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성과가 나빠진 것도 아니고, 제품에 결함이 생긴 것도 아니다. 시장은 그 기업들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고 있었다. 이 현상을 단순한 투자 심리의 과민 반응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투자 전문가들이 즐겨 인용하는 골드만삭스의 차트가 있는데, 미국 신문 산업의 주가가 실제 구독 매출이 무너지기 수년 전인 2002년부터 이미 수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식 시장은 언제나 파괴를 선반영한다. 지금 SaaS 기업들의 주가 움직임이 그 차트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는 점은 그냥 흘려듣기 어렵다.

그런데 이제 그 캐비닛 스스로 문을 열고 서류를 꺼내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AI 에이전트는 단순한 ‘출력물’이 아닌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메일과 캘린더, 웹 검색을 스스로 넘나들며 마케팅 캠페인을 실행하고, 인간이 중간에 개입하지 않아도 업무 흐름을 완결한다.
이 변화가 SaaS 업계에 치명적인 이유는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을 흔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자동차 회사 주가 수익 비율의 10~20배에 달하는 고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연간 반복 수익(Annual Recurring Revenue)’이라는 마법의 단어 덕분이었다. 한번 도입된 소프트웨어는 사용자 수만큼 구독료가 청구되는 구조, 즉 좌석 기반 요금제가 그 안정성의 토대였다.
그런데 캐나다의 한 공공조달 현장 사례가 이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예전에는 직원 10명이 각자 계정으로 로그인해 처리하던 서류 업무를 이제는 AI 에이전트 계정 하나가 통째로 대신한다. 기업이 10명분 요금을 낼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 침식은 절벽에서 떨어지듯 급격하지 않다. 1년, 3년 단위의 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100좌석을 조용히 10좌석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느리고 소리 없이 진행된다.
그렇다면 요금제를 사용량이나 성과 기반으로 전환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인간 심리가 발목을 잡는다. 사용자는 예측 불가한 요금을 극도로 혐오한다. AI가 백그라운드에서 얼마나 많은 연산을 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뜻밖의 청구서를 받는 경험은 불신을 낳는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가 소개한 열쇠공 이야기가 이 딜레마를 꿰뚫는다. 초보 시절 문 하나를 따는 데 몇 시간씩 씨름하던 열쇠공에게 사람들은 기꺼이 비싼 요금에 팁까지 얹어줬다. 그런데 숙련된 장인이 되어 똑같은 문을 1분 만에 열어주자 오히려 고객들이 그가 청구한 요금에 대해 불같이 항의했다. 땀 흘리는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AI도 마찬가지다. 직원이 밤새워 만든 엑셀 보고서에는 수백만 원의 월급을 기꺼이 지불하면서, AI가 1분 만에 뽑아낸 동일한 결과물에는 그만한 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땀'이 보이지 않는 노동은 심리적으로 정당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
물론 모든 SaaS 기업이 같은 처지는 아니다. 고객 서비스 티켓 처리처럼 인간의 입력 행위 자체가 서비스의 본질인 소프트웨어는 에이전트의 직격탄을 맞는다. 반면 회계 소프트웨어 퀵북스(QuickBooks)처럼 기업의 핵심 데이터를 보관하고 복잡한 법적 규정 준수를 담당하는 ‘기간(基幹) 소프트웨어’는 상대적으로 견고하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특정 주의 복잡한 세법 예외 조항을 잘못 적용했을 때 날아오는 수백억 원대 소송 리스크는 기업들이 검증된 소프트웨어를 놓지 못하게 붙잡는다. 이 신뢰는 코드나 데이터의 집합이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질문의 기술, 즉 어떤 상황에서 어떤 핵심을 물어야 하는지를 아는 암묵지다. 오픈소스가 하루아침에 복제할 수 있는 종류의 자산이 아니다.
그러나 이 내구성에도 한계가 있다는 반론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전 세계 세법과 판례를 학습한 오픈소스 AI가 성숙해질수록, 지금 안전해 보이는 영역도 시간의 문제일 수 있다. 결국 살아남는 기업은 방어에 머무르는 쪽이 아니라 스스로 파괴자 진영으로 먼저 건너가는 쪽일 것이다. 다만 AI 도구를 선제적으로 통합했음에도 주가 하락과 사용자 이탈을 겪고 있는 피그마(Figma)의 사례는, 기술 수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라야 함을 보여준다.
이 지각 변동은 소프트웨어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 입력과 기초 회계처럼 화이트칼라 업무의 바닥을 이루던 직종들의 고용 둔화는 이미 감지되고 있으며, 기본소득 논의가 수년 내에 가장 뜨거운 정치 의제로 부상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것은 정치적 입장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구조의 필연적 귀결이다. 그러나 기술의 속도와 신뢰의 속도는 다르다. AI가 순식간에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아도, 그 과정을 납득하지 못하는 인간은 끝없이 의심하고 수정 지시를 반복한다. 수용의 속도는 결국 신뢰가 결정한다.
구독형 소프트웨어의 종말이라는 표현은 사실 절반만 정확하다. 소프트웨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마우스를 클릭하고 로그인 버튼을 누르던 그 방식이 끝나가는 것이다. 조용히 데이터를 담아두던 캐비닛이 스스로 행동하는 동료로 변모하는 이 전환에서 우리가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떤 소프트웨어를 구독할 것인가’가 아니다. ‘기계가 스스로 행동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어떤 판단을 내리는 존재로 남을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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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석 마이크로소프트 Tech PM journalist@ilyo.co.kr

