼프다. 만만치 않은 이란의 저항의 부딪치자 멈추는 법을 모르는 트럼프는 그가 가진 힘으로 할 수 있는 협박 방식을 찾아내고 있었다. 당장 우리 앞에 떨어진 것은 강력한 파병 요구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기만 이재명 정부에게 엄청난 난제를 안긴 것이다.
파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파병을 한다면 어떤 수준에서 할 것인가. 그동안 우리와 무리 없이 잘 지냈던 이란은 벌써 우리를 향해 어떤 몸짓도 전쟁 참여로 보겠다고 선언했다. 비전투 수색임무일지라도 이란에 대한 전쟁 참여로 간주하여 심각한 대가와 결과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란은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란과의 외교적 마찰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답은 있는가.
점점 커지고 점점 가까워지는 세계,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어 당장은 내 문제로 보이지 않는 일이 어느 날 내 문제가 되어 기습적으로 나타나는 일은 개인사에 있어서도 흔한 일이다. 가슴이 막히고 기가 막히는 그런 상황이 오면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그럴 때 내가 하는 한 방식은 걸레질이다. 걸레를 빨아서 바닥을 빡빡, 문지르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드러난다.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당하는 거지, 하는 배짱도 생긴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다 보면 앓고 있었던 문제들이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선명해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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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 journalis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